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6살인 준 리 감독의 작품은 오퍼레이션 그린라이트 참가작 7편 중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제16회 홍콩-아시아필름 파이낸싱 포럼 기간에 열리는 피칭 행사인 오퍼레이션 그린라이트는 투자자들에게 재능 있는 감독들의 첫 번째(혹은 두 번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다. 준 리 감독이 소개한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는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영문 제목은 <As We Grow>)이다. 이 영화는 아버지가 중국에서 건너온 어린 여자와 재혼하면서 10대 게이 청년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이야기다. 그는 “이 영화는 (성 정체성과 중국-홍콩의 관계 같은) 대조되는 정체성이 위기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LGBT 시네마의 계보에 바치고자 한다”라고 소개했다.
-어떻게 출발하게 된 이야기인가.
=지난 2012년, 홍콩에서 뜨거운 이슈가 있었다. 홍콩 남자와 결혼한 중국 여자가 출산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거부당한 일이었다. 당시 홍콩 사회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화로 재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가.
=그렇다. 계층이나 성별에 따라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게 당연한데 그게 종종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가와 퍼트리샤 청, 경험 많은 두 여성 프로듀서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퍼트리샤 청은 <신투첩영>(감독 진덕삼, 1997), <빅타임>(감독 곡덕소, 1999), <성원>(감독 마초성, 1999) 등 1990년대 홍콩영화를 활발하게 제작해온 프로듀서이고, 장애가는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다.-편집자).
=이 프로젝트에서 퍼트리샤 청은 크리에이티브쪽을 맡고 있고, 장애가는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장애가와 함께 작업해 굉장히 영광이다. 장애가가 대본을 빨리 쓰는 나에게 “대본을 잘 쓰려면 시간이 걸려야 한다. 어릴 때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좀더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셨다. 두분 덕분에 장기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특별히 영화산업을 잘 알지도 못하고, 이 업계를 들어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우연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내가 가진 마음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해 보여준 것일 뿐이다.
-좋아하는 영화는 뭔가.
=인생 통틀어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이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몇번을 봐도 재미있다. 최근에 본 <상애상친>(영문 제목 <Love Education>)도 인상적이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영화산업이지만 중국에서 LGBT영화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에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사회가 점점 개방되길 원하고, 개인적으로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게이 케릭터가 등장한 이야기가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기다리겠다’고 대답한다. 게이 캐릭터나 동성애는 항상 말하고 싶은 소재이자 주제인 까닭에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동안 중국 영화산업이 보여준 성취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중국 영화인 또한 홍콩이나 대만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대해 말해달라.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 있고, 2020년 전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 홍콩에만 있진 않을 거다. 중국으로 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대만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홍콩에 있는 또래 친구들은 중국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