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가 칸에 나타났다. 물론 은둔자로 일컬어질 만큼 공식 행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고다르는 2010년, 2014년에 이어 결국 올해도 칸영화제에 직접 발걸음을 옮기진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 화상통화를 통해 기자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자들이 차례로 단상 앞까지 걸어와 작은 화면 속의 고다르와 마주하는 순간은 그것만으로도 올해의 칸을 상징할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큰 화면과 편리한 화상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프로듀서의 손에 들린 작은 전화기의 창을 거쳐 기자 한명 한명과 일대일로 소통하는 게 과연 고다르답다고 해야 할까. 88살의 고다르는 느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의견을 하나씩 풀어냈고 단어가 쌓일 때마다 명료한 생각들이 퍼져나갔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이어진 대담을 풀어 전한다. 몇몇 질문들은 합치고 간혹 쪼개기도 했지만 고다르의 언어 자체가 이미 시적인 사색의 길을 경유하고 있는지라 가능한 한 최대한 그 뉘앙스를 살리려 노력했다.
-아랍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담았다. 현재 미국의 이스라엘 대사관 이전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는데 이 사건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나는 그냥 영화를 만들 뿐이다. 물론 내 시대에 주어진 사실들에 항상 관심이 있다. 다만 내 시선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지 않은 사실들을 향해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서로 연결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사실보다 일어난 사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를 재앙과 혼돈으로 이끄는 건 일어나지 않은 사실들이다.
-68혁명 이후 50년 만에 칸에 다시 돌아왔다.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68년 5월에 대해 많은 것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이후 많은 이들이 내 영화를 보았고 50년, 100년 후에도 많은 관객이 여전히 내 영화를 보러올 것이다. 당연히 좀더 나이든 사람들이 보러오겠지만. (웃음)
-올해 프랑스에서도 큰 규모의 시위와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시점에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으로 돌아왔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정치적 영화인가.
=아니다. 내 영화는 픽션에 기반을 둔다. 다만 나는 아랍 세계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도 그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화를 위해서 무엇도 구술할 수 없다. 알다시피 영화는 그 어떤 것도 구술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지 않다. 칸에 초청된 영화들 대부분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주 소수의 영화들만이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내 영화가 그러한 층위를 보여주길 희망한다. 영화는 머리뿐 아니라 손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지의 책>이 그러한가.
=꽤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도 그건 스티븐 스필버그나 다른 감독들, 즉 영화는 처음, 중간, 끝으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감독들에 반대하며 말한 것이다. 처음, 중간, 끝 3개의 구성요소는 있지만 그 구성요소들은 다른 순서로 있을 수 있다는 농담이었다. 이건 일종의 방정식이다. 가령 ‘X+3=2’라면 X가 -1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X, 그러니까 세 번째를 찾기 위해 두개의 이미지를 포갤 때 두 번째 이미지 자체에 매달려선 안 된다. 그걸 지워야 한다. 그것이 영화의 열쇠다.
-<사랑의 찬가>(1999)를 찍으면서 촬영이 지루했다고 한 적 있다. 이후로 당신의 영화는 이미지 아카이브의 성격을 띤다.
=그게 바로 영화를 만드는 일의 전부다. 우리는 자료들을 갖고 있고 그걸 통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실제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이다. 촬영은 포스트 프로덕션과 같은 거다. 편집은, 디지털 편집 역시 손으로 행해지는 거다. 영화에서 인간은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밥을 먹고 머리를 움직이고 사랑을 하겠는가. <이미지의 책>이 다섯 챕터로 구성된 건 그런 이유다. 5개의 손가락을 함께 움직여 영화를 깨우고 손으로 생각을 시작한다.
-그렇게 중요한 이 영화의 편집은 어떤 원칙과 구성을 따르고 있나.
=편집을 위해 아마 지난 4년 동안 티에리 프레모가 평생 본 영화보다 더 많은 영화를 봤을 거라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발탁된 이미지들은 대략 120여편이다. 정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단지 내가 본 모든 이미지와 소리들이 하나로 모였을 때 어떤 의미를 갖게 됐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스토리 라인이 있다. 나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이미지들을 스토리로부터 분리시키고 모아왔다.
-“그곳에 전쟁이 있다”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언어와의 작별> 이후 당신이 만든 첫 유성영화다. 모든 중얼거림이 역사의 사운드트랙 위에서 하나의 제스처로 통합된다. 전쟁과 목소리 사이 무언가 확립되는 것 같다.
=사운드는 단지 이미지에 따라오는 게 아니다. 둘 사이에는 진실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를 오가는 담론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에서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빛은 인상주의에서 무척 중요하다. 인상주의자들은 예술에 빛을 갖고 들어왔다. 또한 색깔도 가지고 들어왔다. 색깔은 담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선 하이데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운드는 이미지에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스크리닝은 평면의 TV스크린이 아닌 커피숍에 가까워야 한다.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면서 동시에 사운드는 여기저기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것. 순간 카페(여기서는 극장에 대한 중의적인 표현으로 사용하였다.-편집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사운드와 이미지가 분리되지만 동시에 함께한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당신의 영화를 보면 더이상 배우를 믿지 않는 것 같다.
=거기에 대해선 뭐라고 대답할 수 없다. 연기자들은 항상 끊임없이 나를 도와주었으며, 누군가와 논쟁하고 싶지 않다. 초창기 영화들은 연기자 없이 영화를 찍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장 루슈처럼. 이건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차이와 비슷하다. 나에겐 둘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배우들에게는 매우 다른 문제일 것이다. 현재 배우들은 너무 정치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오늘날 많은 아티스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닌 촬영된 이미지를 통해 전체주의에 기여한다고 본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당신의 영화를 관통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나.
=어떤 영화에서는 핵심적인 질문을 했고 어떤 영화에서는 부차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들은 늘 함께 간다. 영화는 현재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은 일상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영화는 페이스북이나 당신의 삶 주변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들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