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란 영화를 무척 사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바르다와 바르다의 영화를 분리해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내밀한 마음은 둘 중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을 향해 내달리곤 했다. 짐작건대 누군가는 나와 꼭 같은 마음으로 바르다의 영화를 껴안았을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8)이 유언장이 아니었음에 안도하고, 비주얼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며 끝없이 예술적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바르다의 재능과 열정에 경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을 때 그녀의 마지막 소식이 들려왔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날 그 극장에 있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파고들 기억 하나가 새겨지지 않았으니 정말 다행일 수밖에 없었다. 늦게 소식을 접했다면 <방랑자>(1985)를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섰을 때였을 텐데. 그 냉혹하고도 단단한 영화를 보고 나오며 맞은 차가운 밤공기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비보까지 날아들었다면, 당신은 어땠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바르다가 세상을 떠난 후 한 계절이 지났고, 그녀의 생일인 5월 30일에 그녀의 유작이 개봉했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난 알았다. 나는 아직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괜히 서러웠고 마지막까지 그녀다운 인사를 건네는 바르다가 괘씸하기까지 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리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것일까. 이 영화가 유작이 될 거란 걸 알았으면서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그럼 전 떠납니다” 하고 가버린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이 글로 그녀에게 작별 인사 같은 걸 건네지 않을 생각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이미지와 결부된 이 순간의 감각은 남을 거예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기억할 거예요”라고 했던 바르다의 마지막 말을 다른 방식으로 따라해볼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기억할 거예요”
내가 체감했던 바르다의 시간을 다시 느껴보고, 빠져들었던 영화의 장면들을 복기하며 지금이 아니면 더 열없어질 애정 고백을 해나갈 생각이다. 지난봄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을 반복해볼 것이다. 무엇이 그녀의 영화를 친밀하게 느끼게 만드는지, 감독과 영화를 동일한 존재로 받아들이며 연모하게 된 것인지 그 연유에 대해 찾아볼 생각이다. 그러니 양해를 먼저 구하고 싶다. 앞으로 말할 내용들은 모두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 삽입된 영화들과 장면들에 결부되어 있지만, 기억은 바르다의 영화 어느 장면으로든 뻗어나갈 것이다. 반면 경청해야 하는 평자들의 견해를 인용하며 바르다 세계의 특질과 성취에 대해 열거하거나 연보를 작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라면 바르다가 영화에서 “영감, 창작, 공유”라는 주제로 자신의 작품들에 관한 훌륭한 해설을 내놓았고, 훌륭한 글들도 많이 나왔으니 비슷한 내용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다만 바르다의 영화와 내가 밀접하게 “공유”했다고 생각한 순간들에 대해 말할 것이며, 그것이 당신이 공유한 바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길 바란다.
맹목적인 사랑의 시초가 되었던 작품은 <다게레오타입>(1976)이다. 그중에서도 한 여인, 아니 그 여인을 바라보는 바르다의 시선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 삽입된 <다게레오타입> 장면 중 노부부가 나오는 부분을 기억할 것이다. 정육점 주인이 물건을 건네주길 조용히 기다리고, 그들의 상점 ‘샤르동 블루’에서조차 차분함을 잃지 않는 고요한 노부부. 바르다는 25년 동안 같은 물건을 진열해놓고 직접 제조한 향수며 화장품 등을 파는 샤르동 블루에 매혹되어 <다게레오타입>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게보다 “순하기 그지없는” 여주인 마르셀에게 정을 더 두었는데, 삽입된 장면에서도 남자 주인이 손님에게 단추 세알을 내어주는 동안 바르다의 카메라는 창가에 선 마르셀에게로 향한다. 그 순간에도 마르셀은 평소처럼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남편에게 기품 어린 미소를 보내지만 특유의 고요함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가라앉은 공기층에 홀로 쌓여 있는 것 같은 이 여인은 창가 주변에서 많은 시간을 서성이며 보낸다. 세상에 발 딛지 못한 사람의 공허함이 감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 속에 맹렬히 뛰어들어 살아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이 여인에게서는 묘한 우수가 배어난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그녀 주위를 감싸며 그녀와 함께 떨린다. 바르다는 그녀가 자아내는 분위기를 “잿빛 고요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녀의 카메라를 다게르 거리의 어느 주민보다도 이 잿빛 고요함이 감도는 마르셀에게 밀착시켰다. 하지만 마르셀을 특별히 가까운 거리에서 비추거나 그녀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친밀하게 다가서는 방식은 아니다.
