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대작③] <블랙팬서>를 더 재미있게 보는 여섯 가지 키워드
2018-02-12
글 : 안현진 (LA 통신원) |
[설 연휴 기대작③] <블랙팬서>를 더 재미있게 보는 여섯 가지 키워드

지난 1월 30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블랙팬서>(2월14일 국내 개봉)의 프리미어는 단순한 시사회가 아니라 화려한 연출이 겸해진 영화 팬을 위한 행사였다. 티찰라/블랙팬서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먼이 입장할 땐 영화 속 티찰라의 여성 호위무사대인 도라 밀라제가 나타나 보스먼이 탄 차량을 호위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토속 의상을 입은 악대가 전통악기를 두드릴 때 출연진이 한명씩 등장하는, 새로운 방식의 프리미어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이 지면에서 꺼내놓은 이야기는 지난해 12월 4일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에서 <블랙팬서>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만나 나눈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블랙팬서>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주연배우 채드윅 보스먼, 악역 에릭 킬몽거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B. 조던 그리고 와칸다의 공주이며 명석한 두뇌를 가진 (토니 스타크보다 더 똑똑한) 슈리를 연기한 영국 배우 레티시아 라이트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키워드로 풀었다. <블랙팬서>를 극장에서 만나기 전 관객의 호기심과 기대를 돋울 여섯 가지 키워드다.



KEY WORD 1. 와칸다



<토르: 천둥의 신>(2011)이 아스가르드를 소개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가 은하계로 무대를 넓힌 것처럼 <블랙팬서> 역시 또 한번 관객과 팬들을 이전에 본 적 없는 공간 ‘와칸다’로 데려간다. 와칸다는 아프리카 대륙에 숨겨진 가상의 국가로, 티차카 국왕(존 카니)의 죽음 뒤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티찰라(채드윅 보스먼)가 왕좌를 이어받으려 돌아가는 고향이다. 전통적으로 와칸다에서는 가장 강한 자에게 ‘블랙팬서’라는 칭호가 내려졌고, 와칸다의 가장 강한 무사가 입는 갑옷은 국가의 특산품인 비브라늄과 일찍이 큰 발전을 이룬 과학기술로 만들어진다. <블랙팬서>는 시간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를 다루며, 5월 개봉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세상을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 왕자 티찰라가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개인적이고 국가적인 위기와 도전에 대한 영화다.



예고편에는 울트론에게 팔 하나를 잃은 율리시스 클로(앤디 서키스)가 등장하는데, 그는 와칸다를 두고 “사람들이 엘도라도라고 믿었던 황금의 도시”라고 말한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남미를 뒤져왔다고” 비웃는 율리시스에 따르면 와칸다를 직접 본 뒤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와칸다는 아프리카 대륙 가운데 서구의 지배에서 온전히 자유로웠던 유일한 나라이며, 희귀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티찰라가 구사하는 영어에 아프리카 특유의 억양이 강하게 들어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티찰라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티차카를 연기한 배우 존 카니가 가진 코사어(아프리카 민족 중 하나인 코사족의 언어) 억양을 연습한 보스먼은 “와칸다는 단 한번도 영어권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나라”기 때문에 티찰라의 영어에 아프리카 특유의 억양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KEY WORD 2. 티찰라 a.k.a. 블랙팬서



블랙팬서가 마블의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블랙팬서의 슈트가 정체를 숨기기 위한 가면이나 코스튬이 아니란 점이다. 전통적으로 와칸다에서는 가장 강한 전사에게 블랙팬서라는 칭호가 따랐다. 티찰라는 왕인 동시에 가장 강한 전사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가 티찰라/블랙팬서를 두고 “그 스스로를 슈퍼히어로라고 여기지 않는 슈퍼히어로”라고 설명한 것은 온당하다. 또한 채드윅 보스먼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어깨에 놓은 책임을 아는 안티히어로”라고 설명했다. 보스먼이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주목한 건 한번도 서구 열강에 지배받은 적이 없는 와칸다의 정체성이었다. 티찰라의 말과 행동은 와칸다 외에는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어야 했고, 그런 중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 진정한 블랙팬서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봤다.



