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1일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가 태어났다. 2005년부터는 <팔월의 일요일들>(감독 이진우, 2005), <눈부신 하루>(감독 김성호·김종관·민동현, 2005)를 제작하며 독립영화 제작사로서의 위용도 갖추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사는 법>(감독 안슬기, 2008),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감독 윤성호, 2010), <티끌모아 로맨스>(감독 김정환, 2011),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 <걷기왕>(감독 백승화, 2016) 등이 모두 인디스토리에서 제작한 영화들이다. 2008년엔 배급작 <워낭소리>(2008)가 극장 관객 295만명을 동원하며 독립영화의 동화 같은 성공을 일궈냈다. 인디스토리를 20년 동안 꾸려온 곽용수 대표는 그러나 20주년을 맞은 올해는 차분히 생일을 맞기로 했다. “20년 동안 버텼다”라는 곽용수 대표의 말에선 그간의 고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스물’을 맞은 인디스토리를, 인디스토리를 거쳐간 수많은 영화인들이 진심으로 축하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라지만 사람은 어디 그런가. 감독들에게 인디스토리 20주년 대담 자리에 나와주십사 전화를 돌렸을 때 망설이거나 거절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감기몸살에 걸려 약을 먹고 나온 장건재 감독, 차기작 준비로 전날 밤을 새우고 온 임대형 감독, 아픈 사람들 틈에서 더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백승화 감독까지. 모두 곽용수 대표와 인디스토리의 20주년을 자기 일처럼 축하했다. 쑥스러움 많은 감독들이 둘러앉아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시작한 대담은 그러나 결코 훈훈한 얘기만 오간 자리는 아니었다. 새로운 독립영화에 대한 고민과 뼈 있는 얘기들이 오간 이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 11월 11일이 인디스토리의 20번째 생일이었다.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곽용수_ 10주년, 15주년 때는 자체적으로 영화제도 준비했는데 올해는 행사를 크게 준비할 여력이 안 됐다. 처음부터 소박하게 20주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감사하게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20주년 기념 특별전을 마련해줘서 행사에 대한 부담감은 덜 수 있었다. 10주년, 15주년 때와 달리 지금은 나뿐 아니라 독립영화 진영 전체가 많이 지쳐있는 게 아닌가 싶었고, 20주년이 서로를 응원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감흥보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더 하게 된다.
=임대형_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자리에 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달리 전할 방법이 없어서 무작정 이 자리에 나왔다. 요즘 차기작 준비로 밤새워 일하는 날도 많고 바쁘지만 여기 와서 곽 대표님 얼굴 뵙고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20년 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인디스토리의 밤’ 20주년 기념행사 자리에 갔을 때 새삼 인디스토리가 생각 이상으로 오래된 회사라는 걸 느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승화_ 2009년부터 인디스토리와 작업을 함께했다. 그동안 인디스토리와 함께한 시간도 길어지고 독립영화인들과의 교류도 많아지면서 20주년이 꼭 내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가까운 사람의 일처럼 느껴지더라. 인디스토리와 한독협이 같은 해에 만들어진 것도 몰랐는데, 축하할 일이 마땅히 없는 요즘 독립영화인들이 함께 축하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좋다. 오늘 대담 참석자의 이름을 듣고도, 지난 20년의 시간을 단순히 축하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의 20년을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건재_ 곽 대표님이 어떤 고민으로 인디스토리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인디스토리가 성장하고 변해왔는지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지켜봤다. 사실 힘들지 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걸 보면 존경스럽다. 또 같은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보면 적도 생기기 마련인데, 곽 대표님에겐 그를 지지하는 아군이 훨씬 많다는 걸 이번 20주년 기념행사 때 새삼 느꼈다. 지금보다 더 축제 분위기 속에서 20주년을 맞이하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복잡한 기분이 드는 20주년이었다.
-20년 전 인디스토리가 만들어질 당시에도 독립영화를 배급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독립영화의 배급이 필요하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회사를 만들었고, 배급을 넘어 제작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인디스토리의 초창기엔 그만큼 시도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돌아보면 초창기에 구상했던 계획들을 얼마나 이룬 것 같나.
