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5G 시대의 한국영화계①] 초연결성이 영화를 어떻게 바꿀까
2019-05-01
글 : 장영엽
5세대 이동통신 기술, 5G 주목하는 영화계… 실감 콘텐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얼마나 가까워질까
덱스터스튜디오, 투썬디지털아이디어, 매그논스튜디오의 MOU 체결.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보고, 가상공간에서 작업에 필요한 매뉴얼을 익히며, 드론으로 택배를 받는다. 집에 오면 그날의 기분에 맞는 음악이 저절로 흐르고 건강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5G 시대의 풍경이다. 4월 3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상용화된 5세대 이동통신 기술, 5G가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는 최근의 활발한 담론은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같은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미래 사회의 모습이 머지 않아 실현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5G는 쉽게 말하면 아주 빠르게(초고속), 실시간(초저지연)으로, 대용량 데이터와 모든 사물을 연결(초연결)해주는 이동통신 기술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 손꼽히는 이 차세대 기술은 4G의 20배(20Gbps)에 달하는 데이터 전송 속도를 자랑하고, 10배 이상의 기기(100만개/㎢)를 연결할 수 있으며 전송 지연율을 10분의 1(1000분의 1초)로 줄일 수 있다. 즉, 랜선의 속도로 무선 데이터를 끊기지 않고 이용할 수 있으며 기기 여러 대를 동시에 연결해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5G의 기능은 ‘초연결’이다. 그동안 이동통신 기술의 활용 영역이 스마트폰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5G 시대에는 초연결이라는 특성을 통해 다양한 산업 분야, 다양한 디바이스에 이동통신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수많은 신규 사업이 가능할 수 있다. KT 경제경영연구소의 ‘5G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5G는 2030년경 자동차, 제조, 헬스 케어, 운송, 농업, 보안/안전, 미디어, 에너지, 유통, 금융 등 10개의 산업 영역에서 최소 47조8천억원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5G를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원동력’으로 주목하는 이유다.

창작자들의 관심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특히 5G는 미디어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 기술 전시회인 CES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5G 시대의 뚜렷한 변화는 미디어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4G 시대에 PC가 폰 안에 들어왔다면, 5G 시대에는 TV가 폰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모바일에서도 끊김 없고 선명한 영상 콘텐츠 시청이 가능한 5G 시대는 4G 환경에서 실시간으로 이용하기 어려웠던 영상 콘텐츠의 시청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유형의 킬러 콘텐츠를 제작·소비하는 시대를 열어젖힐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 관계자들도 이러한 변화가 한국 영화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준식 롯데컬처웍스 홍보팀 과장은 “모바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서비스) 사업자들의 사업 내 입지가 지금보다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OTT 사업자들이 합종연횡해 가입자 유치를 위한 차별화된 콘텐츠에 공을 들이는 최근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자사의 OTT 플랫폼 ‘옥수수’와 지상파 3사의 연합 OTT 플랫폼 ‘푹’(POOQ)의 통합법인을 준비하고 있는 SK텔레콤과 IPTV 브랜드 올레TV를 통해 워너브러더스, 소니픽처스, 이십세기폭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손잡고 국내 미개봉작을 선보일 KT가 이런 사례다. 이처럼 콘텐츠 확보 전쟁이 치열해진 미래에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영화 제작이 활성화되어 극장용 콘텐츠와 OTT용 콘텐츠의 구분이 생기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는 것이 최준식 과장의 생각이다. 영상 수익 창출 방식과 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플랫폼이 앞으로 점점 더 다각화할 것이란 전망은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이견이 없다. 양지혜 NEW 홍보팀장은 “디바이스 특성에 맞춘 영상 콘텐츠의 개발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을 전했고, 윤인호 CJ E&M 홍보팀장은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영화를 보는 패턴이 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디바이스 진화의 큰 방향성이 개인화인데, 이같은 방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통신망이 갖춰지면서 디바이스 진화에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5G라는 첨단 이동통신 기술의 영향인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하 쇼박스 투자2팀장은 “4G 환경에서도 이미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청 환경 변화는 상당 부분 진행돼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꾸준히 한 방향으로 진행돼온 변화의 속도가 5G 개통으로 급작스럽게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5G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보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사례로 실감 콘텐츠를 들 수 있다. 몰입감과 사실감을 극대화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홀로그램 기반의 실감 콘텐츠는 정부가 주목하는 5G의 ‘5대 핵심 서비스’ 중 하나다. 5G 기술로 실시간으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지연 문제로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실감 콘텐츠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현재 실감 콘텐츠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주체는 5G의 가시적인 변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목마른 이동통신사들이다. LG유플러스는 VR 플랫폼 U+VR을 통해 5G 전용 콘텐츠를 연말까지 1500편으로 늘려 제공한다. 또 VR 콘텐츠 회사 벤타VR에 투자해 VR 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구글과 공동제작한 VR 콘텐츠를 상반기 중 U+VR 플랫폼과 유튜브를 통해 독점 제공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OTT 플랫폼 옥수수에 SKT 5GX관을 마련하고 8천여편의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도경수가 더빙한 애니메이션 <언더독> VR 체험 영상과 VR 공포영화 전문 스튜디오인 ‘다크코너’의 작품 등의 영화 콘텐츠를 만날 수 있으며(자세한 내용은 52쪽 참조) 영상 시청 중에 VR 기기를 연결하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영상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체험할 수 있다.

