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베일에 싸인 영화 <버닝>만큼이나 전종서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신인이다. 그런 그가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의 주인공을 맡았다고 알려졌을 때 모두가 궁금해했을 것이다. 대체 어떤 배우이기에 이창동 감독의 까다로운 감식안을 통과하고, 데뷔작의 주인공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버닝>에서 전종서가 연기한 해미는 내레이터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20대 여성이다. 일을 하다가 어린 시절 친구였던 종수(유아인)를 만나고, 아프리카 여행을 가기 전에 종수에게 자신의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솔직해 보이기도 하고, 다소 무심해 보이기도 하며, 어떨 때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해미의 모습이 전종서의 꾸밈없는 면모와 겹쳐졌다.
-곧 칸에 가는데.
=오늘 여권을 만들었다. 가도 되는 자리인지 잘 모르겠다. 떨리기도, 무섭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버닝> 오디션을 보러 갈 때도 그런 마음이었나.
=지금 회사를 만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첫 오디션으로 보러 가게 됐다. 오디션은 떨리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맹목적인 자세로 가지 않았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오디션에서 뭘 보여줬나.
=드라마 <케세라세라>(2007)에서 정유미씨가 했던 연기를 준비해갔다.
-그걸 고른 이유가 뭔가.
=평소 많이 공감하면서 봤던 드라마다. 정유미씨가 맡았던 캐릭터가 평소 내가 가진 감정과 닮은 구석이 많다.
-이창동 감독은 (전)종서씨를 캐스팅한 이유로 “이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왜 그렇게 얘기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산다. 그 점에서 감독님께서 나를 인간적으로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그만큼의 대화를 나눴고, 그것에 맞는 질문과 대답들이 오갔으니까.
-출연을 결정하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해미는 어땠나.
=해미도, 종수도, 벤(스티븐 연)도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 해미가 어떤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속을 알 수 없는 친구일 수도 있는데… 분명한 건 흘러가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친구,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친구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자유분방해 보일 수도 있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해미뿐만 아니라 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해미는 종수와 벤 앞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데.
=자연스럽게 촬영하다보니 종수에게 허물없이 대했던 것 같다. 반면, 벤은 종수와 굉장히 달랐다. 평소의 해미와 다른 면모를 보인 것도 그래서다. 촬영할 때 <버닝>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세종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휴학중이다. 매일 출석하는 착실한 학생은 아니다. (웃음)
-연기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어릴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연기가 하고 싶었다.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다.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되게 궁금했지만 배우가 되는 방법을 몰랐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앞서 얘기한 대로 사람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서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대화하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인간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하고 싶다. 내가 겪은 감정들을 기억하는 습관을 가져야겠지…. 25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연기라는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되돌아보면 <버닝>은 어떤 작업이었나.
=재미있었고, 또 힘들었다. 힘든 게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감독님에게 들은 얘기들이 굉장히 많은데, 앞으로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정말 좋은 교육을 받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