“신인배우 감우성입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시사회 무대에서 감우성은 수줍음을 탔다. 연기경력 11년차지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니 새신랑처럼 긴장할 만도 하다. 다음날, 햇살 좋은 오후에 만난 그는 사뭇 차분해져 있었지만 ‘첫날밤’을 무사히 치른 만족감으로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좋다, 안 좋다는 반응이 50 대 50일 줄 알았어요. 근데 80 대 20 정도인 것 같아요.” 배우 같지 않게 편안한 배우 감우성. 그와의 ‘결혼 같은 영화’ 이야기는 나긋이 봄날 오후를 탔다.
브라운관에서의 11년. 감우성은 결혼 전 오랜 연애를 하듯 “영화를 할 여지”를 남기며 그동안 몸을 사렸다. 지난 2년간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5·18 특집극 등 단막극을 제외하면 일요아침드라마 <눈으로 말해요>와 <메디칼 센터> 등 주 1회 방송되는 드라마 뿐. “영화를 하게 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신경썼다. 또 탤런트로 이미지가 굳어질까봐 드라마와 관련된 홍보를 가급적 삼가고 “최대한 TV에서 눈에 안 띄려고” 노력했다. 이만하면 영화를 향한 ‘순정’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그렇게 기다리다 첫영화로 그가 간택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데뷔작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너무 흔한 단순오락물이 아니면서 장사도 될 법한. 그리고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남들에겐 별미일지 몰라도 나한텐 별로”인 것들을 마다하고 그가 택한 “진짜 나무”,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감우성은, 결혼서약의 무게 대신 일상의 사랑을 택하는 대학강사 준영을 연기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고 자신은 그녀가 얻어준 옥탑방에서 주말남편 노릇을 하는 남자. 얼핏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캐릭터이지만, 감우성이 연기한 준영은 설득력이 있다. 공감을 불러일으킬 뿐더러 섹시하고 사랑스럽다. 그건, 그가 ‘대본대로’, 동시에 ‘대본에 없는 것들’을 연기한 덕. “대본 분석만 갖고는 연기할 수 없는 작품이었어요. 대본에 없는 거요? 글쎄, 그건 미묘한 건데요.” 예사로운 대사와 몸짓 하나하나에 무엇인가 그만의 체취를 ‘플러스 알파’시키는 일. 그건 상대역 엄정화와 서로를 잘 배려하며 어색함 없이 찍어낸 베드신일 수도 있고, ‘별미’ 콩나물 비빔밥을 차리는 그녀 앞에 라면 젓가락을 내던질 때의 ‘강도’ 문제일 수도 있고, 여자의 신혼집을 구경하며 “진짜 나무네”라고 혼잣말할 때의 준영의 담담한 표정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많은 미묘함들…. 그러고보니 감우성의 세심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연기는 어딘가 동양화적인 데가 있다. 그는 선화예고와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했다. 요즘은 바빠 붓을 들지 못하지만 언젠가 전시회를 할 거란다. “그림은 사람이 살아온 그대로 담기는 것 같아요. 연기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구요.” 올 가을 드라마 한편, 그리고 수중의 몇편 시나리오. 영화라는 새 화폭 하나를 마련하고 더욱 바빠질 감우성의 그림 같은 미소가 처음처럼 여전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