<언더 프레젠트>

이처럼 콘텐츠 수급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실감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VR/AR 콘텐츠 제작·기획 부서를 따로 두고 있는 덱스터스튜디오의 신사업팀 최은지 PD는 “1년에 몇편씩 VR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요즘처럼 VR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며 실감 콘텐츠에 쏠린 업계의 관심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올해 3월에는 신기술을 적용한 고난도 작업을 요청하는 사례가 5G 시대에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국내 VFX업체들이 콘텐츠 VFX 제작 사업 및 미디어 사업 전반의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MOU)을 체결하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중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유랑지구>(2019)로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고 이병헌, 하정우 주연의 영화 <백두산>을 준비 중인 덱스터스튜디오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영화 <부산행>(2016) 등의 VFX를 맡은 투썬디지털아이디어, 영화 <관상>(2013), <악질경찰>(2018)의 VFX를 작업한 매그논스튜디오가 그들이다. 이들은 MOU를 맺고 기존 미디어 영역인 영화, 드라마, 광고는 물론이고 테마파크, VR, AR, 홀로그램 등 신규 미디어 영역으로 향후 사업을 확장하는 데 각 사의 강점을 살려 상호 이익을 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밖에도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4th Creative Party), 모팩, 매크로그래프, 위지윅스튜디오 등의 VFX 영상 제작업체가 자체 연구소나 랩을 갖추고 5G 시대의 핵심 콘텐츠인 실감 콘텐츠를 연구하고 제작하는 중이다.

