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콜린스>(2015)에서 요일별로 서로 다른 슈퍼카를 타고 다니던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 대니 콜린스(알 파치노)는 40년 만에 도착한 존 레넌의 편지로 인해 일생일대의 변화를 맞게 된다. 이제껏 불러오던 노래는 부르지 않겠다며 월드투어를 모두 취소하고는, 홀연히 한적한 호텔에 투숙해 새로운 곡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한참 늦은 나이에 스타가 아닌 뮤지션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대니 콜린스>는 실제로 2005년 미국의 한 수집가에 의해 공개된 존 레넌의 친필 편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1971년 비틀스 해체 후, 오노 요코와 함께 지내던 존 레넌은 영국의 신인가수 스티브 틸스턴의 한 잡지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된다. 이제 막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한 그가 성공으로 인해 재능이 고갈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는,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존 레넌이 직접 편지를 써서 잡지사로 보낸다. 하지만 그 편지는 스티브 틸스턴에게 전달되지 않은 채 사라졌고 그로부터 34년 뒤인 2005년, 미국의 한 수집가에 의해 공개됐다. 34년 만에 수신인에게 도착한 존 레넌의 편지가 만약 그때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히로키 류이치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존 레넌에 대한 기억을 중심에 두고, 32년 전의 편지를 읽게 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2012년의 어느 날, 젊은 3인조 도둑 아츠야(야마다 료스케), 쇼타(무라카미 니지로), 고헤이(간이치로)는 달아나던 중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 몸을 숨기게 된다. 그때 ‘생선가게 뮤지션’이라고 이름이 적힌 편지 한통이 문틈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편지는 존 레넌이 사망한 다음날인 1980년 12월 9일, 무려 32년 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 존 레넌이 죽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편지에는 생계를 위해 부모가 운영하는 생선가게를 물려받아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에서 음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청년 마쓰오카 가쓰로(하야시 겐토)의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세 친구는 장난삼아 답장을 보내기 시작하지만 이후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미래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게 되고, 결국 과거와 현재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니 콜린스>와 달리 30년도 더 된 편지가 제때 도착했고, 생선가게 뮤지션은 그로 인해 음악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본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공간은 역시 ‘나미야 잡화점’ 그 자체이다. 일본어로 ‘고민’을 뜻하는 ‘나야미’(なやみ)를 위트 있게 응용한 나미야 잡화점은 주인 할아버지 나미야 유지(니시다 도시유키)가 동네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곳이다. 우편함에 고민을 담은 편지가 도착하면 그가 정성스런 답장으로 고민 상담을 해준다. 아이들의 장난스런 고민을 받아 답했던 것이 바로 그 마법의 우편함의 시작이었다. 201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이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은 까닭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외에 중국에서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또 하나의 이야기>(2017)가 제작됐는데, 그 중국 개봉 제목은 바로 ‘해우잡화점’(解憂雜貨店)이었다. 풀어 쓰면 ‘근심해결 잡화점’ 정도가 될 터인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해우소’라는 단어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 어감이 와닿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성룡이 안경 쓴 고민해결사 할아버지로 등장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작의 인기를 보여주는 일이라 할 것이다.
오이타현 북쪽에 자리한 분고타카다시를 대표하는 관광지 ‘쇼와 거리’내 미야마치 로터리에 바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메인 세트가 있다. ‘로터리’라는 설정과 어울리게 영화 속 다양한 이야기가 이곳을 중심으로 퍼지고 다시 돌아오는 장소다. 물론 현재는 그 로터리에서 나미야 잡화점 세트가 해체되어, 가쓰라가와강을 따라 그로부터 멀지 않은 주오도리 상점가에 나미야 잡화점 세트(사진)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기간 한정으로 지어진 곳이지만 기간이 종료되어도 점포로서 상점가에 계속 남게 된다고 하니, 이후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한 영화 속 나미야 잡화점의 실제 간판은 또 다른 곳인 ‘쇼와로망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곳은 각기 다른 컨셉의 3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 쇼와 거리의 랜드마크로서 추억의 과자와 그림책, 장난감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종 물품은 물론 당시 학교 교실과 사진관 등 쇼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그 시절의 자동차와 스쿨버스까지 있다. 같은 공간에 레스토랑 ‘ 사이 미나미구라’가 자리해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후반부에 요리사를 목표로 하는 고헤이가 요리 수행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영화 혹 나미야 잡화점이 있던 미야마치 로터리에 와닿았다. 분고타카다시 곳곳에 배치된 A4 크기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촬영지 가이드맵을 미리 챙겨두었다면, 미야마치 로터리를 찾았다가 ‘왜 없지?’ 하며 당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자리는 현재 공터가 되어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지만, 영화 속 배경인 1969년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던 너른 로터리는 옛 모습 그대로다. 나미야 유지 할아버지의 마음만큼이나 큰 삼각형 모양의 쉼터도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그렇게 불량식품을 입에 달고 마법과도 같은 할아버지의 고민 상담을 기다리던 영화, 바로 그 나미야 잡화점으로 ‘추억은 방울방울’ 여행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