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eToo⑥] "나도 말한다"는 미투(#MeToo) 운동, 지금부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018-03-12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성폭력 문제의 해결은 결국 민주주의와 직결되어 있다”
미투 운동에 가속이 붙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대담을 가졌다. 왼쪽부터 최기자, 정슬아, 김홍미리, 이산씨.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악행을 드러낸 건 결국 또, 피해자 자신이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피해자는, 권력으로 인해 옴짝달싹 못했던 지난 시간을 고발하며, 국민을 향해 자신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미투(#MeToo) 발언 이후 불과 두달여 만에 “나도 말한다”는 동참의식으로, 적어도 성폭력 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절대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시선에 갇히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만큼 발전적인 단계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피해자를 위한 가시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단독, 독점이라는 명목하에 피해자의 제보를 이용하는 언론, 제보를 한 피해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반응, 가해자에 대한 처벌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현실의 높은 장벽은 이 문제에 관해 깨어 있고 앞서나가는 피해자의 보폭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홍미리(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이산(마임배우,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활동가), 정슬아(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최기자(젠더교육연구소 이제 부소장)씨와 함께 미투 운동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는지 점검해보았다.

최기자

-지난해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뒤 1년여가 지났다. SNS가 고발의 장이 됐던 것과 달리, 불과 1년 사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이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미투 운동을 넘어 ‘미투 혁명’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변화가 크다.

=최기자_ 피해자가 이름과 얼굴을 걸고 폭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지난해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땐 SNS에서 A씨, B씨 등으로 언급하는 선이었다면, 지금은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걸고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되기도 했고. 이렇게 해야 나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가 ‘국민들이 나를 보호해 달라’고 하면서 방송에 나온 것처럼 말이다.

=김홍미리_ 지난해까지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했다. 연극계 내,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를 해시태그로 제기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각각 존재했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로 연결되었다. 기폭제가 된 게 안태근 전 검사 성추행 사건이었다. 현직 검사가 자신의 피해를 카메라에 대고 직접 이야기하는 순간, 검찰 내부 조직의 문제라는 변명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거다. 그리고 그간 고통으로 잠 못 들던 이 땅의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만약 이전처럼 ‘점’의 형태라면 지금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런 기회로 각자 존재하던 피해자들이 하나둘 모여 선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산_ 현직 검사가 방송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이 문제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이게 정말 현실인가, 여기가 대한민국인가 싶어 너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까지 가지게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게 되더라. 결국 그분들의 용기로 피해자들이 혼자가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높아진 거다.

=정슬아_ 지금의 폭로를 보면, 그건 많은 여성들이 그간 꾸준히 겪어 오던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문제에 반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다. 피해자들이 모두 왜 당시에 피해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로 인해 지난 시대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이수성 감독, 배우 조덕제 등의 사건과 관련하여 지난해 #영화계_내_성폭력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지금이었다면 그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들을 향한 기준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체감하는 변화는 어떤 것들인가.

정슬아_ 지난해 영화계에서 대두된 이수성, 조덕제 사건 같은 경우도 이전에는 공론화가 안 되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이야기하는 게 수월해졌다. 하지만 법원으로 이 사건이 가고 나서 결국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조덕제 사건은, 법정 공방 중인 배우를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감독이 거부하기도 했다.

김홍미리_ 지난해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 있었다.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그때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힘이 모여서 ‘접착제’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지금 발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 시간이 바로 지난 1년이었다.

이산_ 미투 사건 대부분이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다. 피해자가 조직에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비난받거나 아예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가 그걸 SNS에 올리거나 제보를 한 것이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법적인 문제로 넘어갔을 때 결과가 회의적이긴 하다. 가해자 처벌은 안 되고 정작 문제제기를 한 사람의 신상만 공개되는 데 그친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 정도 파급력이면 가해자들의 가해를 멈출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미투 터진 다음날은 이윤택이 가해를 못했을 것이다. 고소장을 넣었다고 그들이 가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결국 고소보다 더 강력한 행동이 지금의 미투 운동인 것이다.

