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의 A부터 Z까지 낱낱이 알고 싶은 팬들은 영화의 메이킹 스토리와 컨셉 아트를 통해 완성된 영화 그 이상의 것을 향유하려 한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헤아려(?) 팬들의 통장을 터는 고급스러운 아트북이 해외에선 영화 개봉과 맞물려 쏟아지다시피 출간된다. 국내에서도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알려주마’ 식의 아트북과 오피셜 가이드북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출간된, 볼거리, 읽을 거리가 풍성한 아트북 컬렉션을 소개한다.
<The Art of 코코>
존 래시터, 리 언크리치, 에이드리언 몰리나 지음 / 아르누보 펴냄
디즈니·픽사의 크리에이티브 선임 책임자 존 래시터는 아트북 <The Art of 모아나>의 서문에서 자신은 “유럽이 아닌 다른 문화권의 신화와 전설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디즈니가 고대 폴리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모아나>(2016)를 만들 즈음 픽사에선 리 언크리치 감독이 멕시코 문화를 통째로 이식한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뮤지션이 되고 싶은 멕시코 소년 미구엘이 ‘죽은 자의 날’에 뜻밖의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 바로 <코코>다. 각본가이자 공동연출자인 에이드리언 몰리나를 비롯해 멕시코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대거 영화에 참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 멕시코의 전설적 뮤지션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를 창조하기 위해 “페드로 인판테, 호르헤 네그레테 같은 옛시절의 스타부터 비센테 페르난데스 같은 동시대 인물까지 멕시코의 유명한 배우 겸 가수를 모조리 연구”하는 세심함도 기본이다. <The Art of 코코>를 비롯해 <The Art of 모아나> 등 아르누보에서 꾸준히 발간하는 디즈니·픽사애니메이션 아트북 시리즈는 나무랄 데 없는 애니메이션 교재이기도 하다.
<The Hidden Art of 디즈니 골든 에이지>
디디에 게즈 지음 / 아르누보 펴냄
월트 디즈니를 포함해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와 스토리텔러에게 ‘영감’을 주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디즈니 최초의 컨셉 아티스트 앨버트 허터, 단 1분도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디즈니의 두 번째 컨셉 아티스트 펠디넌드 호르바트, 도서 삽화가로 이미 유명했던 구스타프 텐그렌, 디즈니의 스토리 부서에 처음으로 고용된 여성 비안카 마조리가 그들이다. 저자 디디에 게즈는 1930~4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컨셉 아티스트로 일한 이 네명의 창의적인 작업물을 통해 디즈니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1940년 2월 23일 <할리우드 시티즌 뉴스>에 실린 비안카 마조리에 관한 기사(엄격하게 남성만의 영역인 디즈니 스튜디오에 여성 아티스트가 입성했다는 내용)처럼, 개인사로 시대를 읽는 재미도 크다. 하지만 이 책의 소장가치는 책에 실린 귀한 아트워크에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리서치 도서관 등에 보관된 작업물은 경이롭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컬렉션>
매트 졸러 세이츠 지음 / 윌북 펴냄
“웨스 앤더슨 영화 경력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평론가 매트 졸러 세이츠는 웨스 앤더슨과 나눈 세번의 긴 인터뷰를 비롯해 배우 레이프 파인스, 의상 디자이너 밀레나 카노네로,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프로덕션 디자이너 애덤 슈톡하우젠, 촬영감독 로버트 예먼을 인터뷰한 내용까지 실었다. “마술처럼 열리는 (맨들 빵집) 상자의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샘플을 8천개쯤 만들었다”며 웨스 앤더슨의 집요함을 폭로하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애덤 슈톡하우젠, “첫인상은 아주 큰 안경을 끼고 나온 철부지” 같았지만 “이내 시각적으로 같은 것에 끌린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촬영감독 로버트 예먼(웨스 앤더슨이 만든 모든 실사영화의 촬영을 맡았다)의 추억담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기에 평론가들의 애정 어린 에세이와 평론까지 더해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 컬렉션>은 텍스트에 더없이 충실한 아트북으로 완성됐다. 더불어 막스 달튼의 일러스트와 자료 사진들이 텍스트의 가독성을 높인다.
