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틱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틱 시네마’다. <나쁜 녀석들> <보이스> <라이프 온 마스> <손 the guest> 등 기존 한국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장르물을 만들어온 OCN이 영화 제작진과 의기투합해 진짜 영화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그 첫 포문을 열 드라마 <트랩>은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의 박신우 감독이 영화로 준비하던 작품을 7부작 드라마로 확장한 스릴러물이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남상욱 작가가 드라마판 각색에 참여했다. 전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민 앵커 강우현 역에 이서진, 그를 ‘인간 사냥’한 정체불명의 사냥꾼들을 추적하는 베테랑 형사 고동국에 성동일이 캐스팅돼 지난해 12월 촬영을 마쳤다. <씨네21>이 단독으로 <트랩> 촬영 현장을 방문해 이 솔깃한 컬래버레이션의 면면을 엿보았다. 박신우 감독, 배우 이서진과 성동일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너무 춥다. 우리 커피숍 가서 얘기하자고 대사 바꾸고 어디 들어가서 찍자.” 성동일이 너스레를 떨자 촬영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2월 9일 늦은 밤 경기도 파주의 어느 숲속에서 진행된 OCN 드라마 <트랩> 촬영팀은 영하 6도,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낮은 한파와 싸워야 했다. 성동일이 현장에 유행시켰다는 발열조끼로도 막을 수 없던 강추위 속에서 두 배우는 심지어 극에서 중요한 액션 신을 연기했다. 최근 기자와 다시 만난 이서진은 “그때 너무 추워서 요즘 날씨가 오히려 따뜻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트랩>은 <완벽한 타인>(2018)에 이은 필름몬스터의 두 번째 작품이다. 대중에게 절대적 신뢰를 받는 앵커 강우현(이서진)이 ‘인간 사냥’의 피해자가 되고 매사에 심드렁하던 형사 고동국(성동일)은 유독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며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은 스릴러다.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의 박신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씨네21>이 파주 야외 촬영 현장에 방문했을 때 <트랩>은 전체 73회차 중 53회차를 촬영 중으로 프로덕션이 70%이상 진행된 상황이었다. 촬영 장비 외에는 불빛 하나 없고, 풀과 나무가 무성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트랩>의 공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로케이션 섭외를 맡은 로디 황정호 실장은 “<트랩>에 나오는 대부분의 산은 멋있거나 예쁘지 않다. 장르 드라마라는 특징도 있고 장소보다는 인물에 집중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이날은 오래된 큰 나무가 있고 산의 느낌이 거친 공간을 골랐다”고 말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강우현과 고동국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 각기 다른 장소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신이다. 전개상 <트랩> 5부 후반에 해당한다. 어쩌면 만화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을 시청자가 리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연출하는 것이 관건. 성동일은 “여기서 찍기에는 장소가 좁지 않을까?”라며 동선에 대한 의견을 냈고, 이서진은 장면의 길이나 소품용 칼의 크기가 자신이 해야 할 액션 연기에 어울리는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장한승 무술감독은 강우현의 액션에 대해 “초반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잘 묻어나는 생활 액션 위주로 구성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냉정하면서도 점점 과감해지는 깔끔한 액션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또 설정상 극중 우현이 특수부대 출신이다 보니 일반인보다 몸을 잘 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이날 촬영에서 무술팀이 먼저 시범을 보이자 이서진은 “이걸 어떻게 해? 못할 거 같은데”라고 난감해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추운 날 산에서 구르며 강도 높은 액션 신을 모두 소화한 그에 대해 박신우 감독은 “두분의 캐릭터가 조금 다르다. 이서진 선배는 좀 귀엽다”고 운을 뗐다. “예능 프로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똑같다. 처음에는 툴툴대다가도 막상 시키면 다 한다. 산에서 비 맞으면서 하는 신처럼 힘든 촬영이 많았는데도 매번 열심히 했다.” 한편 성동일은 긴 계단을 밑에서 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가는 컷을 몇번이고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매번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했다. “감독이 뭘 요구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베테랑이다. 결과를 고민하기보다는 과정을, 현장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다. 촬영 자체를 재밌게 하려고 애를 쓴다”(박신우 감독)는 성동일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한때 유도 선수 생활을 했다. 그 덕분인지 액션에 대한 감이 굉장히 좋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장한승 무술감독은 “고동석은 복싱을 베이스로 한 형사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액션은 대부분 복싱이 주가 됐다. 또 그가 가진 절실함과 애절함이 액션에 묻어날 수 있도록 임팩트가 강하거나 화려한 액션을 조절했다”고 전체 컨셉을 설명했다.
<트랩>은 OCN이 2019년 선보이는 ‘드라마틱 시네마’의 첫 작품으로, 감독을 비롯한 영화 제작진이 합류해 마치 7시간 분량의 영화처럼 제작했다. 특히 5부까지 콘티북을 촬영 전에 배부한 것은 기존 드라마 현장에서는 거의 없던 일이다. 이 분량을 두달반 만에 73회차에 촬영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엄청난 집중력이 느껴진다. “동료 감독들이 현장에 한번 놀러 갈 테니 불러달라고 했는데, 너무 정신없어서 그러지도 못했다.”(박신우 감독) 일부러 조감독 2명을 둔 것도 영화이면서 드라마인 <트랩>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장치. 드라마 경험이 많은 최현성 조감독, <최종병기 활>(2011), <명량>(2014), <완벽한 타인> 등을 거친 김남수 조감독이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을 했다. “드라마 조감독은 영화로 치면 스케줄러에 가깝더라. 그 밑의 연출부 친구들은 일종의 FD, 영화에서 연출부와 제작부 일을 함께 하고. 드라마 스탭들은 콘티 작업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기도 하고, 나와 영화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 영화 출신 조감독이 꼭 있어야 한다고 이 부분은 강하게 요구를 했다.”(박신우 감독) 7부작 드라마 외에도 일종의 영화라고 생각하며 만들 예정이라는 ‘감독판’ 방영도 예고돼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한창인 <트랩>은 OCN 채널에서 2월 9일 밤 10시20분 첫회를 방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