이산

왜 가해자에게 질문하지 않는가

-긍정적인 반향만큼이나 우려의 지점도 엿보인다. 특히 최근 일련의 언론이 미투 운동을 다루는 방식에서 심각성이 읽힌다. 가해자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사안의 심각성이 보장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를 통한 2차 가해자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슬아_ 가해자나 피해자나 실명이 나오지 않으면 기사화해주지 않겠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언론계의 성폭력 사건 보도 태도는 사실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2006년에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성폭력 보도시 피해 생존자 관점의 보도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도수칙으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매년 큰 성폭력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극적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바른 보도 지침도 이야기되지만 항상 무용지물이 된다. 피해자 실명과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추가 취재 없이 게시물의 댓글까지 다 긁어서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피해자의 고발이 ‘사연’이 되면서 주작으로 왜곡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미투라고 하고서는, ‘이제 미투 운동이 변질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다. 이렇게 소비만 하고 빨리 이 문제를 끝내고 싶어 하는 거다.

김홍미리_ 지금의 언론을 보면 추문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신문 제목이 성폭력에 초점이 가는 게 아니라 성추문으로 생산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언론의 태도가 가장 심각하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먼저 기사화부터 하니 무고까지 이어지는 거다. 결국 피해자가 다시 의심을 받게 되는 거다. 제보 이후 2라운드는 법정 공방인데, 언론이 왜곡된 기사를 생산해서, 정작 피해자들이 그 싸움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언론이 지금의 상황에서 바짝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이 운동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정슬아_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경우 미투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심어주고 있다. 주목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상당히 많을 거다. 더 자극적인 피해사실, 더 유명한 가해자, 피해자를 찾아다니고, 더 센 피해가 없으면 이 정도는 뭐,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산_ 언론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과연 성폭력 사건이 줄어들길 바라면서 기사를 쓰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난 3월 5일 이윤택 사건의 피해자가 모인 기자회견(‘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에 발언자로 참석했는데 피해자들이 눈물만 보이려고 하면 그 순간 취재진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지더라. 기자회견 끝날 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이 취재진에 ‘씩씩한 표정으로 내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주셨다. 언론이 ‘피해자상’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에 대한 지적을 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슬아_ 언론이 관심을 두는 건 피해자들이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트라우마에 처해 있나다. 피해자들이 사건 때문에 고통받고 본인의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는 데에 초점을 두고 그걸 담으려 고만 하는 거다. 그들이 지금 열심히 에너지를 모아서 사건을 알리고, 법정 싸움을 알리는 그 에너지를 포착하고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김홍미리_ 그 지점이 성폭력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관성이다. 항상 사건 이후 피해자가 이상하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정작 가해자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시선은 이제 임계점이 지났다. 이미 지형은 바뀌었고 가해자들도 부끄러움을 전하고 있는데, 언론은 아직도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만을 소비하려고 하고 있다.

정슬아_ 그런 시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피해자가 더 그 생각에 빠져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 의해 문화계가 흔들린 지금 상황에서, 언론은 그걸 ‘쓰나미’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YTN에서는 ‘미투 폭로로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김홍미리_ 우린 불편하지 않은데. 그런 기사가 결국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쓰는 것들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미투 운동’을 우리도 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사대주의 쩐다’, ‘성폭력도 수입했나’ 이런 말까지 돌더라.

이산_ 나는 이런 폭발적인 저항감이 좋다. 지금 분위기에 대해, 우스갯소리라면서 남성들이 ‘어깨만 주물러도 이젠 1천만원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성들이 그간 당해온 걸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불편함을 안 느끼게 될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면 좋겠다.