사실 채드윅 보스먼은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에서 상징적인 아이콘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42>(2013)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였던 재키 로빈슨을, <겟 온 업>(2014)에서는 미국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인 제임스 브라운을, <마셜>(2017)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굿 마셜을 연기했다. 그런데 보스먼은 티찰라를 그가 지금껏 연기했던 어떤 캐릭터보다도 외교적이라고 말한다. 이전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인종차별을 딛고 일어난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면, <블랙팬서>의 티찰라는 보스먼이 주목한 것처럼 “어떤 영향력에도 노출된 적 없는” 우월한 민족의 혈통을 이을 왕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적통성에 의심을 표하고 반기를 드는 인물이 바로 에릭 킬몽거다. 에릭은 오래전 와칸다에서 추방된 난민으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와칸다를 만들기 위해 돌아온 뒤 티찰라의 즉위를 막으려고 한다.



KEY WORD 3. 빌런



<블랙팬서>에서 티찰라가 넘어야 하는 산은 여럿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그러하듯 와칸다 역시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데, 티찰라는 각 민족의 대표 전사들과의 전투에서 이김으로써 와칸다 최고의 전사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티찰라의 상대 중에는 영화의 악역인 에릭 킬몽거가 있다. 에릭은 어릴 때 와칸다를 떠나온 난민으로 율리시스 클로가 와칸다를 염탐하는 것을 도와주다 발각된 그의 가족이 쫓겨난 뒤 미국에서 살아왔다. 영화에서 율리시스와 에릭이 한패인 까닭이다. 에릭을 연기한 마이클 B. 조던은 <블랙팬서> 속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분장 시간이 오래 걸린 연기자였는데, 이유는 에릭의 상체에 있는 상처들 때문이라고 한다. 언뜻 200개는 돼 보이는 흉터는 에릭이 죽인 사람 수를 상징하는데, 촬영 때마다 흉터 자국을 하나하나 붙이고 피부톤에 맞춰 색을 입혀야 했다고.



TV시리즈 <와이어>(<HBO>)로 데뷔해 <크로니클>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마이클 B. 조던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2013)와 <크리드>(2015)에 이어 <블랙팬서>에서 세 번째로 함께 작업했다. “비슷한 유년기의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에” 쿠글러 감독과 쉽게 가까워졌으며 감독을 두고 “내 사람”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조던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연기했다.



KEY WORD 4. 라이언 쿠글러



<블랙팬서> 감독으로 라이언 쿠글러가 가장 먼저 고려됐던 건 아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회장인 케빈 파이기는 라이언 쿠글러에 앞서 2015년 <셀마>를 연출한 여성 흑인감독인 에이바 듀버네이에게 감독직을 제안 했었다. 하지만 듀버네이 감독이 마블의 제안을 고사하면서 기회는 다시 쿠글러에게 돌아갔다. 쿠글러는 감독직을 제안받고 수락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몇살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네 코믹북 스토어에 들어가서는 자기와 닮은 슈퍼히어로도 있냐고 직원에게 물었는데, 그는 그때 처음으로 <블랙팬서>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지난 뒤 <블랙팬서>의 감독직을 수락한 그날 쿠글러는 아내와 함께 다시 바로 그 코믹북 스토어에 찾아가 <블랙팬서> 코믹스를 두권 더 샀다고 한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의 어떤 영화보다 개인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말해왔다. 흑인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감독직을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불편해하기보다는 영광이라고 말하는 그는 마블 스튜디오라는 체계적인 슈퍼히어로물 제작 시스템에 그만의 인장을 더하기 위해 이전에 함께 일한 스탭들을 고집부려 영입했다. 마블에서 만든 영화 대부분이 거의 동일한 스탭들과의 작업으로 만들어졌기에 시각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했다면, <블랙팬서>는 쿠글러가 고른 스탭들이 투입되어 마블의 이전 영화들과는 완성된 모습에서 크게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쿠글러가 <블랙팬서> 제작에 초대한 동료들은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2013)의 여성 촬영감독인 레이첼 모리슨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와 <크리드> 두편에서 작업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하나 비츨러 그리고 작곡가인 루드비히 고란손이다.