곽용수_ 인디스토리에만 한정하지 않고 말하자면, 초창기 독립영화인들이 다 같이 고민했던 것 중에 대표적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설립과 건강한 독립영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후자는 여전히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인디스토리가 제작하거나 배급한 영화의 재능 있는 감독들이 상업영화판에 가서 10년씩 본인 작품을 못 만들고 있는 상황을 보면 안타깝다. 감독들이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시아의 독립영화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이루지 못했고. 호러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계획이 있었는데 그건 꾸준히 준비 중이다. 재미 반, 의무반, 책임 반으로 지금껏 왔다. 좋은 시절에는 재미의 비중이 높아지고 책임과 의무가 줄어든다. 그런데 지금은 반반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게 역전돼야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변해온 시간
-재미의 영역이 커지면 일할 맛이 난다고 했는데,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호시절이라 부를 만한 시기도 있지 않았나.
곽용수_ 제작 초기에 옴니버스영화를 만들 때가 아닌가 싶다. 젊은 감독들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고 싶은 방식으로 만들었으니까. 한때는 10명의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황금시대>(2009)도 찍었고, 그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상영되기도 했다. 재정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재밌게 일한 시절이다.
백승화_ 과거와 비교하면 독립영화라는 개념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독립영화의 가치는 물론이고 창작자들과 관객이 원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창작의 자유에 대한 욕구가 컸다. 인디스토리 역시 창작자들의 자유와 욕구가 담긴 작품을 배급했기 때문에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어떤 이들은 지금이 영화 만들기가 더 어렵다고 느낄 것이고 어떤 이들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임대형_ <황금시대>를 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창작자이기 이전에 독립영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확실히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보다 3살 어린 동생만 하더라도 극장에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IPTV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본다. 세대가 바뀌면서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창작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것의 어려움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장건재_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인디스토리나 한독협, 인디포럼, 서독제가 확실히 독립영화의 구심점이었던 것 같다. 각자의 베이스캠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영화인이 있었고, 그 안에는 또 활력과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스타플레이어도 있었다. 영화의 미학에 대해 논쟁하거나, 디지털 독립영화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던 시기도 있었다. 또 그때는 영화가 시장 안에서 혹은 저널이나 비평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시기에 인디스토리도 다양한 옴니버스영화나 장편 독립영화의 제작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영화산업이 침체기로 들어선 2000년대 중반 이후 감독들이 각개전투로 생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성과조차 독립영화계 전체의 성과로 이어지기보다 개별적인 성과로 돌아가는 시절이 최근 10년 동안 지속됐다는 느낌이다. 시장 상황이 호의적이지 않더라도 그걸 돌파할 수 있는 힘 있는 독립영화가 많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영화에 대한 흥분이나 활기가 다른 식으로 포섭된 것 같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독립영화계의 규모는 확실히 커졌다. 외연이 확장되고 영화 제작 편수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영화를 만들어 수익을 내고 더 좋은 영화를 제작하는 데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는 요원해 보인다.
곽용수_ 과거엔 독립영화전용관을 통해 거점을 만들고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목표가 있었다. 전용관이 가진 한계가 드러났을 땐 독립영화 배급지원센터라는 개념을 고민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고 흐름이 끊겼다. 그사이 시장은 시장대로 변하고, 매체나 플랫폼도 빠르게 그 모습을 바꿔 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독립영화 진영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요즘 느끼는 변화 중 하나는, 예전엔 ‘젊은영화’나 ‘파적’ 같은 감독 중심의 창작집단이 있었는데 지금은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사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다. 제작자 입장에선 점점 작은 영화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근로조건과 작업환경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고민도 깊다.
백승화_ 독립영화전용관이나 디지털 독립영화가 과거의 중요한 화두였다면 지금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에 대해 독립영화가 더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독립영화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궁리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장건재_ 영화를 만드는 동안엔 잘 못 느끼는데, 배급을 하고 관객을 만나면서 시장 상황이 어떤지 절망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웃음) 어쨌든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선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상업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갖춘 좋은 퀄리티의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시장에 파급력을 줄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다음 세대의 독립영화 고민해야
-독립영화의 흥행 기준과 척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요즘은 관객이 1만명만 들어도 축하받을 일이 돼버렸다. 10년 전, 300만명 가까이 관객이 든 <워낭소리>의 기적 같은 흥행은 이제 더이상 독립영화 진영에서 기대할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단지 파급력 있는 영화가 없어서는 아닐 텐데.
