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2018년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창동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했을 때, 의외의 결과는 아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미 칸영화제에서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 2010년 <시>로 각본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거장이다.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상에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이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수상작을 2개나 배출한 감독은 이창동, 박찬욱(2004년 심사위원대상 <올드보이>, 2009년 심사위원상 <박쥐>) 두 사람이 전부다. 과연 <버닝>은 이창동 감독을 국내 유일의 칸영화제 3번의 수상 감독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들이 <버닝>의 경쟁작으로 올라가 있다. 어떤 감독들의, 어떤 작품들이 경쟁부문에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경쟁하게 될지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스크롤 압박을 우려해 1부, 2부로 나눠서 게시했다.
장 뤽 고다르 감독 <르 라이브레 드 이마주>
장 뤽 고다르 감독은 1950년대 프랑스의 유서 깊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했었다. 이후 직접 영화를 찍기 시작, 프랑스 영화계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이라는 뜻. 기존의 관습을 타파하자는 프랑스 영화계의 풍조)를 이끌었다. 그는 지금까지 <네 멋대로 해라>, <알파빌>, <중국여인>, <탐정>, <언어와의 작별> 등 7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수많은 실험적 영화들을 만들어 ‘영화 혁명가’라고도 불린다. 이번 칸영화제의 포스터가 그의 1965년작 <미치광이 피에로>의 한 장면이다.
<르 라이브레 드 이마주>는 다섯 장의 챕터로 구성돼 있으며 석유자원, 법률 등 오늘날 아랍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장 뤽 고다르 감독은 러시아 잡지 <세안스>와의 인터뷰에서 <르 라이브레 드 이마주>는 배우가 등장하지 않고 나레이션, 이미지, 소리만으로 구성된 영화라고 전했다. 그의 실험적이고 독특한 형식이 돋보일 듯하다.
스테판 브리제 감독 <엣 워>
스테판 브리제는 프랑스 감독으로 1999년 장편 데뷔작 <홈타운 블루>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출품되며 유명해졌다. 이후 <사랑 때문에 있는 게 아니야>, <마드무아젤 샹봉> 등의 작품을 연출, 2016년 <아버지의 초상>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배출했다. 다음 작품인 <여자의 일생>으로 여러 영화제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엣 워>는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공장을 폐쇄해 갑작스레 해고당한 1100명의 사람들이 로랑이 공장 관리자들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초상>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뱅상 랭동이 해고당한 이들의 대표로 출연한다.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 <쏘리 엔젤>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누벨바그의 선구자였다면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누벨바그의 후예라 불리는 감독이다. 그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하며 작가로써 활동하다 장편 데뷔작 <세실 카사르, 17번>을 시작으로 <내 어머니> 등의 작품에서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평단의 칭송을 받았다. 2006년 <파리에서>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소개돼으며 2007년 <러브 송>이 경쟁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2008년 레아 세이두의 첫 장편 주연작 <아름다운 연인들>을 연출하기도 했다.(레아 세이두는 <아름다운 연인들>로 세자르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쏘리 엔젤>은 1990년대, 프랑스 서부 도시에 살고 있는 학생 아서와 파리에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작가 자크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심층적이고 섬세하게 다루는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답게 이번에도 ‘사랑’을 영화의 주제로 삼았다.
에바 위송 감독 <걸스 오브 더 선>
앞서 소개한 세 명이 감독이 프랑스의 베테랑 감독들이라면 에바 위송은 프랑스의 떠오르는 신예 느낌의 감독이다. <걸스 오브 더 선>으로 칸영화제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장편 데뷔작인 <뱅 갱: 모던 러브 스토리>로 토론토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걸스 오브 더 선>은 그녀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걸스 오브 더 선>은 이슬람 극단론자들에게 사로잡힌 자신들의 마을을 되찾기 위한 쿠르드족 여성 결사대 ‘태양의 소녀들’의 사령관 바하르와 그녀를 취재하는 종군기자를 그린 영화다. 에바 위송은 이슬람 무장단체에게 인질로 잡혔던 쿠르드족 여성의 실화를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 <도그맨>
이탈리아 출생의 마테오 가로네 감독은 무대 비평가인 아버지와 사진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미술을 전공, 감독이기 전에 화가로 활동했다. 1996년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으로 토리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박제사>, <첫사랑> 등의 작품을 만들었고 2008년 범죄드라마 <고모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2012년 <리얼리티: 꿈의 미로>로 다시 한 번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입지를 다졌다.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한 셀마 헤이엑, 뱅상 카셀 주연의 잔혹 판타지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로 장르를 뛰어넘는 미장센의 대가로 인정 받았다.
<도그맨>은 개들을 미용하는 일을 하며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마스첼로가 전직 복서인 시몬치노와 문제가 생기고, 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존엄성, 폭력, 복종에 대한 성찰을 그린 영화다. 1980년대 로마의 외곽 도시에서 일어난 강아지 미용사의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엘리스 로르와처 감독 <라자로 펠리스>
엘리스 로르와처 감독은 이탈리아 출생으로 대학시절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2011년 단독 장편 데뷔작 <천상의 육제>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소개, 벤쿠버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4년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두 번째 장편작 <더 원더스>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드 제스> 이후 그녀의 네 번째 장편작 <라자로 펠리스>가 또다시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르며 이탈리아 영화계를 이끌어갈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탈리아 유명 배우 알바 로르와처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라자로 펠리스>는 뒤틀린 사건, 거짓말, 비밀 속에서 순수함을 간직한 젊은 농민 라자로와 그녀의 친구 텐크리디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콜드 워>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은 폴란드 출생이지만 대부분의 일생을 영국에서 보냈다. 옥스퍼드 대학의 예술학 연구원을 거쳐 영국 국립 영화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라스트 리조트>가 에든버러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마이 썸머 오브 러브>, 에단 호크 주연의 <파리 5구의 여인>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3년 <이다>로 영국,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 60개가 넘는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콜드 워>는 1950년대 냉전 시대,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불가능한 배경에서 불가능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다. 그의 대표작 <이다>와 마찬가지로 흑백으로 제작됐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레토>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로스토프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뮤직비디오, 광고 감독을 거쳐 연극, TV 드라마 감독으로 활동했다. 2004년 <라긴>으로 장편 데뷔를 했고 2006년 <플레잉 빅텀>이 로마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유리의 날>, <비트레이얼> 등의 작품이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한 다수 영화제들에 초청됐고 최근작 <스튜던트>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등에 초청됐다.
<레토>는 러시아에 록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한 1980년대가 배경이다. 러시아 록의 선구주자로 알려진 한국계 러시아인 빅토르 최에 대해 그리고 있으며, 그의 전기를 다루기보다는 그의 아내 나타샤, 그의 멘토 마이크 사이의 삼각관계에 중심을 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