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좀 할게요. <할로윈>이 여성 주연 호러영화 역대 최고, 55살 이상 여성 주연 영화 역대 최고, 10월 개봉작 역대 2위,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어. #womengetthingsdone(여자들이 해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할로윈> 주말 스코어가 약 7700만달러로 추정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10월 21일(현지시각 기준), 오랜만에 시리즈에 복귀한 로리 스트로드 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가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그가 <할로윈>의 성공을 여성의 쾌거로 연결시킨 맥락은 1970년대 이후 슬래셔 장르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명료해진다.
호러 장르에서의 여성의 ‘전통적’ 역할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1972),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을 거쳐 1978년 탄생한 존 카펜터의 <할로윈>은 장르 공식을 정리한 걸작이었다. 술과 섹스를 즐기는 10대, 복면을 쓴 살인마, 그리고 최후에 살아남는 여성 등 슬래셔 장르의 주요 클리셰가 대중에게 각인됐다. 이후 <13일의 금요일>(1980), <나이트메어>(1984), <헬레이저>(1987) 등이 80년대 슬래셔 무비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고민 없이 양산된 후속작의 형편없는 완성도는 한동안 이 장르를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로 전락시켰다. 한편 학계에서는 슬래셔 무비의 미소지니가 정량적으로 분석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가령 여성이 살인마에게 시달리는 장면은 남성의 그것보다 더 길게 묘사되는 경향이 있고, 남성적 시선으로 여성을 ‘눈요기’ 취급하는 컷이 맥락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할로윈>의 마지막 생존자 로리로 대표되는 ‘파이널 걸’(final girl) 캐릭터와 섹스 여부의 유관성은 캐럴 J. 클로버의 <남성, 여성, 그리고 전기톱: 현대 호러영화 속 젠더>(Men, Women, and Chainsaws: Gender in the Modern Horror Film, 1992) 등을 비롯한 연구에서 꾸준히 지적됐다. 그 밖에 무기를 가진 남자 캐릭터의 등장으로 비로소 여자주인공이 마지막 안전을 보장받는 경향도 관찰됐다. 제이미 리 커티스를 ‘스크림 퀸’(scream queen)으로 등극시킨 원작 <할로윈>은 마이클 마이어스의 누나 주디 마이어스가 애인과 성관계를 맺은 직후 나체로 살해당하며 문을 연다. 술과 섹스를 즐긴 로리의 친구들은 죽음을 맞이했고, 베이비시터로서 아이를 돌보는 본분에 충실한 로리만이 생존자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는 총을 가진 닥터 루미스(도널드 플레젠스)의 등장으로 마지막 위기에서 벗어난다.(<할로윈>을 향한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쓴소리는 최근 존 카펜터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내 인생 최대 실수는 여성영화제에 상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관객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럴 만했다.”)
소수 팬들만의 시장이 되어가던 슬래셔 무비의 인기를 재점화한 것은 공포영화에 관한 공포영화,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1996)이다. 처녀성과 술·마약, 생존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대사에 등장시킨 <스크림>(원작 <할로윈>의 제이미 리 커티스는 가슴을 노출하지 않아 살아남았다는 대사도 등장한다)은 장르의 여성 혐오적인 면을 위트 있게 비꼰 동시에 그 법칙을 보란 듯이 깼다. 주인공 시드니(니브 캠벨)는 나중에 살인마로 밝혀지는 남자친구 빌리(스킷 울리치)와 자신이 원해서 섹스를 했고, 주변 남자의 도움 없이 그를 처단한다. 하지만 <스크림>은 화장실에서 시드니와 그의 엄마의 문란함을 헐뜯는 또래 여성들을 등장시켜 ‘여성의 적은 여성’ 구도를 여전히 고집한다. 또한 “살인에 어떤 이유가 있을 리가 있냐”는 범인의 대사가 무색하게 <스크림> 시리즈는 내내 시드니 엄마의 외도를 대규모 살육의 원인으로 묘사한다. 신선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스크림> 이후 반짝인기를 누린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 등의 하이틴 호러는 결국 과거 슬래셔 무비의 실수를 반복했다.
‘미투 시대를 위한 슬래셔 무비 리부트’라고?