정슬아

가해자 징계는 조직의 명예 실추가 아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도움이 절실하듯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고민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피해자들의 제보 이후 징계위원회가 급조되고 가해자들을 제명하는 형태로 빠르게 처리되지만, 정작 그들이 책임을 통감하는 자기반성에만 그치지 않는, 보다 법적인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슬아_ 미투 운동을 통해서, 이번에도 가해자가 처벌이 안 되고 그냥 넘어간다면 사달이 날 수 있다는 에너지로 읽히는 데까지 가야 한다. 가해자들이 기존처럼 계속 ‘꼬리자르기’ 방식으로 협회나 조직을 탈퇴하는 선에서 그치고 어떤 명확한 징계조치를 받지 않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무원이나 교사들은 자진해서 사퇴를 할 경우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연금을 평생 받을 수 있다. 직위 내려놓는 것만으로 다른 징계를 안 받는 지금의 방식. 그걸 중단할 수 있는 제도가 법적 처벌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가해자들의 탈퇴나 퇴사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6개월 안에는 사퇴를 못하도록 말이다.

최기자_ 각 기관의 고충처리위원회가 잘 정비되어 전문성을 갖추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점점 변화가 오고 있다. 예전에는 가해자들에게 가장 먼저 사표를 내라고 하고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징계를 받고 나가는 쪽으로 규정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건이 접수되고 나서 바로 사표를 못 내게 하는 것이다. 센터 운영의 기준을 비롯해, 징계 자체를 공개화하는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후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한다. 쉬쉬하면서 빠르게, 소리 없이 처리되면 결국 가해자 처벌은 축소되고 피해자만 다시 ‘그런 일이 있었대’라는 소문의 당사자가 되고 만다.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이 조직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재고도 필요하다.

김홍미리_ 가해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몰랐다’는 건 가장 좋은 핑계인 것 같다. 처음부터 이 과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학교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 이 부분에 대한 학칙이 만들어졌고, 주변을 보면 여성민우회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편의적으로 생각하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대두된다. 당장의 불만 끄려고 하는 것이다. 책임은 지기 싫은 데다, 최소한의 요식행위만 하려는 데서 결국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정슬아_ 성폭력 피해자 문제가 법 개정으로 갔을 때 어떤 모양이 될지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나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이루어지는 성폭력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실태조사와 예방교육은 결국 세트로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은 실태조사를 통해 무엇을 할지 목표가 없는 채로 실태조사만 하고 있다. 실태조사 이후의 방안, 문화예술계의 계약관계 특수성을 반영했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의 피해자 지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론을 통해 피해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말고 가해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게 있을지 중·단기 대책이 명확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김홍미리_ 특히 소송기간 동안 피해자들에게 생활비 지원 관련 정책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그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산_ 피해자에 대한 입체적 지원이 절실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KAWF)에 예술인 긴급 복지지원 정책이 있다.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로 인해 작업을 그만두는 이들의 수도 상당히 많다. 생계지원 등을 일정기간 받을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최기자_ 성폭력을 안전의 문제로 법제화하자는 이야기인데, 그 부분은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계, 문화계의 특수성도 반영되어야 한다. 사실 대학이나 기업 같은 경우는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면 어느 정도 구조가 갖추어지는데 문화계, 연극계는 어떤 바운더리가 없다. 그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신고센터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지, 행정처분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정슬아_ 그래서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만약 성희롱이나 폭력 문제의 가해자인 경우 지원금을 못 받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식의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영진위 홈페이지에 작품당 스탭 참여, 정보표시 등이 나와 있는데 그 리스트에 성폭력 사건 분쟁이 있다면 표시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불명예로 활동에 타격을 입게 하는 것이다. 분쟁 중인 업체나 개인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김홍미리

‘남자들이 다 그렇지’ 하는 사고방식이 피해를 만든다

-지금도 제보를 하는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흐름을 막을 수 없고, 절대 간과해서도 안 될 상황이다. 결국 현재의 흐름이 개별적인 사안에 그치지 않고, 권력에 의해 성적 억압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회구조와 체질을 바꾸려면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에 다각도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산_ 연극계에서 미투를 고민하는 분들의 경우 그분들은 익명으로 제보하길 원한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공익적 문제로 쓰이는 거다. 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달라는 고충 처리와는 성질이 다르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이게 문제다, 라고 제안할 통로가 없다.

