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든 3인조 도둑 아츠야, 쇼타, 고헤이는 잡화점 문틈으로 ‘생선가게 뮤지션’이라고 이름이 적힌 편지 한통을 받게 된다. 호기심에 열어본 편지가 무려 32년 전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보낸 답장이 과거와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는 사이 다시 편지가 도착하고,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들이 모두 우연이 아닌 하나의 인연으로 연결된 것임을 알게 된다. 201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테디셀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7년 히로키 류이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일본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미술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며 그 인기를 이어갔다. 지난 10월, 일본정부관광국의 도움을 얻어 허지웅 작가와 함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오픈 세트가 있는 일본 오이타현 북쪽의 분고타카다시에 다녀왔다. 신마치도리 상점가에 있는 잡화점 세트는 물론 분고타카다시를 대표하는 관광지 ‘쇼와 거리’, 영화 속 환광원이 있던 오자키 해안, 석양을 등지고 세리(가도와키 무기)가 노래하던 미타마 해안 등 영화의 기억 속으로 초대한다.
나는 처음에 잘못 내린 줄 알았다. 오이타, 까지는 한 글자씩 힘주어 정자로 눌러썼다가 국제공항, 이라는 말은 겸연쩍어 서둘러 얼버무린 듯 한. 오이타국제공항은 공항이라기보다 시골 기차역 같은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벳푸로 통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공항 곳곳에 온천을 상징하는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모든 게 작고 간소했다. 작고 볼이 통통한 아이가 후웁, 하고 입 안의 사람들을 주변의 온천에 모조리 뱉었다가 다시 스읍, 하고 삼켜서 출발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광경을 상상했다. 사실 마음에 들었다. 이만한 크기로도 국제공항의 일을 다 할 수 있는데 다른 공항들이 쓸데없이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생각은 이틀 후 돌아갈 때 깨졌다. 작은 공항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수속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공항은 커야 한다.
대개 벳푸나 유후인에 가려는 사람들이 오이타공항에 모여든다. 그러나 내 계획은 조금 달랐다. 벳푸나 유후인도 좋겠지만 우선 분고타카다시에 들르기로 했다. 분고타카다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촬영한 곳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처음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니 응당 추리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었다가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공간을 매개로 시간이 겹쳐지고 사연이 얽혀 전개되는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유려하고 세심한 이야기 구성과 다음 세대를 염려하는 어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느껴져 내심 감동했던 책이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자신만의 나미야 잡화점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랬다. 생김새는 모두 다를지언정 우리 모두에게 나미야 잡화점은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공간이리라. 우리가 저지른 가장 창피한 과거도, 우리가 우려하는 가장 비극적인 미래도, 이곳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거대한 선의에 의해 의미와 이유를 찾는다.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만들어진, 삶 곳곳에 남겨진 저 수많은 검은 빈칸들의 의미와 이유가 채워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더이상 공허하거나 헛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판타지, 가상의 그 공간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있다.
규슈 오이타현 북동쪽에 있는 분고타카다시는 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촬영한 곳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원래 쇼와 30년대를 재현해놓은 ‘쇼와 거리’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의 쇼와 사랑은 대중문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전후 재건부터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까지의 황금 성장기로, 서로 도와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미래를 약속받던 시기다.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미래를 약속받는다’라는 말이, 써놓고도 왜 이리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의 전성기라고 한다면 거품경제기가 아닌 바로 이 시기를 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소위 ‘쇼와 30년대’로 불리는 시기 직후 1968년 도쿄올림픽이나 1970년 오사카 엑스포로 이어지는 쇼와 황금기에의 향수는 만화 <20세기 소년>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20세기 소년>을 좋아하다보니 월석이니, 레슬링이니, 특수촬영물이니 하는 당대의 코드들이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친근하다.
오이타국제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이동하니 마침내 분고타카다시가 나타났다.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적하고 푸근한 시골 마을이다. 아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여기서 인사동이나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미야 잡화점만은 세트를 지어 운용했으나, 나머지는 이곳의 풍경을 그대로 촬영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오픈 버스 또한 실제 운행 중이었다. 500m 남짓한 거리에 100개 가까이 되는 상점들이 운영 중인데 내게는 그 가운데 쇼와 고로케가 으뜸이었다. 이 고로케는 진짜다! 라는 마음이 드는 맛이라 테두리부터 정말 조금씩 아껴 먹었다.
