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국 드라마②] <패트릭 멜로즈> 베네딕트의 모노드라마
2018-08-02
글 : 임수연
방송일자: 8월 24일(금) 밤 11시(총 5부작), 캐치온1 /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휴고 위빙, 제니퍼 제이슨 리 등

“패트릭 멜로즈를 연기하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일생일대의 꿈은 그가 <셜록> <스타트렉>에 이어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굵직한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에 실현됐다. 그는 “이 책은 아주 특별한 상황과 개인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현명해지는 것도 맞지만, 이 책을 위해서는 그의 나이에 맞는 어딘가에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데드라인>)라며 그가 버킷리스트를 지금 실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는 실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고 약물 중독에 시달렸던 그가 오랜 기간 치료 목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괜찮아>(1992), <나쁜 소식>(1992), <일말의 희망>(1994), <모유>(2005), <마침내>(2012) 등 총 5부작이 완결되기까지 세인트 오빈은 20년간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며 통찰력 있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중 <괜찮아> <나쁜 소식>은 올해 현대문학에서 번역·출간됐다.

드라마는 소설에서 2부에 해당하는 <나쁜 소식>의 에피소드로 포문을 연다. 1982년 패트릭 멜로즈는 아버지 데이비드 멜로즈(휴고 위빙)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괴로울 때마다 의존했던 코카인, 헤로인 등의 약물을 이번 기회에 끊어보려 하지만, 이따금 떠오르는 아버지가 학대한 기억과 뉴욕에서 만난 아버지의 지인들은 그를 다시 트라우마에 빠뜨린다. 결국 마약과 알코올을 끊지 못한 그는 자살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약물 대신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한다. <괜찮아>는 패트릭 멜로즈의 8살 시절로 돌아간다. 미국의 재벌가 출신인 엘레노어 멜로즈(제니퍼 제이슨 리)는 전직 의사였던 데이비드 멜로즈와 결혼한 후 인생이 망가진다. 엘레노어는 아들이 학대를 받을 때조차 구해주지 못할 만큼 남편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일말의 희망>은 1990년 패트릭이 마거릿 공주가 참석한 파티에 초대되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공주의 무례하고 불쾌한 행동은 패트릭 멜로즈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학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약물 중독 치료 집단에서 만났던 친구 조니에게 자신이 아버지에게 폭행뿐만 아니라 성적 학대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어렵게 고백한다.

<모유>는 2003년 패트릭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고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그려진다. 술을 끊었던 그는 다시 술을 마시고, 약에도 다시 손을 댄다. 패트릭은 어린시절 어머니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그를 지켜준 집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괴로우면서도, 끔찍한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 한편 패트릭의 아들 로버트는 그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패트릭의 아내는 그가 알코올 중독과 외도를 멈추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침내>는 2005년 엘레노어의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2년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패트릭은 결국 아내와 자식들과 별거에 들어갔고, 신체 능력이 계속 저하되고 있는 엘레노어는 아들에게 안락사를 요청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 데이비드가 패트릭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이도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전히 자기도취증, 조현병, 자살성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패트릭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자기 탐구의 연기

패트릭 멜로즈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고, 가벼운 여성 편력을 보여주는 상류층 자제다. 이 설정 자체로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지만,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원작은 특유의 재치와 냉소적인 필체로 놀라운 자기 탐구를 보여줬다.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패트릭 멜로즈의 모습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세인트 오빈이 20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시를 완벽히 체화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인간 심리를 담는 구성은 컴버배치의 개성 있는 외모와 화려한 연기 스타일과 제법 잘 어울린다.

또한 <일말의 희망> 에피소드는 마거릿 공주가 참석한 상류층의 저녁 식사 모임을 통해 인간 내면을 벗어나 계급 문제와 인간의 속물성을 냉소적으로 담아내는데, 컴버배치는 관찰자로서의 결이 다른 연기도 훌륭히 소화한다. <패트릭 멜로즈>의 책임 프로듀서에도 이름을 올린 그는 이 작품으로 올해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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