김홍미리_ 국가가 이 문제에 관한 연구 예산을 대대적으로 책정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곧 도래할 무고다. 이미 앞서 피해 사실을 밝힌 지난해의 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해자가 유죄건 무죄건 간에 무고죄로 피해자를 걸 수 있다. 무고는 피해자를 괴롭힐 가장 좋은 법적 수단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공익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걸 거는 건데 그걸 그냥 개인적인 문제로 방관하고 말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이제 선언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할 법을, 가해자가 무고를 걸 수 없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말을 지키려면 수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거다. 지금 어떤 터널의 한가운데 있는지, 미투 운동이 얼마만큼의 크기로 진행되는 혁명적인 사안인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산_ 여성가족부에서 간담회 같은 건 많이 진행된다. 그런데 사안이 이 정도까지 왔으면 이제 자문을 구할 게 아니라, 본인들이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고 입장을 밝혀야 할 때다. 각계에서 성폭력 고발이 터질 때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는 식으로 나와서는 방법이 없다. 초점이 정확하지 않으니 각종 사안을 다 준비해서 가는데 그러다보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슬아_ 연극계, 영화계, 문단 등에서 성폭력 재발을 막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피해자의 조력자들이 움직이려고 하니 그걸 두고, 이왕 그러면 너희가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의 역할을 잊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각 조직이 만들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이 각자 힘을 보태고 활동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정부 주도의 예산 책정이나 각 협의처와의 논의의 장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최기자_ 지금의 사건들을 보면 가해자가 강간까지 행했을 때의 문제제기뿐만 아니라 그전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도 무시했을 거다. 사소한 일이라도 처음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들 다 그러는데, 또는 남자들이 다 그렇지, 하는 사고방식이 결국 큰 피해를 만든다.

정슬아_ 유명한 짤이 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본인들은 생각했다고 하지만, 잘못 배운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의 말과 행동에 대한 무게를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김홍미리_ 가해자가 스스로 내려놓는 판단을 할 게 아니라 처분을 기다리고 처분을 각오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정슬아_ 여성민우회가 주최해 지난 2월 23일 신촌에서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버스킹 무대를 마련했다. 이런 잘못이 묵인되는 세상은 이제 끝났고, 당신들이 그렇게 살 수 없는 세상이 왔다는 걸 표현하는 자리였다. ‘강간’이라는 표현을 보고 우리의 발언이 너무 센 거 아니냐고 하는 시선도 있지만, 이 문제의 시작은 넓고도 깊다. 이미 강남역 살인사건 때부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에 대한 발화가 있어왔다. 그런 가운데도 여전히 여성들만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체감한다. 여전히 ‘미투 운동으로 노래방 매출 하락했다’ , ‘개강했는데 신입생 장기자랑 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기사들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들, 아주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변화다.

김홍미리_ 사회가 이제 새로운 놀이문화를 개발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다시 세팅할 필요가 있고 지금은 그 기회가 주어진 거다. 성폭력 문제의 해결은 결국 민주주의 문화와 직결되어 있다. 바람직한 문화를 만드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야 할 시점이다. 영상 한번 보고 끝내는 일회성 교육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1997년 금융실명제, 최근의 김영란법처럼 그야말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비록 지금은 누군가에겐 피곤한 일이거나 위축시키는 일 등으로 여겨져 저항감이 더 크겠지만 이후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이산_ 사회적 비용, 모든 사람들의 시간까지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투 혁명이라는 말을 할 때, 혁명이 얼마나 큰일인가. 과거에는 생계를 접고 피 흘려야 했던 혁명사가 있었다. 어떻게 내 시간을 쓰지 않고 혁명을 이룰 수 있겠나. 같이 시간을 쓰자, 지혜를 모으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정슬아_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 방안도 중요하고,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도 중요한 만큼,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할 건 이 시간을 통과한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다시 살아갈 것인가다. 그걸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가해자 도려내기가 아니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다 다시 일을 해야 하고, 이후의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결국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자 권력관계의 문제다. 이 부분을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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