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경쟁부문을 달군 영화는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였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공금 횡령을 이유로 촬영장에서 연행된 후 수개월간 구금되어 결국 칸을 찾지 못했다. 전작 <스튜던트>(2016)에서 그린 러시아 정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영화 기획 등으로 푸틴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과 함께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지만 구금된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 역시 칸에 오지 못했으며, 이렇게 자국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는 감독들은 올해 영화제가 주목하는 이슈 중 하나다. 2016년 <스튜던트>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이루어진 경쟁부문 초청에는 이같은 러시아 정부의 탄압을 비판하며,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칸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토>는 러시아의 저항 가수 빅토르 최의 데뷔 초창기 활동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서구의 록음악이 금기시되었던 1980년대 초반 레닌그라드, 음악을 통해 자유와 젊음의 열정을 갈구했던 러시아 청년들의 고민과 빅토르 최(유태오)와 그의 음악적 멘토 마이크(로만 빌리크), 그리고 부인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센바움)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린 이야기다. 이기 팝, 비틀스, 데이비드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젊은 뮤지션에 영감을 주던 당시의 서구 뮤지션들의 음악을 흡수하며, 빅토르 최가 그룹 키노를 결성하기 전 초창기 음악들이 영화 전반에 깔린다. 흑백영화를 바탕으로 MTV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재기발랄한 컬러 영상, 애니메이션이 불쑥 삽입되며, 영화를 가이드해주는 인물이 영화 바깥에서 불쑥 등장해 상황을 해설해주는 등 장난스럽고 밝은 장치를 더한다. 현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당시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순수하게 예술을 갈구한 청년들에게 자유와 숨 쉴 공기를 허락해주는 듯한 의도적 표현으로 보인다.
전작 <스튜던트>와 달리 이번엔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작품으로, 기존 전기영화에서 보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영웅이 되기 전 초창기 빅토르 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드라마 전개가 다소 약하고 장난스러운 시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반면, 호평도 적지 않다. 프랑스 일간신문 <르몽드>는 “1980년대 초 레닌그라드의 일단의 음악인들을 추동하던 태양 같은 에너지에 대한 다이내믹하고 우아한 축전”이라 평했다. 제작 과정에서 현재 생존한 당시 빅토르 최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있는데, 영화에 삽입하려던 애초 의도와 달리 다큐멘터리로 따로 만들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칸영화제가 끝나고 난 6월 초 러시아에서 개봉할 예정이며, 한국에도 수입되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