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빈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재임 기간 동안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여직원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A씨와 조직위 직원 B씨가 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각각 폭로했고, <씨네21>은 A씨와 B씨를 만나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들었다.
첫 번째 피해자가 영화제 사무국 퇴사에 이르기까지
일단 A씨는 부천영화제에서 13년간 근무하다가 2016년 9월 구두로 해직통보를 받은 프로그래머다. 그는 2013년 10월, 당시 부천 만화박물관에 위치한 조직위 사무실에서 김영빈 전 집행위원장이 “청바지가 예쁘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엉덩이를 만져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고선 집행위원장님이 바로 사무실을 나가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A씨는 난생처음 겪은 일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고소할 생각이 없었냐고? 쉽지 않았다. 내 엉덩이를 만진 건 분명 잘못된 일인데 고소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이 집행위원장이자 감독이기도 했으며, 일도 계속 하고 싶었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일이 유야무야됐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건 다음해인 2014년이었다. 부천시 영화제 담당자가 김영빈 전 집행위원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불렀고, 김 전 집행위원장에게 “A씨가 위원장님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알려왔다. 학교나 가정에 알려지면 불편해지고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영화제로서도 그런 문제에 취약하니 당사자(A씨)를 만나보시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A씨와 김 전 집행위원장은 조직위 사무실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전 집행위원장이 “(청바지 단을 높게 입고 와서 예쁘다고 생각해) ‘예쁘네’ 하며 혁대 있는 곳을 가볍게 쳤는데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나”라고 묻자 A씨는 “언짢았다”고 대답했다. 김 전 집행위원장은 <씨네21>과 만난 자리에서 “언짢았다면 미안하네. 앞으로 일을 열심히 해달라”고 사과했다고 한다. 그는 “A씨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당시 그가 내 사과를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도 해명했다. 또 “A씨가 사과를 받아주었기에 그 일을 일단락되었다가 생각했다가, A씨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 몰래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한 매체 보도를 통해 확인하자 소름이 끼쳤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A씨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지만 부천시에 보고되면서 사과를 한 거라, 사실 사과도 우습게 한 모양새였다”고 반박했다. A씨는 “그때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버텨보자 싶어서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피해의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하는 내내 되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김 전 집행위원장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에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몇몇 매체를 통해 A씨에 대한 2차 가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씨네21> 또한 그 정황을 면밀하게 확인하였으나 사건이 현재 민사 재판(1심 3번째 심리를 앞두고 있다.-편집자)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재판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어 아직은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
A씨가 그랬듯이 당시 영화제에서 근무했던 직원 B씨는 김 전 집행위원장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직접 겪었다. 2011년 입사한 그는 첫 출근 때 동료 직원들로부터 들었던 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조직위 회식도 참석해야 하고, 노래방도 따라가야 하며, 노래방에서 김 집행위원장과 블루스를 춰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내용의 얘기였다. 그런 상황이 눈앞에 닥치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그걸 미리 걱정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까닭에 그를 포함한 여직원들은 남자 직원들에게 “여자들이 블루스 추는 걸 싫어하니 하지 마시라”고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 직원들은 김 전 집행위원장에게 그 의견을 전달했다. 김 전 집행위원장은 얘기를 전해 듣고선 “싫어하는 줄 몰랐는데 싫다고 하니 앞으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 직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김 전 집행위원장이 누가 그 얘기를 꺼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김 전 집행위원장은 여직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네가 꺼냈냐’, ‘쟤가 말했냐’ 하며 ‘블루스 반대’ 발언의 당사자를 색출해내려고 했다. “노래방에서 블루스 추는 건(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한동안 블루스는 노래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3년 조직위 워크숍에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직원들은 노래방이 너무 싫었고, 새로 입사한 여직원들도 많았으며, 블루스를 추는 상황이 안 벌어지게 하기 위해 워크숍 장소를 노래방이 없는 숙소로 잡았다. 하지만 술이 들어간 김 전 집행위원장은 기어이 노래방을 알아내라고 지시해 직원들을 끌고 노래방에 갔고, 그곳에서 영화제에 들어온 지 1~2주밖에 되지 않은 여직원들과 블루스를 췄다고 한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이 당하는 걸 보고도 도와주지 못하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노래방에서 나왔”던 까닭에 “몇명이 김 전 집행위원장과 블루스를 췄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가 그가 영화제를 퇴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사건이 2013년 11월에 갔던 조직위 워크숍에서 벌어졌다. 그는 김 전 집행위원장, 동료 직원들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 두손을 입고 있던 점퍼의 호주머니에 넣고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손이 불쑥 호주머니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워 누구인가 싶어 돌아봤더니 김 전 집행위원장이었다. 순간 B씨는 손깍지를 빨리 빼야겠다는 생각 외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날 오전부터 계속 함께 있었는데 김 전 집행위원장은 그에게 “오랜만이네”라고 말했고, 그는 ‘다른 사람들도 다 보고 있는데 왜 그러시냐’ 정도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B씨는 평소 그런 일을 겪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라는 자책감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매일 수십번, 수백번씩 김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 일은 그가 2013년 12월 영화제를 퇴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 피해자의 폭로
지지난해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을 때 B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스스로 비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최근 ‘미투’(#MeToo) 운동 바람이 다시 불었는데도 그때 상처가 너무 크고, 다른 여성들에 비해 피해 내용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 전 집행위원장으로부터 비슷한 일을 겪은 A 프로그래머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 한 방송사에 자신이 겪은 일을 폭로했다고 알려왔다. 그 말을 들은 B씨는 관련 기사와 영화제 공식입장을 찾는 과정에서 김모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보고 폭로를 결심했다. ‘…(중략) 지금처럼 말 많은 세상에서, 왜 다른 언론에서 받아쓰거나 후속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것일까. 단순하다. 팩트가 없으니까.’(김모 프로그래머 SNS 글 중 일부) 이 구절을 읽고 그는 “후속보도가 왜 없을까,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례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직장에서 블루스 좀 추고, 엉덩이 좀 만진 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될까봐 나서게 됐다. 한명이 얘기하는 것과 두명, 나아가 100명이 얘기하는 건 다르니까”라고 말했다.
