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여성영화를 소비하는 팬 문화의 확장, 새롭고 즐겁다
2018-08-09
글 : 임수연 | 사진 : 최성열 |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 여성영화를 소비하는 팬 문화의 확장, 새롭고 즐겁다

민규동 감독은 지금까지 <허스토리>의 팬들이 마련한 모든 GV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영화 최초 마니아 팬덤을 양산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의 공동연출자이기도 하다. 한국영화 팬덤의 시작을 열었고, 그 역시 관객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해왔다는 민규동 감독을 만나 <허스토리>에 대한 조금 긴 후일담을 나누었다.



-최근 <허스토리> 단체 관람 현장의 열기를 보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다.



=극장 개봉은 3주 정도로 짧게 했지만, 이후 VHS 비디오 출시 기간이 더해져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팬덤이 지속됐다. 관객의 감상이 책 세권 분량으로 나올 정도였다. 비디오로 50번 넘게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팬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대사 암기 대회 등 자신들만의 축제를 열었으며, 팬 커뮤니티나 팬 사이트도 생겼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두 영화 팬덤 사이의 차이점도 감지되겠다. 우선 과거보다 SNS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는 내적 텍스트 안에 들어가서 캐릭터를 즐기고 작품에 파묻혔다면, <허스토리>는 상영관 부족이나 이 영화가 애초에 맞닥뜨렸던 선입견의 문제를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분석하며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다. 이 영화가 고전하게 된 사회·정치적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를 갖고 놀 줄 아는 관객의 진화 과정이 있었다. 그 지점이 무섭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관객의 눈높이는 영화의 질과 성격을 끌어내는 힘이 되고,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그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허스토리>는 이제 개봉 한달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갖고 노는지 좀더 지켜보고 싶다. 관객이 항상 더 빨리 변하고, 집단 무의식이 변해가는 과정이 세상이 변하는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더 궁금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세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등 중년의 남성배우와 캐릭터에게 열광하는 팬덤은 꾸준히 존재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나 <아가씨> <연애담> 같은 여성 퀴어영화 팬덤은 젊은 여배우가 중심이 됐다. 그래서 <허스토리>의 팬덤이 50대 이상 여성배우를 응원하며 기존 팬 문화의 방식으로 그들을 소비하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존경하는 배우들과 만나서 함께 작업하면서, 가족 관계 서사에 항상 발목이 잡혀 있느라 이분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에 걸쳐 자기 서사가 있는 역할을 주자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잘 뛰어노시더라. 우리가 영화에서 이런 배우들을 자주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열광해주는 관객이 있어야 한다. 자본은 관객 핑계를 대며 남성 위주, 스타 배우 위주의 영화를 만든다. 관객의 눈높이가 다양해졌다는 걸 그들이 피부로 느끼면 다양한 놀이터가 많이 생길 것이다.



-<허스토리> 3차 단체 관람 당시 김희애 배우가 380여명의 관객 앞에서 ‘8비트 떠그 라이프 선글라스’라 불리는 안경을 끼고 머니건을 쏘는 모습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중년 여성배우가 아이돌 팬 사인회에서 유행하던 아이템을 걸치는 데서 오는 기분 좋은 신선함이 있었다.



=<허스토리>의 문정숙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탈코르셋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감독으로서 가장 어려운 주문 중 하나였다. 김희애씨는 촬영 전부터 이런 것을 굉장히 하고 싶어 했고, 실제 촬영하면서도 즐겼다. 큰 스크린에서 잔주름과 기미와 하얗지 않은 피부를 보여줄 때 나오는 힘을 직접 경험하면서 훨씬 자유로워져서 나타났다. 평소 김희애씨는 매우 차분하고 겁도 많은 편이었는데, 무대인사 다닐 때 즉흥적인 순발력을 보여주는 순간을 봤다. 문정숙을 직접 연기하고 관객이 이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목도한 후에, 그렇게 껍데기를 벗는 데서 오는 자기 쾌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관객도 배우가 영화 속 캐릭터 그대로 나타나니까 기존의 우아한 이미지 같은 것이 깨지면서 더 즐거워하고, 서로간의 거리도 확 좁혀졌다.



-이렇게 의미 있는 순간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개봉 시기나 홍보 방향이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특히 마케팅 과정에서 <허스토리>가 가진 여성영화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감독으로서 아쉬울 것 같다.



=그건 내가 선택하는 영역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정해지는 순간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거다. <허스토리>에 선의와 호의의 투자를 해준 곳이 결정해서 진행한 부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것은 최대한 지혜를 모아서 나온 결과다. 내가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허스토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분들이 이 작품을 여성주의 영화로 이해해준다는 점이다. 다만 그게 소수라서 아쉽다. 왜 항상 깊고 소수일까, 다수면 안 될까? 다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나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개봉 시기 같은 문제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안되겠다는 강렬한 저항감, 심리적 카르텔을 갖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고 있다. 이 현상을 완전히 해석해내는 데 3~4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허스토리> 1차 단체 관람 현장에서 한 관객이 페미니즘적으로 각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간신>(2015) 같은 거 만든 사람이 어떻게 <허스토리>를 만들었냐는 의미인 것 같다”고 답해서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 일이 있지 않았나. 그 후기가 SNS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됐다.