실감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들 사이에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사례처럼 기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영화가 이야기 밖에 위치한 관객이 직접 캐릭터의 운명을 선택함으로써 서사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VR 환경 내에서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관객이 서사 세계 안에 현존감을 느끼는 몰입적 환경을 전제로 한다. VR영화 <공간소녀>를 연출한 최민혁 감독은 이러한 특성이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 속에서 관객 스스로 움직이며 이야기에 참여하는 ‘이머시브 연극’과 유사함을 강조한다. 세계 최대의 창조산업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서 공개된 VR 영상 <11 11>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6명의 등장인물이 10분 안에 행성을 탈출해야 하는 것이 이 작품의 기본 줄거리다. <11 11>에서는 서사의 기본 흐름은 바뀌지 않으나, 관객이 주인공 6명의 시점을 모두 선택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또 미국 VR 기업 오큘러스에서 만든 VR영화 <언더 프레젠트>는 관객과 연기자가 네트워크에 동시 접속해 함께 스토리텔링을 경험한다. 최민혁 감독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미래는 “연기하는 관객”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 세계 속에 들어간 관객이 마치 배우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부여받고 자신의 창조성을 동원해 서사에 참여하고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는 실감 콘텐츠가 주목받는 5G 시대에 이처럼 “콘텐츠 안에서 관객이 실시간으로 다른 관객과 연결되어 스토리적 경험을 향유하는 문화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감 콘텐츠는 앞으로 영화 콘텐츠를 관람하는 방식도 점차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버추얼 시어터’라는 가상의 극장을 만들어 그들이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를 VR로 관람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최수영 CJ 이노베이션 랩 연구원은 “이 서비스를 실제로 체험한 관객 대다수가 실제로 그들이 극장에 갔을 때와 유사한 체험을 했다고 느꼈다”며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5G 기술이 발전해 지금보다 고화질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극장에서 느껴왔던 경험을 집에서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민혁 감독은 이러한 소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양상에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 “관객이 점점 영화를 모바일로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영화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 경험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상공간에서야말로 굉장히 이상적인 조건의 공동체적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관객은 원하는 관람 환경을 직접 세팅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다. 아마 이러한 가상 상영관과 관련한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처럼 첨단 기술을 선도적으로 고민하고 제작하며 전망하는 VFX업체나 창작자들의 행보와 별개로 기존 한국 상업영화에 투자하고 제작해온 관계자들은 실감 콘텐츠의 상용화에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비용의 기술을 들여 저항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아직 검증되지 않은 포맷을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최근하 쇼박스 투자2팀장)뿐더러 “영화 특유의 긴 호흡(러닝타임)이 VR 장비를 착용하고 시청해야 하는 관객에게는 큰 도전”(최준식 롯데컬처웍스 과장)일 수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는다. 더욱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이 아직까지는 실감 콘텐츠의 핵심인 소비자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나 움직임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실감 콘텐츠가 당분간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고 전망한다. 윤인호 CJ E&M 홍보팀장은 “매력적인 VR/AR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디바이스의 보급 또는 PC방 같은 신개념 공간의 탄생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현재 보급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매력적인 실감 콘텐츠를 즐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제작 비용이 많이 들면서 아직 대중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실감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최은지 PD는 “실감 콘텐츠를 찾는 수요가 많다고 해서 서비스하는 모든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을 거라고 예상하면 안 된다”며 “업계 사람들은 잘 만들었다고 극찬하는데,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가보면 일반 유저는 잘 알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아직까지는 플랫폼에 실감 콘텐츠를 서비스할 때 <신과 함께> VR처럼 유명 IP의 힘이 필요하다”는 한계점을 지적했다.

넷플릭스 VR앱이 구현한 가상의 극장.

‘리얼타임 엔진’에 주목

그렇다면 실감 콘텐츠보다 더 빠르게 영화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5G 시대의 혁신적 기술은 없을까. 영화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리얼타임 엔진’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한다. 리얼타임 엔진이란 시스템에 입력한 데이터가 명령과 동시에 처리돼 구현되는 기술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촬영 과정에서 동시에 최종 결과물과 흡사한 수준의 CG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과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 실사로 제작되는 <라이온 킹>(2019) 등 할리우드영화 현장에 이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페이지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했다(50쪽 참조).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버디 VR>로 최고 VR경험상을 수상한 채수응 감독은 “실시간으로 영상을 렌더링하는 리얼타임 엔진은 기존 VFX 영상 제작 방식의 한계였던 인건비와 제작기간 문제를 극복하고, HDR이나 8K급 영상 송출에 큰 역할을 하고, VR과 게임 콘텐츠의 원활한 스트리밍(구글의 스테디아를 생각하면 된다)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5G가 열어젖힌 영상 콘텐츠 전쟁은 지금 막 시작됐다. 아직은 정해진 것도, 결정된 것도 없으며 5G가 안정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PC와 스마트폰이 야기한 사회 변화가 그렇듯, 미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5G 시대의 충무로는 어떻게 변화할까. 2019년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고민해야 할 질문이 던져졌다.

최신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