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국내 최초 오디션 전용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셀프테이프’, 오디션 지원부터 커뮤니티 참여까지
2018-06-21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배우 캐스팅도 앱을 통해!

“X월 X일 충무로, 홍대 투어 다녀왔습니다.” 신인배우들이 오디션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종종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온다. ‘투어’란 캐스팅 기회를 얻기 위해 신인배우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들고 직접 영화·드라마 제작사를 찾아가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하지만 ‘투어’를 통해 신인배우가 오디션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제작사에는 늘 수백장 분량의 신인배우 프로필이 쌓여 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하는 배우를 찾길 바라는 제작사 관계자들은, 실제와는 많이 다를지도 모를 이력서 안의 프로필 사진을 눈여겨보기보다 캐스팅 디렉터의 추천을 더 신뢰한다. 이미 유수의 매니지먼트와 네트워크를 구축한 캐스팅 디렉터들은 자신의 인맥을 통해 배우를 추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경력이 짧거나 소속사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배우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콘텐츠 제작자들 또한 제한된 인력풀 안에서 뉴페이스를 발굴하고 맞춤형 캐릭터를 찾아야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아직도 프로필을 발품 팔아 돌리니?”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눈길을 끄는 ‘셀프테이프’는 지난 5월 7일 론칭한 국내 최초의 오디션 전용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이다. 이 앱은 오랫동안 신인배우와 배우 지망생의 멘토로 활약해온 양성민 ATR 컴퍼니 대표(자세한 내용은 67쪽 인터뷰 참조)가 기획,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업계 관계자들에게 주목받았다. 셀프테이프는 미국의 캐스팅 시스템을 차용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땅이 넓어 지역간의 이동이 쉽지만은 않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 영상을 직접 찍어 캐스팅 디렉터에게 보내곤 한다. 이른바 ‘셀프테이프’라 불리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연기 영상은 글로 작성한 프로필보다 더욱 생동감 있게 배우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한층 다채로운 인력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셀프테이프 오디션의 장점을 취한 애플리케이션 ‘셀프테이프’는, 그러나 오디션이라는 목적뿐 아니라 공유 그리고 성장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목표로 오디션 전용 앱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셀프테이프 앱을 통해 가까워졌다는 네 신인배우. 이하음, 김곤태, 권동원, 이신영(왼쪽부터).

배우로 커리어 쌓는 동시에 다른 회원들과의 교류도

셀프테이프의 기능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로 영화 혹은 드라마의 오디션에 지원할 수 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앱을 무료로 다운로드받은 뒤 회원 가입을 완료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분에 불과하다. 아이디와 이메일 주소, 비밀번호를 설정하면 누구나 앱을 사용할 수 있으며, 셀프테이프 회원이라면 누구나 시공간에 관계없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제작진에 제출할 수 있다. 공지사항을 숙지하고 제작진이 지정한 대본 연기를 앱에 설치된 카메라 기능으로 촬영한 다음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끝이다. 양성민 대표는 “앱 가입 절차부터 영상 촬영 및 업로드의 과정을 최대한 간결하게” 만들려 했다고 말한다. 셀프테이프를 이용하면 별도의 영상 제작과 송부의 노력 없이 원터치로 앱 내에서 연기 영상을 만들고 보낼 수 있다. 지난 한달 동안 정우성과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상업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딩고의 웹드라마 <연애는 무슨 연애>의 오디션이 셀프테이프를 통해 진행된 바 있다.

두 번째로 회원들은 매일 ‘데일리 미션’에 참여할 수 있다. 데일리 미션은 셀프테이프 운영진을 통해 거의 매일 공지되는데, 기존 작품에서 발췌한 대사나 운영진이 제시한 키워드를 활용한 자유 연기를 요하는 경우가 많다. 양성민 대표는 “최대한 오디션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영상을 녹화할 때 ‘블랙 화면’과 ‘스크립트 제공’이라는 독점적 기능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앱에 업로드된 배우들의 ‘데일리 미션’ 영상에는 누구나 피드백을 할 수 있다. 다른 회원들로부터 한주간 ‘좋아요’와 ‘댓글’을 가장 많이 받은 회원은 ‘주장원’으로 뽑힌다. 주장원으로 선정된 회원은 1주간 셀프테이프 앱을 실행하자마자 뜨는 팝업창에 얼굴과 아이디가 노출된다. 신인배우로서는 앱에 가입한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셀프테이프의 세 번째 기능은 ‘커뮤니티’다. 회원들은 게시판을 통해 연기에 대한 고민과 궁금증을 다른 회원들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셀프테이프를 론칭한 양성민 ATR 컴퍼니 대표는 ‘공유’라는 특성이야말로 해외 오디션 동영상 앱과의 결정적인 차별점이라고 말한다. “‘오디션이 매일 열리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우리 앱을 평소에도 이용할까?’라는 질문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데 체험단을 운영하면서 회원들이 우리 앱을 통해 바라는 점이 오디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평소 신인배우들을 만나면 연기 연습을 혼자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서로의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가는 신인배우들의 변화를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시태그 기능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쉽고 빠른 캐스팅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관계자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덩치가 우람한 40대 남자’를 찾고 있다고 하자. 현재 업계에서는 대부분 캐스팅 디렉터에게 부탁해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의 목록을 추린 다음 그들의 영상을 받아보는 방식으로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게 양성민 대표의 말이다. 하지만 셀프테이프의 해시태그 기능을 사용하면 ‘40대’, ‘경상도’ , ‘비만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바로 해당 특징을 가진 배우의 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이 셀프테이프 앱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이라고 양성민 대표는 말했다.