<배드 대드-웨스 앤더슨 아트 컬렉션>
캔 하먼 지음 / 윌북 펴냄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드 대드>라는 전시가 열렸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영향을 받은 화가, 조각가,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캔 하먼이 운영하는 스포크 아트 갤러리에서 주관한 이 전시는 큰 성공을 거뒀고, 전시에 소개된 작품은 <배드 대드-웨스 앤더슨 아트 컬렉션>이라는 아트북으로 출간됐다. 영화평론가 매트 졸러 세이츠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반복 감상에 아주 적합하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영화를 또 찾게 되고, 그럴 때마다 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라고 했다.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웨스 앤더슨의 열렬한 팬이었을 그들도 아마 영화를 반복해 보며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의 빨간 모자를 쓴 스티브 지소, <판타스틱 Mr. 폭스>(2009)의 미스터 폭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구스타브와 제로 등 웨스 앤더슨의 캐릭터들을 영화 밖으로 끌어낸 것은 물론, 웨스 앤더슨의 소우주를 팽창시킨 111명의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이 작품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미스터리 월드>
빌리 렉스, 닉 존스, 대니 그레이던 지음 / 아르누보 펴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팽창은 덩달아 수많은 아트북과 오피셜 가이드와 백과사전을 양산했다. MCU에 합류하는 히어로가 늘어날 때마다 혹은 새로운 시리즈가 제작될 때마다 ‘OOO 오피셜 가이드’라는 이름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미스터리 월드> 역시 그중 하나다. 다만 이 책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든 것이 아니다. 1963년 스탠 리와 스티브 딧코가 닥터 스트레인지를 창조한 이후 로이 토머스와 진 콜런, 스티브 잉글하트와 프랭크 브루너, 제이슨 에런과 크리스 배커로 등의 손을 거쳐 완성된 코믹스 <닥터 스트레인지>의 세계를 총망라한 가이드북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인물 관계도와 동료 및 적들의 소개,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과 마법 도구에 대한 설명 등이 친절하게 실려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험을 꾸준히 지켜봐온 이들에겐 반가운 정리서가 될 것이고, 닥터 스트레인지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겐 든든한 캐릭터 안내서가 될 것이다. 참고로 종이 끝을 금박으로 마감해 책을 꽂아두면 고급져 보이는 효과도 있다.
<마블 스파이더맨 백과사전>
매슈 K. 매닝, 톰 데팔코 지음 / 아르누보 펴냄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에서 더 발랄해진 10대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을 목격하면서 든 생각은 역시 가장 친근하고 가장 현실적인 마블의 히어로는 스파이더맨이라는 거였다. 1962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이후 스파이더맨은 줄곧 마블의 대표 캐릭터로 군림했다. 충성도 높은 팬들은 스파이더맨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에도 눈이 번쩍 뜨이기 마련인데, 그간 국내에는 스파이더맨 관련 아트북과 오피셜 가이드북 번역서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출간된 <마블 스파이더맨 백과사전>은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고마운 책이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정리된 코믹스의 줄거리, 시대에 따라 변해온 코스튬의 세부, 스파이더맨의 주변 인물과 기획 배경 등이 일러스트와 함께 충실히 담겨 있다. 물론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공식 컨셉 아트북 <Spider-Man: Homecoming: The Art of the Movie>도 얼른 번역돼 출간되길 바라지만.
<옥자> 아트북
봉준호 감독의 <옥자> 아트북 <Okja: The Art and Making of the Film>이 2월13일 출간될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과 틸다 스윈튼, 주요 스탭의 인터뷰가 들어 있고, 옥자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컨셉 아트와 VFX 공정을 보여주는 글과 이미지가 수록돼 있다. 저자인 사이먼 워드는 <콩: 스컬 아일랜드>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메이킹 아트북(<The Art and Making of Kong: Skull Island>, <The Art and Making of Alien: Covenant>)을 쓴 작가다. 책은 하드커버로 144쪽 분량이다.
<해리 포터: 생명체 금고>
조디 리벤슨 지음 / 문학수첩 펴냄
작가 조디 리벤슨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 관한 다양한 해설서를 썼다. 영화 속 캐릭터, 마법 생명체, 마법 도구, 마법 장소에 관해 조디 리벤슨이 기술한 ‘해리 포터 금고 시리즈’ 중에서 국내에 번역 출간된 건 <해리 포터: 생명체 금고>와 <해리 포터: 캐릭터 금고> 두권이다. 그중 <해리 포터: 생명체 금고>는 도비, 켄타우로스, 아라고그, 세스트랄, 그라인딜로우, 바실리스크 등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 동식물의 특징과 탄생 과정을 풀이해놓았다. “생명체 디자인의 핵심 원칙은 자연주의에 기초한 해부학과 동작이었는데 실재하지 않는 생명체에게 이는 특히 중요한 원칙이었다.” 조앤 K. 롤링의 소설 속 신비한 생명체들이 영화에선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되었는지, 영화의 메이킹 스토리를 읽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소설보다 구체적이고 영화보다 사실적인 이미지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실재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져 문득 섬뜩하다.
<너의 이름은. 공식 비주얼 가이드>
신카이 마코토 지음 / 대원씨아이 펴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6) 속 장면 장면을 지면으로 다시 감상하게 만든 ‘비주얼 스토리’부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화감독 안도 마사시, 캐릭터 디자이너 다나카 마사요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밴드 래드윔프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타키의 목소리를 연기한 가미키 류노스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한 작품을 서른번 이상 반복해서 보고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된 장소를 성지순례할 만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으로 소문난 배우다. 그런 만큼 <너의 이름은. 공식 비주얼 가이드>에서도 미츠하의 목소리를 연기한 가미시라이시 모네와의 대담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대담에 모두 참여해 팬심을 인증한다.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되는 도쿄 로케이션 맵이 실린 것은 물론, 작화 단계에서 캐릭터의 특징을 잡아가는 공정도 살펴볼 수 있다. 오른쪽 페이지부터 읽어나가는 방식을 택해 읽는 순서가 헷갈릴 수 있으니 유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