임대형_ 더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문제인 것 같다. (웃음) 지난해에 개봉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관객이 4200여명 들었다. 영화를 보러 와준 한분 한분 다 고맙지만 객관적 지표로서의 수치를 봤을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하면 영화를 통해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충분히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새 시대에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 텐데 그게 뭘까 싶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백승화_ 인디스토리와 한독협이 20년이 됐다는 건 한편으로 이제 새로운 세대가 출현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가 나왔다. 그들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새로운 영화, 새로운 제작 방식을 고민하다보면 어느 순간 관객에게 파급력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예전의 방식과 정책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다음 세대의 독립영화는 무엇인지, 독립영화 내부에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곽용수_ 변화에는 늘 자생적인 부분이 있다. 자생적인 것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새 정권을 맞았지만 지금은 후퇴한 상황이 복원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회복하고 있는 것이지 앞으로 나아가는 정책수립은 안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생적 변화와 관련해서도, 최근 단편영화 배급사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배급 시장의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 나로선 자생적으로 생겨난 신생 배급사들이 궁금하더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건지,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이 힘든지. 눈여겨볼 만한 흐름인 것 같다.
인디스토리와 함께한다는 것은
-인디스토리는 그간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는 데도 힘써왔다. 여기 모인 세분의 감독도 인디스토리가 사랑하는 감독들이라 할 수 있는데, 각 감독들과의 인연과 작품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우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임대형 감독은 인디스토리가 최근 주목한 젊은 감독이다.
임대형_ 곽 대표님과 처음 만난 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됐던 2016년 부산에서였다. 영화를 보시곤 배급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는데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나의 다음 작품도 함께하고 싶다 하셔서,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웃음)
곽용수_ 기주봉 선생님이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많이 출연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만큼 확실히 자기 롤을 가지고 빛났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배급하면서 인디스토리 식구들도 좋아했던 영화다. 임대형 감독과 제1회 사이판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괜찮은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준비 중인 차기작도 나름 미덕이 있는 영화 같았고. 그래서 같이 제작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여기저기 알아서 지원을 잘 받더라. 지금은 다른 제작사와 차기작을 준비 중이던데, 좋은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웃음)
-백승화 감독은 인디스토리의 전속 감독 같은 느낌이 든다.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디스토리와 협업하고 있다.
백승화_ 인디스토리에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배급하면서 첫 인연이 시작됐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편을 만들어볼까 했을 때도 가장 먼저 곽 대표님에게 말씀드렸고, 이후에도 새로운 시나리오가 있을 때마다 얘기드렸다. 올해 <오목소녀> 때는 인디스토리가 아닌 웹드라마를 여러 편 만든 제작사와 해볼 마음으로 다른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냈는데 관심을 안 보이더라. (웃음) 그래서 인디스토리에 얘기했더니 같이하자고 하셨다. 인디스토리 사람들에겐 늘 편하게 시나리오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다른 회사와도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인디스토리와 작업했을 때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작품이 분명 있다.
곽용수_ <걷기왕>은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같이했고, 심은경 배우가 캐스팅되고 난 뒤 CGV아트하우스가 투자·배급을 결정했다. 나름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대한 프로젝트였다. <오목소녀>는 백승화 감독의 지향점이 분명했던 작품이고.
백승화_ <오목소녀>를 인디스토리와 함께해서 좋았던 건 웹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었지만 극장 개봉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건 인디스토리가 제작사이자 영화 배급사이기에 가능했다. <걷기왕>은 사실 나보다 주변에서 기대가 컸던 작품이라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장건재_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곽 대표님과는 인연이 오래됐다. 영화를 좋아하던 10대 시절, 1994년 문화학교 서울에서 처음 뵀다. 그때 곽 대표님은 내게 앙리 랑글루아(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설립자) 같은 존재였다. (웃음) 이후 내가 만든 단편영화들을 인디스토리에서 배급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첫 장편 <회오리 바람>은 인디스토리에서 배급하지 않았다. 그때의 인디스토리는 외화도 수입하고 아직은 경제적으로 괜찮은 시기여서 우리 영화를 많이 예뻐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잠 못 드는 밤>과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인디스토리에서 배급했다. 이 두 영화는 시장에서의 반응을 고려하기보단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많이 반영한 작품이었는데, 영화를 배급하고 싶다고 얘기해줘서 정말 감사했다. 인디스토리는 확실히 감독 친화적인 회사다. 감독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 시장에 내놓고 싶어하는지 귀를 많이 기울인다. 가끔은 감독한테 너무 많은 일을 맡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웃음)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 배급까지 깊숙이 관여하면서 영화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3만6천여명의 관객이 들어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근래 인디스토리 내부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준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곽용수_ 맞다. 최근엔 1만명 넘은 영화가 많지 않아서. (웃음) 사실 ‘3만’이라는 숫자보다 관객이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해주는구나, 라는 느낌, 영화와 관객의 친밀도를 극장에서 느끼게 해준 영화여서 기억에 남는다. 성과가 있어야 일하는 보람이 있는데,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인디스토리 실무진에게 일하는 보람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이후 장건재 감독과는 장강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이 싫어서>라는 차기작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간다
-인디스토리의 20주년을 얘기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송환>과 <워낭소리>인데, 5년 이내의 최근작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뭔가.