2018년의 <할로윈>은 ‘파이널 걸’의 아이콘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를 캐스팅해 로리의 노년을 그린다. <할로윈> 이후 제작된 9편의 속편이 없었던 것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할로윈2: 저주받은 병실>(이하 <할로윈2>, 1981)이 만든 마이클과 로리의 남매 설정은 사라졌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마이클이 아닌 로리에게 집중된다. 원작 <할로윈> 당시 학교 창밖에서 로리를 응시하는 마이클을 보여주던 섬뜩한 연출은, 2018년 <할로윈>에서 로리의 존재감을 심어주는 데 활용된다. 2층에서 추락한 마이클이 감쪽같이 사라진 1978년작 <할로윈>의 엔딩은, 40년 후 로리의 통쾌한 반격을 지탱한다. 한정된 러닝타임이 살인마의 사정을 들어주기보다 생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하는 데 할애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마이클의 과거사를 만들어 살인마의 심리를 들춰봤던 롭 좀비의 <할로윈> 리메이크를 위시한 작품과는 정반대의 접근이다. 로리의 트라우마는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 그리고 딸 캐런(주디 그리어)에게 8살 때부터 총 쏘는 법을 가르치다가 부적격 엄마로 판정받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마이클의 살인을 굳이 탐구하려는 캐릭터들은 2018년판 <할로윈>에서 유독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캐런 부부의 눈을 피해 종종 교류하는 로리와 그의 손녀 앨리슨(앤디 마티책)은 중요한 지점에서 대비된다. 명예 학생으로 선정된다든지 친구들과 해든필드 거리를 걷는 그림은 원작과 똑 닮았지만, 남자친구를 사귀고 핼러윈 코스튬 파티를 즐기는 앨리슨은 전통적인 파이널 걸과는 다르다. 극 후반부 한데 모인 로리와 캐런, 앨리슨은 다른 멍청한 여자와 다른 ‘개념녀’이기 때문이 아닌, 40년간 로리가 복수를 준비하고 후대에게 이를 전수한 덕분에 마이클을 물리친다. 슬래셔 무비의 무수한 피해자 여성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던 캐런의 모습이 ‘낚시’였고, 그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착실히 배운 딸임이 밝혀지는 대목은 <할로윈>에서 가장 큰 쾌감을 선사한다. 속편이 거듭될수록 <할로윈> 시리즈의 중심에 섰던 닥터 루미스와 달리 <할로윈>의 남자들은 존재감은커녕 여성들을 구하는 데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캐런의 남편은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력하게 살해당하고, 앨리슨의 남자친구는 외도 현장을 들킨 후 어물쩍 극에서 퇴장한다. 앨리슨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 캐릭터의 묘사는 거의 놀리는 투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할로윈>이 여성 서사로서 그리 신선한 작품은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나우 토론토>의 스테프 거스리는 <롤링 스톤>의 피터 트래비스가 이번 <할로윈>을 “미투 시대를 위한 슬래셔 무비 리부트”라고 평한 것을 두고 “살면서 호러영화를 본 적이 없었나? 여성이 트라우마와 싸우고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이미 <할로윈7: H20>(1998)가 다뤘고 더 잘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로리와 마이클의 남매 설정을 제거함으로써 살인마를 위한 눈물에 1초의 시간도 할애하지 않고, 생존자 여성의 트라우마가 삼대에 걸쳐 전수될 만큼 심각한 사안임을 짚은 것은 <할로윈>만의 성과다. 또한 <할로윈7: H20>의 로리는 연인과 아들을 지키지만, <할로윈>의 로리는 마이클을 먼저 기다리다가 딸과 손녀와 함께 그에 맞선다. 극중 대사처럼 마이클 마이어스의 살인은 큰 화젯거리도 아닌 요즘 시대에, 현실 뉴스는 슬래셔 무비의 잔혹성을 뛰어넘는다. 윗세대의 여성이 아랫세대의 여성에게 세상의 위해와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할로윈>은 여성 혐오 범죄가 범람하는 시대에 도착한 또 하나의 여성 연대 서사다.
