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은 호감 가는 인터뷰이다. 준비한 듯한 대답으로 자기 포장을 하지 않아 신선한데, 오히려 곱씹을 만한 발언이 튀어나온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소년 같은 성정으로 대화 상대를 기분 좋게도 한다. <너의 결혼식> 역시 배우로서의 그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변곡점 같은 영화다. 총 50회차 중 무려 49회차를 촬영하며 작품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힘을 보여준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른 즈음까지의 시간을 담은 <너의 결혼식>은 결국 우연의 성장영화더라.
=고등학생 때 승희(박보영)를 향한 사랑은, 아이들이 엄마가 장난감 안 사준다고 길바닥에 누워서 떼쓰는 것 같았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고. 사회 초년생 때는 마음과 다른 말이 나가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내 사랑이 어땠는지 이성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고서는 “네 앞에서 당당해지는 게 꿈이다보니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석근 감독이 말하기를, 테이크마다 연기가 달라져서 ‘미지의 생물’ 같았는데 다 준비한 거라 놀랐다고.
=이번 작품은 현장에서 느낀 대로 연기하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기존 로맨스물과 비슷한 장면이 있는데, 뻔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불규칙한 템포로 내추럴한 연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정박자에 들어가게 연기하지 않았다. 우연이를 잘 보면 말을 똑바로 안 한다는 느낌을 받을 거다.
-<피끓는 청춘> 이후 오랜만에 만난 박보영과의 연기는 어땠나.
=보영씨는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눈을 가졌다. 이렇게 리액션을 해야지 미리 생각해도 그 눈을 보면 자연스럽게 끌려간다. 나를 갑자기 얼게도 녹게도 하는, 정말 특별한 게 있는 배우다. 함께 촬영하면서 감탄했다.
-지난 10년간 한 인터뷰를 찾아보니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던 캐릭터들이 이른바 남자 냄새 나는 게 대부분이더라.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악역이나 전쟁영화, 누아르 같은 선 굵은 연기를 해야 진정한 배우가 됐다고들 하는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일까.
=연기는 다 어렵다. 특정 장르나 캐릭터를 선호한다기보다는 그냥 인터뷰할 때쯤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을 거다. 데뷔 초에는 <포레스트 검프>(1994), 지난해에는 <나의 소녀시대>(2015)에 꽂혔다. 말씀하신 남자영화는 자극 자체가 크다. 멜로는 서로의 마음이 이동하는 것을 섬세하게 그리다보니 큰 자극은 없는데, 따뜻하고 설레는 매력이 있다. <너의 결혼식> 같은 멜로를 잘한다고 많이 얘기해주시니 이런 강점을 더 확장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좀더 진한 감정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말이다.
-지난 몇년간 TV드라마 위주로 다작하는 타입이었다. 이미지가 소비될 수 있다는 걱정은 없었나.
=내가 나오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국에는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날 노출해야 하고, 그러다가 이른바 ‘포텐’이 터질 수도 있는 거다. 어떤 시도조차 안 하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언제 성공할 수 있을지 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는 많이 쌓아두고 경험하고픈 쪽이다. <너의 결혼식>을 보고 많은 분이 좋은 평가를 해주셨지만, 이게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한개씩 쌓아가다 무너지는 것보다야 여러 개를 쌓으며 올라가는 쪽이 설령 무너져도 나에게 남는 게 많을 것 같다. 그냥 계속 더 해보는 거다. 그렇게 하고 또 하다보면 성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필모그래피를 되새겨보니 드라마 <아홉수 소년>(2014) 때부터 눈에 띄게 연기가 늘고, 웹드라마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2016) 때부터는 그냥 잘하는 배우가 됐더라.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웃음) 어느 순간 보니까 내가 알던 김영광이 아니더라.
=기자님이 처음에 날 봤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으면! (웃음) 2014년 군대를 갔다온 후 20대의 암흑기 같은 것을 거쳤다. 그냥 사라지는 사람이 될까봐 그 초조함이 매일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30분 더 공부하면 미래가 바뀐다”는 식의 말이 있지 않나. 지금 고생하지 않으면 나의 앞날은 밝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했다. 너무 갖춰진 사람처럼 굴지 말고, 일단 하자, 어떻게든 만들어보자며 현장에 나갔다. 그러다보니 작품을 끝낼 때마다 전보다 태도가 좋아졌다고 스스로도 느껴졌다.
-배우 이전에는 커리어로 정점을 찍은 톱모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만화책을 너무 사랑해서 대여점 사장이 되고 싶었다고.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면 대여점을 따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아니면 나만을 위한 만화방을 만들어 커튼 치고 소파에 앉아서 컵라면 먹으면서 만화를 보고 싶다. 지금도 조금씩 사모으고 있다. 미개봉, 이런 거 좋아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