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유아인 - 새로운 균형
2018-05-08
글 : 이주현 | 사진 : 최성열 |
<버닝> 유아인 - 새로운 균형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의식적으로 연기를 하게 되면 관객한테 들통나기 전에 (이창동) 감독님한테 들통난다. 가공된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고 연기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인생의 한 정점을 찍곤 한다. 설경구, 문소리, 전도연, 송강호가 모두 그랬다. <버닝>에서의 유아인은 어떨까. 이창동이라는, <버닝>이라는 ‘미지의 신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유아인은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느낌’을 말로 전하기 위해 애썼다.



-시나리오만으로는 완성된 영화의 형태를 짐작하기 쉽지 않더라.



=상징과 의미의 덩어리니까. 영화를 보고 든 느낌은, 다루는 이야기가 최전선에 있다, 최신이다, 많이 나아갔다는 거다. 직설적인 표현도 있고, 날카롭게 은유하는 장면도 있다. 묘하게 언밸런스한 느낌도 주고 약간 장난스럽기도 하다.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거는 영화구나, 그런 점에서 최전선이구나 싶더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먼저 읽고 시나리오를 읽었나.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다. 텍스트를 크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글로 쓰인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니까. 감독님이 말씀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마침 내가 별도로 운영하는 아티스트 크루(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도 미지의 세계나 의식의 확정에 대한 개념을 다루고 있던 때라, 감독님이 미지의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미지의 세계로 빠져보자고 했던 순간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은 예전부터 기대한 일이었나.



=이창동 감독님의 규칙과 질서 안에 놓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말 재밌었다. 이전에 영화를 하면서 느낀 재미와는 달랐다. 현장의 모든 건 셋업이라 연기하면서 거슬리는 순간이 많다. 그런데 이번엔 거슬림 없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풍부하게 느꼈다. 이전에는 내가 반쯤 죽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초감각적인 경험이라고 할까. 숫자로 설명하면, 평소의 내가 5만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7을 느끼고 8을 느끼는 상태였다. 감독님이 요구한 것도 그것밖에 없었다. 느껴!



-자기만의 영화적 규칙이 분명한 감독과의 작업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초감각을 경험했다는 게 흥미롭다.



=‘내 세계 안에서 맘껏 끝까지 가봐’가 아니라 ‘이 세계를 둘러싼 경계를 하나씩 넘어서 우리 같이 세계를 확장해보자’였다. 물론 감독님의 영화적 스타일과 신념은 명확하다. 분명한 환경과 미장센을 구축하고서 ‘내가 이만큼 진짜인 것처럼 제공하잖아’, ‘네가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잖아’라고 하는 거다. 누가 봐도 가짜 같고 이물감이 드는 환경에서 누가누가 더 뻔뻔하게 연기를 잘하나 겨루는 것 같은 때도 많은데, 이창동 감독님 현장은 철저하게 진짜 같은 순간, 진짜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느끼라고 주문한다. 그러니 느낌에 집중할 수밖에.



-종수는 유통회사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평범한 20대 남자다. 이 인물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었나.



=평범함이었다. 감독님이 나보고 ‘배우 유아인은 내가 본 그 어떤 배우보다도 자의식이 뚜렷한 것 같다’는 평을 했는데, 그럼에도 자신이 요구하는 건 극단적인 평범함이라고 했다. 요구와 평가가 너무 상충하지 않나. (웃음) 평범함을 정의하고 그것을 표현한 게 아니라 평범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 오해의 여지를 배제하는 연기. 최대한 단순하고 평범한 표현들. 그렇다고 강박적으로 평범함을 표현하려고 하진 않았고, 내 존재 자체가 표현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과 순수. 있는 그대로의 종수, 있는 그대로의 청춘의 모습을 생각했다.



-신인 전종서와 한국영화 경험이 적은 스티븐 연과 함께 연기했다.



=두 배우 모두 굉장히 순수했다. 상황에 깨끗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과의 새로운 조화, 새로운 느낌, 새로운 균형이 중요했던 것 같다. 뉴 밸런스! (웃음) 뉴 밸런스를 보여주는 게 언제나 중요한 숙제다. 캐릭터로 치면 영화에서 종수는 그냥 붙박이다. 영화의 공기 같은 붙박이 캐릭터. 그렇기 때문에 해미와 벤이 주는 느낌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차기작 <국가부도의 날> 촬영을 마쳤다.



=이후의 계획은 미정이다. 재밌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관객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파장이 뻔하지 않고 재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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