곽용수_ 제작한 영화 중에는 이성은 감독의 <사랑해! 진영아>(2013)가 아쉬움이 많아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시장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이성은 감독과 지금도 작품을 같이 준비하고 있어서인지 그 아쉬움이 계속 살아 있는 느낌이다. 김명준 감독의 <그라운드의 이방인>(2013)도 제작 기간이 길었고 힘도 많이 쏟았는데 기대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유독 기대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았던 영화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어쨌든 <워낭소리>처럼 돈을 벌거나, <송환>처럼 영화적 정체성을 부여해준 작품이 15주년 이후에 뚜렷하게 있었던 것 같진 않다. 영화 이외엔 <걷기왕>의 영화계 최초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가 나름 중요한 이슈였고, 지난해 서촌 시대를 접고 서대문 시대를 시작한 회사의 이전도 인원 축소를 동반한 이사라 나름 중요한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인디스토리의 내년 라인업과 장기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
곽용수_ 최창환 감독의 <내가 사는 세상>과 박근영 감독의 <한강에게> 두편은 내년 초에 배급할 계획이다. 두 영화 모두 이번 서독제에서도 상영한다. 그리고 내년엔 인디스토리에서 제작한 영화 세편을 모두 선보이게 될 것 같다. 박주영 감독의 <굿바이 썸머>, 윤은경 감독의 호러영화 <링거링>, 정승오 감독의 <이장>, 이렇게 세편이다. 또 공동 배급 작품인 고명성 감독의 <남산, 시인살인사건>도 있다. 앞으로 5년간의 목표는 빚을 갚는 것이고, 그다음 5년은 회사를 잘 꾸릴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아름답게 떠나는 것이다. (웃음) 독립영화전용관을 고민할 때처럼 정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은 마음은 있다.
백승화_ 독립영화 하면 인디스토리를 생각하게 되고, 인디스토리 하면 독립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인디스토리의 변화는 독립영화 전반의 변화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앞서 재미와 책임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재미를 더 많이 챙기면서 일하셨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인디스토리와 작업하게 된다면 실무자들이 재밌어하고 성과도 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워낭소리>처럼 성공은 못할 수 있지만. (웃음) 차기작으로 윤곽이 잡힌 건 없고, <오목소녀> 이후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겨울에 열심히 써서 내년 봄엔 시나리오를 보여드릴 수 있길 바란다.
임대형_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인 한·일 합작영화 <만월>이다. 한국 배우와 일본 배우의 만남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인디스토리와 해보고 싶은 작품도 있는데,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모큐멘터리를 장기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곽 대표님이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종종 불러주시는데, 앞으로도 술을 줄이지 않고 계속 드시면서 자주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장건재_ 현재 인디스토리와 같이 <한국이 싫어서>를 개발하고 있고, 내년에는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부지런히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상황이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준비하는 옴니버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돼서 내년 상반기엔 무주 프로젝트의 단편영화 작업을 먼저 진행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곽 대표님이 30주년까지는 인디스토리를 이끌어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10년이 새로운 세대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갈 수 있는 시기가 되길 바란다. 말 그대로 새로운 물결이라 부를 수 있는 젊은 감독들이 더 많이 출현했으면 좋겠고, 그런 변화의 시기가 2020년대에는 펼쳐지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 문화학교 서울에서 활동하다 독립영화 배급의 필요성을 고민하며 1998년 인디스토리를 차렸다. <송환>(2003), <워낭소리>(2009), <최악의 하루>(2016), <걷기왕>(2016) 등을 제작·배급했다.
장건재 영화감독. <회오리 바람>(2009), <잠 못 드는 밤>(2012),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등을 연출했다. 차기작 <한국이 싫어서> 또한 인디스토리와 함께 제작 준비 중이다.
백승화 영화감독. <반드시 크게 들을 것>(2009), <반드시 크게 들을 것2: WILD DAYS>(2012), <걷기왕>(2016), <오목소녀>(2018) 등을 연출했다. 모두 인디스토리에서 배급하거나 제작한 작품이다.
임대형 영화감독. 단편 <만일의 세계>(2014), 장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 등을 만들었다. 인디스토리가 주목하는 차세대 젊은 감독 중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