김영빈 전 집행위원장은 B씨에 관한 보도가 나온 날 <씨네21>과 만나 자신의 입장을 적극 해명했다. “여직원들과 블루스를 췄냐? 산책을 하면서 여직원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잡았냐, 라고 질문을 하면 밑도 끝도 없는 얘기처럼 들릴 것 같다”며 자신의 입장을 적극 해명했다. 김 전 집행위원장은 “그날 워크숍은 한해를 결산하는 기념으로 조직의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였고, 덕분에 기분이 고양된 상태였던 것 같다. 단둘이 있었던 적이 워크숍 일정 내내 한번도 없었고, 다른 직원들 모두 함께 있었다. B씨의 손을 잡았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상대방이 잡았다고 하니 잡았겠지?”라고 애매하게 말했다. 또 그는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회식을 하면 2차로 노래방을 간다. 노래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춘 적은 있다. 하지만 신입 여직원들이 싫어하는데 강제로 추자고 강요한 적은 전혀 없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술을 따르라고 강제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부천영화제는 A씨의 성추행 사건이 한 매체에 처음 보도됐을 때 “영화제의 입장을 밝혀달라”는 영화 팬들과 관객의 요구에 대응하지 않다가, 자체 진상조사팀을 꾸려 사태를 파악한 뒤 지난 3월 5일에야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부천영화제는 “공개적으로 폭로에 나서게 된 A 프로그래머의 용기에 감사를 드리고 또 그간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음에 죄송한 마음을 보낸다”며 “이 사건은 2013년에 있었고 언급된 전 간부(김 전 집행위원장) 또한 2015년 12월 퇴임한 상태였기에 2016년 새로 출범한 영화제 집행부는 이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2차 피해의 가해자로 언론에 보도된 현재 임원에 대해서는 A 프로그래머가 명예훼손으로 민사 및 형사 소송을 제소한 상태로 영화제의 개입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언급을 자제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영화제는 “그 간부의 다른 성추행 사건(B씨 사건)이 후속 보도되고 영화제가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는 것에 대한 촉구의 목소리가 있어 더이상 가만히 있는 건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더욱 파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어 입장을 밝힌다”며 “전 간부의 성추행 문제는 여러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여직원에 대한 블루스 권유와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 추가 폭로 사실에 대해서 반드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어 법에 따른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2차 피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민사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고,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사실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현재 조직위는 이번 사건들은 전 간부의 성평등 의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위계에 의한 폭력에 제대로 거부하지 못하는 권위적인 조직문화에도 원인이 있다고 보고 아직도 영화제에 그러한 문화가 잔존하고 있다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깊이 반성하고 권위적인 조직문화의 풍토를 청산하고 쇄신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불안정한 고용, 권위적인 조직문화
현재 부천원미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은 A씨와 B씨 사건을 내사하고 있다. 부천원미경찰서는 <씨네21>과의 통화에서 “내사 중이라 관련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수사로 전환될지, 내사 결과를 발표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한국의 국제 영화제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그로 인해 조직문화가 권위적인 까닭에 성폭력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B씨의 말대로 부천뿐만 아니라 부산, 전주국제영화제 또한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모 팀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계약직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보도가 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의 한 팀장 또한 영화제 스탭들에게 성희롱을 저질렀다가 한 피해자가 내부 고발했다는 내용이 트위터에 올라왔다(부산국제영화제에 확인한 결과, “성희롱이나 성폭력까지는 아니었지만 해당 직원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전해왔다.-편집자).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의 영화제들은 위계로 인한 강요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B씨는 “영화제 상황에 맞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만들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씨네21>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산, 전주를 포함해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제 성폭력 문제를 취재할 계획이니 독자들은 영화제 #미투를 metoo@cine21.com으로 보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