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본의 시대①] 자본과 창작, 새로운 돌파구를 꿈꾸며 손을 잡다
2018-08-29
글 : 김성훈 |
[새로운 자본의 시대①] 자본과 창작, 새로운 돌파구를 꿈꾸며 손을 잡다

여운이 진득이 남는 태풍일까, 아니면 잠깐 불고 지나가는 미풍일까. 최근 영화 투자·배급계 및 원천 콘텐츠(IP) 업계 신입생들이 충무로에 몰려들고 있다. 메리크리스마스, 에이스 메이커 무비웍스, 키위미디어그룹,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엔터테인먼트 등이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넷플릭스 같은 뉴미디어가 세를 점점 공고히 하고 있고, 한국 영화시장 사이즈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극장은 위기 상황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 투자·배급사는 한정된 시장의 파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동시에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현실이다. 충무로는 신규 자본들의 정체를 궁금해하면서도 (캐스팅만 된다면)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을 일은 더이상 없을 것 같아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창작자와 함께 적합한 매체 찾아 제작하고, 투자 직접 나서고…



메리크리스마스는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가 중국 메이저 투자·제작사 화이브러더스의 투자를 받아 설립한 회사다. 라인업을 확보해 배급하는 기존 투자·배급사와 달리 웹툰, 웹소설 등 아이템 단계에서 창작자와 함께 적합한 매체(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를 찾고 기획·개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에이스 메이커 무비웍스는 정현주 전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이 화장품 브랜드 AHC를 1조원에 매각한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으로부터 투자받아 세운 신생 투자·배급사다. 사업 규모, 방향, 인적 구성 등 사업과 관련된 내용들이 아직 알려진 바 없지만 라인업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이미 70억~80억원 규모의 영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위미디어그룹은 지난해 <범죄도시>와 <기억의 밤>의 메인 투자사로 참여해 메가박스 플러스엠과 공동 배급하면서 투자·배급업에 뛰어들었다. 또 한국과 중국에서 시각특수효과(VFX)로 인정받고 있고, <신과 함께> 시리즈 모두 천만 관객을 불러모은 덱스터스튜디오도 투자·배급업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웹툰, 웹소설을 선보이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또한 자사의 IP를 무기 삼아 영화 및 드라마 (기획 및 공동) 제작업에 발을 들였다. 네이버 웹툰이 설립한 영화사 스튜디오 N(대표 권미경)은 자사가 가진 IP를 기획·개발해 다른 제작사와 공동 제작하는 브리지 컴퍼니를 표방한다. <강철비>를 웹툰(<스틸레인>)과 영화로 각각 선보인 바 있는 카카오페이지는 김영탁 작가가 쓴 소설 <곰탕>의 웹소설, 출판소설 출간에 이어 웹툰, 드라마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DP 개의 날> <조국과 민족> 등 자사 웹툰뿐만 아니라 <밤치기>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도 다른 제작사와 손잡고 공동 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스튜디오 N, 레진엔터테인먼트, 카카오페이지는 자사의 IP를 손에 쥔 채 시장을 읽고, 기획력을 키우며, (공동) 제작을 통해 직접 개척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신규 자본이 충무로에 들어온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작사들의 상장 열풍이 불었던 지난 2004년 명필름과 강제규필름 그리고 세신버팔로가 합병해 MK픽쳐스를 만들었고,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영진닷컴과 합병해 미디어코프가 설립됐고, 자회사로 아이필름을 둔 싸이더스HQ가 라보라를 인수해 IHQ로 탈바꿈하는 등 우회상장 열풍이 불었다. 당시 많은 제작사들이 속속 이 대열에 합류했다. 또 LJ필름은 프라임그룹과, 싸이더스FNH는 KT와 손잡는 등 거대 자본과의 결합도 진행됐다. 당시 자금력을 갖춘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라인업을 선보였다.



