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작가 3인을 만나다③] <올해의 미숙> 만화가 정원 - 자전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2019-05-09
글 : 이다혜
사진 : 오계옥

성인이 된 미숙은 언니 정숙의 투병을 지켜보며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과거에는, 좋아했던 친구가 미숙의 상황을 소설로 써 큰 상을 받은 일도 포함되어 있다. “내 이야기였다. 시인인 아버지가 엄마를 죽도록 패는 이야기. 허벅지를 매일 꼬집는 언니가 동생을 죽도록 패는 이야기.” ‘프롤로그’는 있지만 ‘에필로그’는 없는 <올해의 미숙>은 섣불리 넘겨짚는 법 없이 미숙이 경험하는 사람과 세상을 보여준다. 학교에 다니던 미숙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정원 작가는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모르겠다. 내가, 남성이, 설령 그 또래의 나이라 하더라도 미숙에게 말하는 게 맞을지부터 생각할 거 같다.” 그 신중함이, <올해의 미숙>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올해의 미숙>은 읽다 보면 자전적인 내용이라는 인상이 짙다. 어떤 식으로 작품을 시작했나.

=‘독립’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 세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이슈가 <올해의 미숙>을 시작하던 때의 내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나 주변 이야기는 안 쓰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부분은 생기겠지만.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 삼지 말자고 생각했다.

-주인공 미숙이 학생 때부터 그렸다. 따로 취재했나.

=그렇다. 내가 살았던 시대지만 검색이나 과거 자료를 많이 활용했다.

-미숙 또래 여성의 심리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했나.

=많이 물어본다. 특히 배우자에게 많이 물어봤다. 내가 그린 감정이 혹시 과장되지 않았는지 점검했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반영하는 편인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많이 들었고 작품에 반영했다. 창비 편집부와 얘기할 때도, 나는 문제되지 않으리라 생각한 부분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편집부 의견을 받기도 했다.

-어떤 부분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그중 하나는 미숙이가 면접장인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롱숏으로 8컷에 걸쳐 그렸다. 미숙의 불안감을 표현한 부분이다. ”그 장면에서 우리가 꼭 미숙을 불안하게 쳐다봐야 하는가? 필요한 장면인가?”라는 의견이 있었고, 이 작품이 스릴러도 아니니까 장치적 긴장감을 위해 굳이 넣지 않아도 좋겠다고 공감해서 뺐다.

-미숙의 아버지는 시인이다. 한국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진 가부장적 속성에 더해 예술가로서의 특징도 가진 인물이다.

=아버지 캐릭터는 인물로 설정했다기보다 가부장제 자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격으로 보여도 안 되고 그냥 한국의 아버지상이다. 평범한 설정만 골라 만들었는데도 충분히 안 좋게 보이더라. 안 좋은 아버지상, 가부장. 그 사람의 성격이나 역사 말고 그냥 그렇게 보였으면 했다.

-왜 아버지는 시인이어야 했나.

=일단 아버지 호식은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미숙이랑 정숙이는 책상이 없고 밥상에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는 사람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시인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인이 갖고 있는 자세가 가족에게 적용됐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하지만 맨 처음은 벽을 바라보고 책상에서 글쓰는 사람을 떠올렸다.

-주인공 미숙은 어린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미숙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일까 혹은 어른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싶어진다. 청소년기의 자신이 현재의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느끼나.

=청소년기를 좋은 에너지로 보낸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달까, 단단해 보인달까 그렇다. 문제가 있을 때 본인 식대로 해석해서 본인 속도로 옳은 결정을 내리는 듯 보인다. 나는 그게 힘들다. 청소년기를 좋은 에너지로 보내면 결정할 때의 여유 같은 것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나.

=최근 부모님과 연을 잠시 끊기로 결정하고 지금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 결정을 했을 때의 과정이 편치 않았다.

-<운수 좋은 날> <무소유> 같은 책이 <올해의 미숙>에 등장한다. 우연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이야기 속에서 필요해서 넣기도 했고 내가 좋아해서 넣기도 했다. 황인숙 시인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는 정숙이 떠올라서 넣었다. <운수 좋은 날>의 경우, 김 첨지는 가정폭력범인데 단순히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처럼 묘사된다. 김 첨지가 그렇게 비대할 정도로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게 너무 불쾌했기 때문에 책에 넣었다.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뭔가.

=생계를 위해 그렸다. 딱히 생계형 만화를 그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웃음) 계속 그리는 이유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그리는 것도 있다. 내가 협업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 리듬을 잘 못 쫓아가는. 만화 정도가 내게 맞더라.

-처음 시작하던 때 이런 이야기는 꼭 그려야지 했던 게 있었나.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지 말자는 생각만 있었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미숙의 삶이 있으니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떠올랐고 매년 살아간다는 느낌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의 미숙’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사실 그때 기사를 보고 있었다.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 기사를 읽다가 소설을 미숙으로 바꾸니까 너무 예쁜 거다. 거기서 오는 중의적 의미도 기분 좋게 다가왔고.

-작업 중에 염두에 둔 가제는 없었나.

=‘단독자’라는 제목도 있었고 ‘불가항력’이라는 제목도 있었는데 얘기를 쓰면서 계속 바뀌었다. 지금이 제일 좋다.

-재미있게 읽은 다른 작가 작품들은.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 강아지를 좋아해서 마영신 작가의 <19년 뽀삐>를 울면서 읽었다.

-계획 중인 작품은.

=집과 관련된 이야기와 가족 형태에 관한 이야기.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서 하나씩 쓰고 있다.

● 내 인생의 영화_ 영화가 너무 많이 떠오른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쓰리 빌보드>(2017), <로마>(2018), <아무도 모른다>(2014)를 좋아한다. 김보라 감독의 <리코더시험>(2011)도 좋다. 만화에 가장 영향을 끼친 감독이라면 다르덴 형제 감독이다. <로제타>(1999)를 가장 좋아한다.

최신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