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젊은 독립영화 감독①] <벌새> 김보라 감독 - 1994년 우리 모두의 기억을 소환하다
2019-03-13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세상에 어쩌면 다리가 무너지니…”라는 말은, 다리가 무너졌다는 비극적 ‘팩트’의 다른 표현이다. 25년 전인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트러스 48m가 붕괴했다. 사고 당일, 이른 아침 서둘러 출근하거나 등교하던 시민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했고 그 가운데 32명이 사망했다. 눈앞에서 거대한 다리가 동강 난 참상을 화면으로 마주했던 그날. 부실공사 저변에 깔린 대한민국 사회의 부정부패는 한강의 남과 북을 잇는 대형 다리가 두 동강 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년 뒤, 서초동에서는 멀쩡히 서 있던 대형 백화점이 붕괴했고, 20여년이 지난 2014년 4월 진도에서는 거대한 배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했다.

그 ‘사건’들 속에 ‘사람’이 있었다. 내 부모일 수도, 내 자식일 수도, 내 형제일 수도, 내 친구일 수도 있었던, 그래서 그 시각 연락이 닿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아찔한 ‘기억’이 있었다. 희생된 이들은 결코 우리에게 ‘남’일 수 없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일어난 1994년, 중학생이던 김보라 감독은 당시 상황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집단의 기억’을 자신의 유년기 경험을 토대로 써나간다. <벌새>는 그렇게 김보라 감독 자신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감정의 파장을 안긴 사건을 14살 소녀 은희(박지후)가 맞닥뜨린 죽음을 통해 돌아보는 작품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무너진 한강 다리를 보는 장면에서 기시감을 느낀다면, 그건 그들의 표정이 그 무수한 참사를 마주한 우리의 얼굴이기 때문일 터다.

은희의 눈을 통해 본 1994년 풍경을 그린 영화는 그래서 성장영화라는 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개인의 서사가 정치적인 것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한 인간의 성장을 통해 그 관계망을 보여주려고 했다.” <벌새>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넷팩상과 KNN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과 새로운 선택상을 수상하며 지난해 독립영화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후 올해 2월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는 제너레이션 부문에서 심사위원 선정 대상을 수상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5)을 떠올리게 하는 성장기 아이들의 심리묘사와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을 연상케 하는 시대 풍경 재현에, 마음속에 캡처하고 싶은 순간으로 가득한 영화.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부는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작품적, 연출적으로 성숙한 면을 보여주면서 탁월한 주인공의 심리묘사로 관객 모두를 통하게 한 작품”이라며 <벌새>를 호평했다.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작인 단편 <리코더 시험> 이후 근 7년 만의 작품이다. 1988년, 학교 리코더 시험을 앞둔 초등학생 은희가 오빠에게 물려받은 낡은 리코더로 고전하는 사이, 부모의 불화와 언니의 무관심, 그리고 아빠와 오빠라는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어린 소녀가 겪는 감정의 파고를 ‘삐삐삐삐’ 리코더 선율에 담아낸 작품이 <리코더 시험>이라면, <벌새>는 그렇게 자란 은희가 겪는 1994년의 일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설정이다. 디테일한 은희와 은희 가족의 캐릭터, 그들간의 관계 묘사에 영화를 본 관객은 은희가 어떻게 자랐을지 많이 궁금해했다. <벌새>는 김보라 감독이 그 요구에 “은희의 중학생 버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매달려 완성한 작품이다.

“떡집 좀 그만 우려먹어라.” 김보라 감독의 어머니가 우스갯소리로 핀잔을 줄 정도로 은희는 감독 자신의 유년기를 꼭 닮은 캐릭터다. 가족 구성원도, 부모님이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한 사실도, 목 뒤에 혹이 나 수술한 에피소드도 똑같다. 은희가 지나다니던 철거촌 풍경 역시 김보라 감독이 어릴 때 보았던 당시 개발의 풍경 그대로다. 김보라 감독은 타워팰리스가 들어서기 전 등하교하며 그곳을 지나다녔고, ‘죽어도 못 나간다’는 핏물 같은 글씨가 쓰인 현수막을 보며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하는 나이였다. “친구 아빠의 직업이 대부분 교수나 의사였다. 아파트 몇동에 사는지에 따라 계급이 나뉘었고, 우리 집이 떡집을 한다고 놀림도 많이 당했다(그는 대학에 가자 사람들이 ‘떡집’보다 ‘대치동’을 자신을 판단하는 수식어로 사용했다는 점이 재밌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맛있는 떡을 만드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울 텐데, 어릴 때는 나도 창피하더라.” 아이들이 그렇게 가엾게 병이 든 건, 결국 어른들의 탓이다. “이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사회와 정치에 관해 생각하게 된 건 고등학교 들어간 후였다.” 은희에게 유일한 ‘어른’이 되어준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가 있었던 것처럼 김보라 감독도 중학생 때 한문학원에 다녔고 마치 영화 속 영지같은 선생님을 만났다. 노동운동을 하는 좌파 출신, 분명 페미니스트였을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방학이 지나고 선생님이 갑자기 사라지셨다. 그 선생님의 모습이 영지의 모델이 됐다.”