과거의 자본들은 영화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측면에서 기대를 안은 채 충무로로 들어왔다면 지금의 신규 자본은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규모도, 투입 시기도 저마다 다르지만 신규 자본들의 공통점은 더이상 전통적인 영화제작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메리크리스마스가 아이템을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다양한 디바이스로 풀어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듀서 A씨는 “이들은 드라마, 웹 동영상, 해외 시장 등 영화 외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아 흥미로워 보인다”며 “다만 배급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투자사 임원 B씨는 “충무로에 들어오는 신규 자본이 영화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자본이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산업에 정통한 플레이어들과 함께 들어와 산업 학습 시간을 대폭 줄이면서 곧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제작자 C씨는 “유정훈, 정현주, 권미경 등은 산업에서 10년 이상씩 활동한 ‘선수’들이다. 이들을 앞세운 덕분에 영화산업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상당 부분 축소될 것”이라며 “이들은 산업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고, 그것은 기존 투자·배급사에 적지 않은 긴장감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자본이 과거 충무로에 유입됐던 자본과 여러모로 성격이 다르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투자사 임원 D씨는 여전히 “신규 자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영화산업에 들어온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그는 “영화산업에 정통한 플레이어가 회사를 이끌더라도 기업은 오너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 초반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철수가 가능한 게 또 영화산업”이라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극장 입장에선 여전히 공급 과잉” 입장도



기대론과 신중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신규 자본이 영화산업에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단 신규 자본이 자사의 IP를 가지고 직접 기획을 하게 되면 당분간 공동 기획과 공동 제작 움직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IP를 가진 신규 자본은 예산, 제작 관리 경험이 없기에 믿을 만한 프로덕션 하우스가 절실할 것이고, IP를 가진 회사와 제작 경험이 많은 제작사가 공동 제작하는 움직임이 많아지게 되면 자금력을 갖춘 큰 제작사를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돈을 들여 기획·개발하려는 회사는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기대만큼 비관하는 쪽도 있다. 투자사 임원 B씨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세를 공고히 하고 있고, 할리우드영화에 관객의 눈높이가 맞춰진 상황에서 새로운 자본이 라인업을 확보하는 과정에 완성도가 갖춰지지 않은 영화에까지 투자를 하게 되면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하락하는 동시에 관객이 한국영화에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것은 극장에도 위기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제작자 C씨는 “새로운 전주(錢主)가 들어오더라도 영화들이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극장 입장에선 여전히 공급 과잉”이라며 “이번 추석 시장에서 <명당> <안시성> <원더풀 고스트> <협상> <물괴> <창궐> 등 한국영화들이 경쟁하는 상황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다”라고 말했다. 거의 매주 상업영화들이 개봉하는 상황이 되면 독립예술영화나 저예산 상업영화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거라는 얘기도 있다. 제작자 E씨는 “상업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면 작은 영화에 배정되는 스크린 수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규 자본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기존 투자·배급사는 어떤 바람이 불지 예의주시하면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모양새다. 올해 상반기 CJ E&M와 CJ 오쇼핑이 합병해 탄생한 법인인 CJ ENM은 자사의 IP를 가지고 해외 시장을 계속 개척하고 있고, 반대로 2개월 전 롯데컬처웍스(전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롯데쇼핑에서 분사해 몸집이 가벼워졌다(대기업이 자사 계열사를 쪼갰다가 합쳤다가 하는 일은 빈번하지만 말이다). 김도수 신임 대표 체제의 쇼박스는 제작사 인수같은 시장 흐름에 따르기보다 콘텐츠 생산력을 높이는 데 더욱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종합 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를 표방하는 NEW는 지난 8월 22일 미국 제작사 아이반호 픽처스와 함께 <히든 페이스>의 한국영화 리메이크 공동제작 및 투자 계약을 체결하면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구상이다. 한 투자사 대표는 “사람들이 자꾸 신규 자본만 보는데 진짜 변화는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나온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시도와 변화를 가져올지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건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모르지만 지금이 그 변화로 가는 과도기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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