KEY WORD 5. 부산



<블랙팬서>의 한국 내 별명은 ‘부산팬서’다. 미국 애틀랜타의 파인우드 애틀랜타 스튜디오와 스크린젬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분량이 촬영됐지만 한국 부산에서도 중요한 액션 장면들이 촬영됐기 때문에 이런 애칭이 붙여졌다. 예고편에서 이미 공개된 대로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액션에 참여하는 카지노 장면과 빠른 속도와 스케일을 자랑하는 차량 추격 신이 부산 광안리, 광안대교, 사직동, 마린시티 등에서 촬영됐다. 특히 카지노 장면은 와칸다의 여성 호위무사대인 도라 밀라제의 무술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장면이기도 하다. 일견 할리우드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시아풍 장소처럼 그려진 점이 아쉽지만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한 자동차 액션 장면 사이로 화려한 부산 밤거리를 수놓는 한글 간판들이 보이는 것은 반갑고 신기하다. “제임스 본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화려한 메트로폴리스를 원했다. 그리고 한국의 부산에서 촬영할 거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티찰라가 아시아 국가에 있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동시에 흥분됐다.” 또한 쿠글러 감독은 “첫눈에 부산과 사랑에 빠졌다”고도 말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지역과 부산이 많은 면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바다 위로 시원하게 뻗은 광안대교가 영화의 촬영지로 선택된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KEY WORD 6. 블랙필름



<블랙팬서>의 영화화가 산업 내에서 언급된 건 1992년 웨슬리 스나입스가 블랙팬서 역할에 관심을 보이면서다. 그로부터 여러 번 제작이 진행되고 엎어지는 고된 과정이 있었지만, ‘흑인 슈퍼히어로’에 대한 갈증이 오래전부터 할리우드에 있었다는 걸 방증하는 시간이었다. ‘블랙필름’은 미국에서 꾸준하게 만들어지는 영화의 종류다. 장르에 구별은 없지만 흑인(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주관객으로 겨냥하는 영화로 출연진의 대부분이 흑인 배우들로 이뤄진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블랙팬서>도 블랙필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흑인 관객을 겨냥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시작이 다르다. 그러나 채드윅 보스먼, 루피타 니옹고, 마이클 B. 조던, 대니얼 칼루야, 레티시아 라이트 등 젊은 흑인 배우들을 필두로 안젤라 바셋, 포레스트 휘태커 등 연기파 중견 흑인 배우들까지 총동원되며, 카메라 뒤의 감독·각본가·제작자의 크레딧에서도 흑인 영화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점도 <블랙팬서>가 마블 스튜디오의 다른 영화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지점이며 블랙필름이라고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정작 제작진과 출연진은 <블랙팬서>를 “마블의 영화”라고 일축하지만 <겟 아웃> <걸즈 트립> 같은 흥행한 블랙필름이 관객과 만난 바로 이듬해에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 데에는 어쩔 수 없이 관련된 주석을 달고 싶어진다. <블랙팬서>는 블랙필름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채드윅 보스먼은 “우리는 확실히 1992년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지금이 그 어떤 때보다 더 희망이 있는 때라고 생각하고 싶다. 흑인 대통령이 있었고, 마블은 최근 몇편의 영화에서 카메라 앞과 뒤에 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할리우드도 1992년과는 다르다. 지금이야말로 <블랙팬서>라는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위한 시대가 준비된 것 같다. 다른 시대에 만들어지는 <블랙팬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