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너의 결혼식> 박보영 - 영화를 더 많이 찍고 싶다
2018-08-21
글 : 김현수

올해는 <과속스캔들> 개봉 10주년이 되는 해다. 미혼모 정남 역의 박보영이 어느덧 20대 후반의 로코퀸이 되었다. 물론 그녀가 여기까지 버티고 올라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교복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풋풋한 면을 지님과 동시에 이제는 웬만한 욕설은 자연스럽게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때묻은(?) 모습도 보인다. <너의 결혼식>의 승희를 연기하면서 그녀가 고민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너의 결혼식>은 우연(김영광)의 시선에서 첫사랑 승희의 자취를 쫓는 이야기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승희의 상황과 감정이 영화에 드러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석근 감독이나 동료 배우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내 욕심만큼 승희가 지닌 면면을 영화에 드러낼 수는 없을 거라 여겼다. 남자들은 납득할지라도 여자들이 봤을 때 이해가 안 되는 승희의 모습이 드러날 경우에는 고쳤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다행히도 많은 부분이 영화에 반영됐다.

-이 영화가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첫사랑 판타지에 함몰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박보영을 캐스팅했기 때문인가.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균형을 잡아줬으면 좋았겠지만, 우연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를테면 승희가 우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나 학창 시절 괴롭히던 택기에게 승희가 직접 귀여운 복수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더 있었다.

-우연이 첫눈에 반하는 승희는 학교 담벼락도 훌쩍 넘으며 거친 비속어를 남발하는 터프한 면도 지니고 있다. 전작 <돌연변이>(2015)나 <피끓는 청춘>에서 보여줬던 거친 연기들이 떠오르기도 하더라.

=지역마다 너무 상반된 의미를 지닌 그 비속어를 말해야 할 땐 내 입장에서도 좀 셌다. (웃음) 이제는 욕설 연기를 해도 관객이 크게 거부감을 내비치지 않는 것 같다. 한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보여줬던 모습들을 어떻게 깨고 나올 수 있을지를 오래 고민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떨쳐버렸다.

-영화의 전개상 자칫 잘못하면 승희가 이기적이고 못된 아이처럼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실은 우연의 미성숙함이나 승희의 속내를 균형감 있게 관객이 유추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것은 박보영, 김영광 두 사람의 넘치지 않는 연기 덕분이었다.

=승희가 나쁘게 묘사되지 않도록 부단히 애를 썼다. (웃음) 예를 들면 승희가 상대에게 여지를 남겨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순간들은 되도록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승희가 너무 여우같이 느껴질 것 같은 몇몇 상황에 대해서 스탭들과 오랜 기간 서로 토론을 하며 수정해나갔다. 사실 승희는 복잡한 감정을 확실히 끊고 맺을 줄 아는 캐릭터다.

-우연 역의 배우 김영광과는 <피끓는 청춘>에서 이미 지긋지긋한 계약 커플 사이로 함께 연기한 적 있다.

=평소에 그가 보여주는 행동을 일부러 영화에 안 드러내는 건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자신의 모습을 우연에게 많이 투영한 것 같았다. 뭐랄까, 아주 입기 편한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우연을 더 순수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로 공감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다. 그의 장점은, 계산하면서 연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대로 연기하니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더라.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 <돌연변이> 등을 거치면서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가 기존의 이미지를 크게 흔들지 않는 선에서 변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박보영에게 애교란 무기일까, 타협일까.

=나름의 타협점이다. 한때는 어떻게 하면 내 이미지를 깰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의 매체 특성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내가 잘하는 연기와 하고 싶은 연기의 타협점을 맞춰나가려고 한다. 너무 어려운 고민이다.

-제작 규모가 큰 영화의 작은 역할보다는 신인감독의 작품이나 규모가 작은 영화의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고를 때 감독보다는, 시나리오가 재미있는지, 내가 안 해본 역할인지,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우선 고민한다. 가끔은 작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도 너무 부담된다는 피드백이 올 때가 있다. 그리고 너무 작은 파이를 두고 많은 여배우들이 경쟁한다. 가끔은 욕심이 나는 작은 역할이라도 내가 하면 안 될 것 같을 때가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면 그쪽으로 가야겠다 싶을 때가 있다. 굉장히 복잡한 고민이다. 드라마 제작진이 들으면 서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영화를 더 많이 찍고 싶다.

사진 필름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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