정작 나미야 잡화점 세트는 이미 철거되어서 아쉬웠다. 다른 곳에 조금 작은 규모로 재현해두기는 했지만, 실제 촬영했던 세트는 없어졌다. ‘여기서 촬영되었다’라는 설명만 있을 뿐이다. 대신 주변의 벤치에 한동안 누워 쉬었다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벤치에서 해를 향해 누워 눈을 감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눈꺼풀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몸 구석구석으로 온기가 흘러 내려가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는 자주 그랬는데 얼마 만에 이렇게 노상 벤치에 누워서 볕을 즐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급체를 했는지 몸이 너무 아파 동네 벤치에 이렇게 누워서 잤던 일이 기억났다.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씻은 듯이 멀쩡해져 있었다.
분고타카다시의 백미는 ‘쇼와로망창고’라는 이름의 박물관이다. 국내에도 많이 있는 ‘추억의 박물관’ 같은 컨셉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쇼와 시대를 풍미한 여러 가지 장난감과 포스터, 먹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살 수 있는 것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전시되어 있는 것들은 거의 살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울트라맨부터 고지라, 가면 라이더까지 지금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지금 복각되어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는데 확실히 구판의 조악한 아름다움을 따라올 순 없다. 솔직히 몇 가지는 그냥 가지고 도망칠 뻔했다.
바로 그 ‘조악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70, 80년대 영화 속 특수효과의 광팬이다. 이때는 뭐든지 수작업으로 특수촬영을 해야 해서 좀더 나은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진 특수촬영감독이 장인의 대우를 받았다. 지금은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세상에 없는 것도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너무 매끈하다. 너무 매끈하고 세련되고 깔끔하다. 예를 들어 롭 보틴이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1982년판 <괴물>의 괴물과 2011년판 <괴물>의 CG 괴물을 비교해보자. 물론 더 매끈하고 화려한 건 후자다. 그러나 무서운 건 보는 것만으로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끈적끈적한 질감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건 언제나 아날로그 특수효과쪽이다. 요컨대 CG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주력하지만, 아날로그 특수효과는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느끼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액션 피겨도 마찬가지다. 구판에 비해 신판은 재현율도 높고 관절도 더 많다. 하지만 구판처럼 단단하고 묵직하지는 않다. 재질도 더 저렴한 것을 사용한다. ‘조악한 아름다움’이라는, 언뜻 논리적 비문 같은 이 말을 쓰며 아쉬워할 일이 갈수록 더 잦아질 것 같아서, 조금 서글퍼졌다.
다음으로 야와시마 공원 국도를 들렀다. 영화에서 나미야 부자가 잡화점을 향하면서 지나가던 해안 도로다. 야와시마 공원 안에 작은 카페와 신사가 있었다. 이 신사는 인연을 맺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제 와 새삼 인연을 맺을 일이 없어서 나는 굳이 가지 않았다. 공원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무리의 청년들이 들어왔다. 바지에 체인을 치렁치렁 걸고 있었다. 일본에선 아직도 체인이 유행인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저 마시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청년들 일행 가운데 한명이 카페와 신사 입구 사이의 잔디밭에서 한참 동안 전화통화를 하더니 어느샌가 무릎을 끓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울음소리가 너무 서글퍼서 도무지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추리를 시작했다. 청년은 인연을 이어주는 신사에 왔다. 인연을 이어주는 신사 앞에서 전화로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 차였다. 청년은 울고 있다.
이렇게 되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짧은 일어로라도 가서 위로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때 청년들 일행에게 설명을 듣고 온 동행인이 나를 말렸다. 사정은 이랬다. 청년들은 어제 과음을 했다. 청년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보고 위산이 역류했다. 청년은 무릎을 끓고 어제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청년은 구토가 너무 아파서 서럽게 울었다. 끝.
아. 나는 감탄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세상사의 이런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면을 확인할 때마다 내심 감탄하고는 한다. 세상사는 대개 드라마틱하지 않다. 드라마틱한 건 그걸 설명하려드는 우리 말들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세리가 춤을 추는 장면을 촬영한 마타마 해안을 찾았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 일찍부터 젊은 커플들로 북적거렸다. 온화하기 짝이 없는 나마저 너희 다 언젠가 헤어질 거다,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곳이니 방문할 분들은 참고 바란다. 어느 순간 조금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텅 빈 해변으로 바닷물이 바닥을 쓸어 삼키듯 순식간에 들어찼다. 그리고 마침내 일몰이 시작되었다. 지구의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매일 반복되는 일일 텐데 문득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이 오래되고 신비한 공기로 가득 찼다. 석양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