작가적 소재를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경험에서 빌려오는 일, 그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두렵지는 않았을까. 김보라 감독은 “스스로를 영화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20대 중반부터 진행해온 명상 모임이 바탕이 된다. “<줄탁동시>(2011)의 김경묵 감독을 비롯해 친구와 함께하는 ‘무화과’라는 명상 모임을 지속해왔다. 각자 부모에게 무엇을 얻고, 어떤 점을 싫어하면서도 닮았는지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한다.” 김보라 감독은 20대부터 다양한 명상 모임 공동체를 비롯해 페미니즘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명상 모임에서 이야기한 어릴 적 기억이나 연관된 사고들을 간단히 메모해 꾸준히 남겼고, 그 메모가 시나리오의 재료가 되었다. <벌새>를 만든 것도 감독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보다 작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선한 빛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이 과정을 “일종의 심리 테라피”라고 말한다. “내 고통이라면 만들지 못했을 것 같다. 내 고통이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내가 특별할 수도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내 이야기가 더이상 부끄럽지 않고, 또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명상을 하며 알게 됐다.” <벌새>에서 영지 역을 연기한 김새벽은 김보라 감독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법을 이렇게 정리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찾는 사람이 있다면, 김보라 감독은 그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김새벽은 그 출발점이야말로 김보라 감독이 가진 차별점이자 그의 작품이 가진 엄청난 힘이라고 말한다.

“영화감독이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다.” 스스로를 영화감독이라 칭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지만, 사실 첫 장편이 엄청난 주목을 받기까지 김보라 감독이 밟은 과정은 오히려 ‘감독’ 김보라를 명확히 드러내준다. 고등학교 때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 대학원 영화과에 진학했다. <리코더 시험>은 컬럼비아대 졸업작품으로, 미국감독조합 학생영화상, 우드스톡영화제 학생단편영화 부문 대상 등을 수상하며 김보라 감독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3~4년간 영화를 만드는 대신 성결대, 동국대 등에서 ‘강의 노동자’로 일했다. “유학 간 게 27살 때였다. 장학금이 많이 나와서 갔는데… (웃음), 그런데 내가 과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늘 따랐었다.” 돌아보면 장편으로 데뷔한 여성감독이 전무하다시피하고, 잘한다고 평가받던 여자 선배들도 졸업 후엔 결국 영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온 탓에, 연출가로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니 선생님들이 내 작업을 진지하게 봐주고, 여성이 영화를 만드는 데 호의적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강의를 하게 된 것도, 나도 내가 받은 이 기운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였던 것 같다.”

<벌새>는 유학 시절 친구들에게 모니터링을 받고 또 받으며 꼼꼼히 써나갔고, 그만큼 긴 시간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늘 의심하고, 회의하고 그랬다. 여자감독이라는 이유로 실수하지 않고 잘 만들자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이후 곧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이스탄불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등 해외 영화제에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또 올해 상반기 개봉해 국내 관객과의 본격적인 만남을 앞두고 있다. 감독은 그 와중에 차기작에 대한 생각도 놓질 못한다. “제안받은 작품이 몇편 있고, 쓰고 싶은 시나리오도 있다. 정서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SF작품이나 엄마와의 관계를 확장한 작품 등을 그리고 싶다. 앞으로 여성으로서 내가 아는 여성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 그 안에서 남성을 제대로 그리고 싶다.” 다만 두 번째 작품은 좀 자신 있게 추진하자 생각한다. “건강한 확신을 하고, 나를 너무 의심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간 나에게 너무 시니컬하게 굴고 확신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치유의 시간 이후, 본격적인 스타트라인에 선, 김보라 감독의 작품을 기다린다.

● 김보라 감독에게 영향을 준 감독과 영화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은 에드워드 양이 아닐까. <벌새>를 만들 때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 한편을 꼽으라면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이다. 살인사건도, 이별도 있는 비극적 세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계가 너무 아름다워서 긴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부디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대만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한 개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내 영화도 그런 점을 닮았으면 싶었다. 에드워드 양이 고국과 떨어져 해외에서 살면서, 대만 사회를 타자화해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그런 시각을 닮고 싶었다. 나의 과거를 스스로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 보듯 보는 태도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갖게 되었다. 일터를 잃은 20대 여성 노동자의 하루를 그린 단편 <가리베가스>(2005)를 연출한 김선민 감독도 꼽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그린 영화를 보면 그 노동자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김선민 감독은 노동자를 연민의 시선으로 그리지 않는다. 주인공 선화를 알고 싶게 만든다. 나 역시 누군가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 김보라 감독의 전작들

<리코더 시험>의 초등학생 은희, <벌새>의 중학생 은희. 김보라 감독의 영화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아직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하는 나이. 소녀의 정체성 탐험은 귀엽고 소박한 SF 단편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으로 만들어진다. ‘취향’의 영수증을 발행해주는 편의점, 녹취되는 24시간, 기록되는 우리의 생각 등, 특수효과 없이 소녀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행동만으로도 장르를 표현한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소녀와 트럭운전사 사이에 형성된 멜로 기운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풀어낸다. 소녀의 성적 호기심이 좁은 트럭 안에서 발하는 발칙한 대사들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벌새>의 디테일한 묘사의 시작점은 헤어진 연인의 하룻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린 단편 <귀걸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남친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까지 영진의 심리를 귀걸이라는 그와의 연결 고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 필모그래피: 장편 2018 <벌새> / 단편 2011 <리코더 시험> 2005 <철수야 철수야 뭐하니?> 2004 <귀걸이> 2003 <빨간 구두 아가씨> 2002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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