셀프테이프 앱의 홈 화면에는 데일리로 수행할 수 있는 연기 미션이 언제나 게시되어 있다. 6월 13, 14일의 지정 대본은 영화 <러브픽션>(2011)의 한 장면이다. ‘셀프테이프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면 연기를 요하는 상황과 대사를 볼 수 있으며, ‘셀프테이프 촬영하기’ 버튼을 누르면 영상 녹화가 시작된다.
셀프테이프 앱의 검색창은 화제의 키워드와 배우, 앱 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배우의 영상을 찾기에 최적화됐다. 해시태그 검색 기능을 이용해 배우들의 연기를 아카이빙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앱의 장점이다.

‘피드백’ 기능도

지난 6월 12일, 셀프테이프 앱을 만든 ATR 컴퍼니 사무실에서 이 애플리케이션을 활발하게 사용한다는 네명의 신인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27살부터 39살까지, 체육학 전공부터 삼바 밴드 활동까지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네 배우는 모두 양성민 대표의 개인 SNS를 통해 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셀프테이프의 장점은 배우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거다. 극단 출신으로 영화, 드라마 출연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혀가길 원한다는 이신영 배우는 “보통 오디션을 보면 형식적으로 연기만 보여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 허무함이 컸다. 배우들의 연기 연습 영상이 매일 업데이트되는 셀프테이프를 이용하고 나서부터 오디션에서 떨어지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셀프테이프가 연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줬다고 말했다. 셀프테이프 앱의 가장 선호하는 기능으로 ‘피드백’을 꼽은 비연극영화과 출신 배우 김곤태는 “스터디 그룹이나 연습실에서 배우들끼리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그마저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배우라면 누구나 피드백에 목말라 있다”며 “누군가 나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봐주고 조언해준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셀프테이프에서 만난 배우들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거나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이하음, 이신영 배우는 셀프테이프 앱에서 처음 만나 콜라보레이션 연기를 선보인 경우다. “연기 영상을 쭉 보다보면 이 사람과 연기를 같이했을 때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다. 이하음 배우가 딱 그런 분이라 만나서 같이 연기해보자고 제안했다.”(이신영) “앱을 통해 지켜보던 분을 오디션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오랜만이에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연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오래 지켜보다 보니 정서적으로 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서로간에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 같다.”(권동원)

앱상에서의 활동이 실질적인 오디션 기회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셀프테이프를 통해 딩고 웹드라마 <연애는 무슨 연애>의 오디션을 경험한 이하음 배우는 “캐스팅에 대한 선입견을 시원하게 깨고 왔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웹드라마는 소속사 배우들이 주로 출연한다고 생각해왔다. 비주얼적으로도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뛰어나야만 캐스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 비록 최종 명단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내 생애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준 오디션이었다.” 연극영화학과를 거치지 않고 24살에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다는 권동원 배우의 경우 셀프테이프에 데일리로 올린 영상 중 회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영상을 각종 오디션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대중 앞에 서는 배우라는 직업을 업으로 택한 이들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 셀프 연기 영상을 올리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네 배우는 말한다. “연기 영상을 앱에 올리기까지 100여번 이상을 찍고 지우는 것 같다”는 이신영 배우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며 웃었다. 어떤 배우들은 자다가 누군가에게 ‘악플’이 달리는 꿈을 꿀 정도로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하지만 “영상을 안 올리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권동원 배우의 말에 네 배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누군가의 평가와 조언을 받을 기회가 적은 한국의 신인배우들에게 신생 애플리케이션 셀프테이프는 때로는 건강한 긴장을 부여하며 때로는 즐겁고 짜릿한 놀이의 장이 되어주고 있었다. ‘오디션 전용’이라는 특성에 공유와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가미한 이 애플리케이션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지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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