=<간신>은 왜 그렇게 많이들 본 걸까. 그런데 <허스토리>는 왜 이렇게 안 보지. (웃음) 이런 비난은 내가 계속 경각심을 갖고 주의하게 만드는 좋은 손가락질이다. 돈을 낸 사람들이니까 싫어할 때는 폭탄을 던지고, 좋아할 때는 마음껏 자기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결국 전부 내 발자취니까, 잘라낼 수 없는 어떤 검은 역사 아닌가.



-2차 단체 관람 현장에서는, 전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GV에 온 사람 중 <허스토리>를 본 관객이 별로 없어서 그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고 감독이 말하자 객석에서 “<간신>!”이라는 외침이 나온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뭔가 감독님과 팬덤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팬들은 <허스토리>를 사랑하지만 전작인 <간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독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관객이 나를 편하게 갖고 놀기를 바란다. (웃음) <간신>은 내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 중 초고를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획을 가져다가 만든 유일한 영화다. 반민특위 사건을 다룬 남자 액션 누아르를 준비하다가 투자가 안 돼서 급하게 기획이 대체됐다. 준비하던 남성영화가 매번 좌절되자 어떤 자기 분노가 생겼고, 나답지 않은 영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사료 속에서 여성들이 당한 착취에 대한 강한 이미지들을 찾았다. 그로 인한 불편함이 위정자에 대한 공분으로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이브한 발상을 했던 게 <간신>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여성 조감독과 함께하며 초고보다 여성의 목소리를 최대한 늘리고, 그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함께 찾았다는 내적인 변명과 위안도 있었다. 박정희 시대 채홍사에 대한 정치적 직유라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젠더 감성에서 비롯된 불쾌함이 더 남았다. 치명적인 실수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이미지를 찾느라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으로만 들여다보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였다. 어떤 영화든 나에게 단련된 영역과 철학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신>으로 민규동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은 최근에 각성한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사실 레즈비언 고등학생의 이야기였던 단편 <허스토리>(1996) 때부터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히 다뤄왔다.



=단편 <허스토리> 마지막에 남자들이 써온 역사 히스토리가 아니라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서론이었다. 그 맥락에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입장은 변함없다.



-단편 <허스토리>를 만들기 전에는 어땠나.



=정치적 해빙기에 들어간 1988년에 대학 신입생이 됐다. 그때는 평등이 당연한 테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해방론을 공부했다. 다만 당시 여성해방론은 변혁이라는 해일 속에서 조개를 줍는 것 같은, 세상을 바꾸는 철학이라기보다 작은 각론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은 지금 기득권자가 됐다. 그때는 여성해방이 세상을 흔든 철학이었지만, 지금 그 기득권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페미니즘이 됐지.



-이후 데뷔작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부터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가장 최근 두 연출작은 페미니즘적으로 비판받은 <간신>과 호평받은 <허스토리>다.



=20년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만 초대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가 만든 여성영화도 상영해야 폭넓은 영화제가 되지 않을까?”라고 학교 후배에게 말했다가 “그동안 남자들이 그렇게 해먹었으면 됐지 왜 여성영화제에까지 끼지 못해서 안달이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남자들은 어떤 영역에서든 항상 디폴트였는데, 영화제에서 한번 배제됐다고 함께 연대하자고 하는 건 여성의 갈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남자 페미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입을 닥치고,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정확히 아는 거다. 남성감독으로서 너무 많은 모순과 부조리 속에 살아가니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있었다. 나의 실수와 부족함으로 인해 페미니즘이란 말이 오염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던 <간신>에 큰 미안함을 느낀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프로젝트나 고민하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내 필모그래피는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역사다. 맥락이 설명되지 않는 점프컷 같다. 여성영화로 시작했고, 남성 장르영화를 시도하면 번번이 좌절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백업을 갖고 다시 여성주인공 서사를 다루게 되면, 더욱 명백한 남성 장르영화에 대한 요구를 받게 됐다. 왜 전쟁영화에는 남자들만 등장할까, 40년대 남태평양 배경 전쟁영화에는 미군과 일본군만 등장하느냐는 의문이 들어 위안부 여성 시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거대한 오디세이를 쓴 적이 있다. 내가 연구한 과거의 수많은 증언집을 보면 전쟁 노예로서의 삶을 고백한 수많은 서사가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영역이 성폭행 피해자 이미지로만 남는 것을 오히려 억울해한다. 그런데 <귀향>(2015) 이후 많은 이들이 ‘고통의 포르노적 재현’을 우려하고, <허스토리>는 자극적인 과거 재현이 없다는 이유에서 관객이 환영했다. 어떤 과거를 보여주는 것은 더이상 가치가 없는 일일까라는 질문이 나에게 남아 있다. <피아니스트>(2002), <노예 12년>(2013), <사울의 아들>(2015) 등 어떤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작품에 힘이 생기듯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서사가 올바른 시선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내가 고민하는 이야기가 한국 여성영화에 안 좋은 레퍼런스를 남길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60~70년 지속된 홀로코스트영화처럼 되기 위해서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필요하다. 일단 양적으로 많아져야 그 다음 작품에 힘을 줄 수 있고, 질적인 비약도 가능해진다. 많은 남성영화들은 부족한 점이 있어도 많이 즐기고 마음을 열어주지 않나. 드문드문 여성영화가 나왔을 때도 그렇게 응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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