그리고 <할로윈>은 요즘 할리우드의 ‘진보적이면서 안전한 영화’ 계보에 추가될 또 하나의 작품이다. 근래 미국영화계의 분위기는 수십년간 비판받던 차별의 역사를 청산하려는 의지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다. ‘리부트’는 흥행과 정치적 공정성을 동시에, 높은 확률로 꾀하는 방식 중 하나다. 과거 여성 캐릭터 활용에 있어 일부 비판을 받았던 <스타워즈> <고스트버스터즈> 같은 시리즈를 여성 위주로 부활시키거나, 캐릭터의 인종 및 성적 지향의 다양화를 고려하는 식이다(이에 대한 일부 팬덤의 불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진보성을 자부하는 할리우드가 굳이 추억의 영화를 상자에서 꺼내 재탄생시킬 명분이 다른 곳에 있을까?). 게다가 다양성은 흥행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데이터를 통한 업계의 결론이다. 또한 <할로윈>은 원작에 없던 여성 연대를 그리는 동시에 선배의 업적과 미덕을 정확히 이해해 프랜차이즈의 이름값 이상을 얻어냈다. 고어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마이클은 알 수 없어서 더 무섭다”는 존 카펜터의 생각을 계승해 살인마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주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또한 제작진은 미술부터 촬영까지 원작을 크리에이티브 모델로 삼았고 와이드숏을 길게 찍으며 공포를 자아내는 스타일을 이어받았다. 여기엔 <겟 아웃>(2017) 등 빼어난 정치·호러 영화를 만든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하 블룸하우스)의 기획력이 한몫했다. 블룸하우스는 시나리오가 원작자의 마음에 들어야 하고, 존 카펜터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참여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 쓰디쓴 혹평을 받은 <할로윈> 시리즈의 앞선 속편들과 달리 2018년판 <할로윈>은 처음으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고, 존 카펜터의 <할로윈>의 진정한 적자가 됐다.
여성감독의 흥미로운 오리지널 호러영화들이 온다
한편 슬래셔 장르와 할리우드 밖으로 눈을 돌려서, 줄리아 듀코나우의 <로>(2017)나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2014) 등 여성감독의 흥미로운 오리지널 호러영화가 탄생한 것을 떠올렸을 때, 흥행을 제외한 <할로윈>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좁은 영역에 국한돼 보인다. 영화계에는 훨씬 더 많은 여성감독의, 다양한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남성 각본가와 감독, 제작자의 결과물을 두고 “페미니스트 호러영화를 만들었다”(<허핑턴포스트>의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 인터뷰)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블룸하우스의 수장 제이슨 블룸은 <할로윈> 개봉에 맞춘 <폴리곤>과의 인터뷰에서 여성감독과의 작업물이 없는 것에 대해 “여성감독이 많지 않고 호러 장르를 연출하는 감독은 더 적다. 제니퍼 켄트의 팬이라 매번 러브콜을 보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고 답했다가 엉뚱한 핑계를 댄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인터뷰 기사가 뜬 바로 다음날 공식 트위터에 “멍청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정도는 당연히 반성하는 시대가 됐고, 딱 40년 만에 <할로윈>의 준수한 속편이 시대에 걸맞은 명분을 걸고 찾아왔다. 지금도 세상은 바뀌고 있고, 다음 도약은 분명 이보다 빠를 것이다.
<할로윈> 시리즈의 역사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할로윈>이 나오기 전까지 <할로윈> 속편 중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가장 먼저 나온 속편 <할로윈2> 그리고 존 카펜터의 원작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할로윈7: H20>였다. 로리와 마이클이 남매라는 설정을 처음 등장시킨 <할로윈2>는 로리가 입원한 병원에서 벌어지는 대살육극으로, 슬래셔 장르의 원초적인 쾌감에 충실한다. <할로윈7: H20>는 <할로윈2> 이후 이름을 바꾸고 아들 존(조시 하트넷)과 함께 살아가는 로리가 20년 만에 마이클과 재회하는 모습을 그린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도끼를 들고 마이클에 맞서는 로리의 강인함이 호평받았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할로윈2> <할로윈7: H20> 그리고 마이클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이 등장해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할로윈8: 부활>(2002)에만 출연했다. <할로윈3>(1982)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등장하지 않는 속편이었고, <할로윈4>(1988)와 <할로윈5>(1989)는 로리의 딸 제이미(대니얼 해리스)가 마이클에게 쫓긴다. 결국 제이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할로윈6>(1995)는 마이클의 저주를 막으려는 이교도 집단을 다룬다. 시리즈에 걸쳐 닥터 루미스를 연기하며 호러영화의 대표 얼굴이 된 도널드 플레젠스의 유작이기도 했다. 롭 좀비가 연출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2007)과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2009)는 원작 <할로윈>의 리메이크다. 마이클의 과거사를 시작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