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B컷으로 되돌아보는 2018년 한국영화 촬영현장 ③
2018-12-26
글 : 김현수

<마녀>

사진 노주한 스틸작가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을 찍은 스틸컷은 아니다. 노주한 스틸작가는 “영화 후반부에 자윤(김다미)과 귀공자(최우식)가 격투하는 공간인데 잠깐 쉬는 시간에 배우들과 일부러 포즈를 취해서 찍었다. 복도의 간지가 전투의 긴장감을 잘 살리는 것 같았다”면서 두 인물의 관계, 그러니까 서로를 도발하는 느낌의 포즈를 배우들에게 요구했다. 마치 쭈그리고 앉은 자윤을 얕잡아보는 듯한 귀공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이른바 기싸움컷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사진 노주한 스틸작가

부산 세트장에서 몇날 며칠 촬영이 이어지던 때였다. “조민수 배우님이 피를 뒤집어쓰는 분장을 하고 있어서 의자에 앉을 때는 저렇게 천을 대고 위에 앉아 계셨다. 대기하는 동안 피칠갑 분장하고 본인 취미인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괴기스러워서 찍어봤다. (웃음)” 노주한 스틸작가에 따르면, <마녀> 현장에서 조민수 배우의 의자 옆에 놓인 은색 가방은 스탭의 복지(?)를 책임지는 요술가방이었다고. “저 가방에 별게 다 들어 있다. 어느 날은 과일을 깎아 스탭들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누군가가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비타민과 음료수도 꺼내주셨다. 현장의 큰 어른으로서 스탭들을 두루두루 챙기셨다.”

<허스토리>

사진 최창훈 스틸작가

승리의 브이자를 마음껏 뽐내며. 올해 한국 극장가에서 <허스토리>가 길어올린 의미를 생각해보면, 김해숙 배우가 촬영 도중 최창훈 스틸작가의 카메라에 대고 포즈를 취하는 저 동작이 정말 승리를 뜻하는 기쁨의 표현처럼 보일 것 같다. 영화의 후반부 장면 중 문정숙(김희애) 사장이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촬영할 때였다고. 최창훈 작가는 “아마 구두 변론을 하러 시모노세키 법정에 가기 직전에 회의를 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던 것 같다. 워낙 이야기가 무겁다보니 현장이 다운될 수밖에 없었는데 본인이 항상 저렇게 나서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며 당시 촬영장에서의 김해숙 배우의 모습을 회상했다. “캐릭터 소화를 잘하는 분이라 가끔 우리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연기를 할 수 있지, 하며 놀랄 때가 있는데 정작 본인은 그때마다 너무 힘들어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즐겁게 일하시려는 모습을 보며 나도 힘을 내곤 했다.”

<암수살인>

사진 전혜선 스틸작가

<암수살인>의 김형민(김윤석) 형사는 강태오(주지훈)가 이리저리 파놓은 덫을 샅샅이 헤집어 되레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전혜선 스틸작가가 “무더운 여름날 촬영했던 터라 무척 힘들었다”고 기억하는 밀양의 한 산골짜기에서 이뤄진 촬영 현장은 영화에서 형민의 치밀함이 빛을 발해 태오의 실수를 알아내던 장면을 촬영하던 현장이었다. 처음 미술팀이 가짜 산소 형태를 만들어놓았을 때는 실제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고 현장에 왔던 김윤석 배우가 조상들께 죄송하다며 절까지 할 정도였다. “산 아래 도로에서 모두가 짐을 들고 촬영장까지 한참을 오르는 동안 어마어마한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는 전혜설 스틸작가는 극중 형민이 단서는 물론 확고한 심증을 갖고 현장 증거를 찾던 그날의 현장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곤지암>

사진 전혜선 스틸작가

문제적 공간의 탄생이다. 402호실은 <곤지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메인 테마까지도 담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402호실의 문을 만들기 위해 미술팀뿐만 아니라 정범식 감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스탭이 문 앞에 모여 온갖 낙서를 해야 했다. 전혜선 스틸작가는 “낙서의 내용은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롭게 써내려갔다. 역시 낙서의 포인트는 더 자연스럽게, 더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작업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당시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전혜선 스틸작가

개봉 전부터 온갖 바이럴 마케팅으로 화제가 됐던 <곤지암>은 영화 내외적으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실제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정교하게 짜맞춘 장르적 특징에서 기인한 것인데, 극중 샬롯 역의 문예원 배우가 이상하게 몸을 뒤틀고 찍은 단체컷 역시 영화 속 한 장면인지 쉬는 시간에 장난 삼아 찍은 컷인지 구분이 안 된다. 전혜선 스틸작가에 따르면, “영화의 대부분이 밤 신이고 무서운 공간만 찍다보니 낮에 촬영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모처럼 환한 곳에서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라고. 처음에는 무난한 단체사진으로 시작했으나 정범식 감독이 계속해서 더 재미있게, 더 특이하게, 더 기괴하게 찍어보기를 요구해서 나온 컷이다.

<명당>

사진 차민정 스틸작

<명당>에서 모두가 땅만 바라보며 권력을 탐할 때, 정작 그 땅에 대해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박재상(조승우)과 구용식(유재명)은 한치 앞의 이득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본다. 다른 어떤 작품에서보다 힘을 빼고 유머와 여유를 즐기는 듯한 두 배우의 연기를 보며 이번 촬영장에서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촬영 내내 가장 근거리에서 배우들을 지켜본 차민정 스틸작가는 “두분 모두 워낙에 성격이 조용하고 또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해서 유쾌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별로 없다”고 말하면서 세도가 김좌근(백윤식)의 집에 숨겨진 비밀 창고에 몰래 들어가 대화를 엿듣는 장면을 촬영하던 때를 회상했다. 49회차 되던 날에 찍은 컷인데 두 사람이 아주 얌전하고 조심스럽게 웃고 있다. “모니터 앞에서는 항상 진지해서 웃을 일도 크게 없었는데 조승우, 지성, 유재명 세 배우 중에서는 유재명 배우가 가장 활달해서” 카메라가 잠시 쉴 때마다 다른 배우들을 종종 웃겨주곤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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