바르다의 카메라는 마르셀을 그저 골똘히 바라본다. 그보다 더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그녀 주위의 공기를 모조리 흡수해 느껴보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기질을 수긍한 사람처럼 바르다는 마르셀에게 끌린다. 바라본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이끌린다는 게 더 어울리는 그런 시선이다. 그렇게 마르셀에게 이끌리는 바르다는 마침내 특별한 초상 하나를 그려낸다. 바르다가 소박한 동네 주민들의 전형적인 초상을 보여주고, 주민들의 노동 현장과 그들이 관람하는 마술쇼간의 유사한 이미지들을 교차편집해 한벌의 유희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가는 와중에도 마르셀만은 단독의 초상으로 남겨진다. 여기에는 마르셀의 전사를 통해 그녀의 잿빛 고요함을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겠다는 바르다의 결단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바르다는 마르셀의 감정적 활동을 감각하고 깊게 느껴보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바르다의 영화를 그녀의 인격체처럼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건 아녜스 바르다란 사람 자체를 강력한 영화적 질료로 받아들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끌리는 대상을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예민한 감각과 일단 가슴에 대상을 새기면 자신이 느낀 감정의 밀도를 그대로 끌어올려 화면 안으로 관류시키는 바르다의 용기와 충만한 사랑이 놀라웠다. “세상에 평범한 것은 없어. 내가 찍는 이와 공감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면”이라고 바르다가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바가 마르셀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발현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자가 바르다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허구의 인물이든, 현실의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이 카메라 앞의 대상들에게서 감각한 상태, 뉘앙스, 공기 혹은 감정. 그러니깐 물질적 세계에서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자신이 느끼는 대로 카메라에 흡수해 스크린 밖으로도 관류해낸 바르다이기 때문에 그 표현은 결코 상투적이지 않다.
‘호기심과 공감, 그리고 (때론 회의와 분노로도 표출되었던) 사랑’은 여러 대상들의 초상 속에 자신의 초상을 투영시켰던 바르다 영화의 심장이었다. 그것 없이는 바르다의 세계가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과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와 같은 초기작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시간과 공간, 개인과 사회의 관계 등 양자적 관계에 놓인 대상들에게 개념적으로 접근하며 더욱 엄격한 대칭구조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지만, 이같은 바르다의 물질적 세계에 대한 애정이 그 영화들에서도 몰아치기에 보는 순간마다 반하게 된다. 이를테면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 세트의 생동감 있는 어촌 마을의 풍경들과 연인의 갈등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이 위계없이 배열되어 갈 때, 파리 거리의 현장성과 클레오(코린 마르샹)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병치되어 갈 때, 세상과 결부된 바르다의 충만하고도 위계 없는 사랑 때문에 흔들린다.
운동들
이 위계 없는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앞선 두 작품보다 더 흥미로운 작품이 있다. 바르다가 “내향적인 LA의 일면”을 느낀다며 언급하는 <도퀴망퇴르>(1981)다. 사실 바르다의 영화 대부분이 이야기와 이미지들의 위계 없는 배열로 이루어져 있고,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는 그러한 특질을 위시하여 여성들의 초상을 더없이 활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도퀴망퇴르>의 숏 배열은 눈에 띄게 흥미롭다. 아니, 배열의 흥미로움이라기보다는 위계 없이 이어지는 이미지를 통해 전이되는 정서가 신기하다.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바르다가 직접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자전적인 요소가 가장 짙게 드러난 작품이다. LA에 거주할 당시 이방인으로서 느낀 바르다의 감정과 홀로 아이를 키운 경험과 아들 마티외 드미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쓸쓸하지만 강인한 힘을 내재하고서 다가오는 영화다.
그러니까 <도퀴망퇴르>는 충분히 내밀하고 탄탄한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르다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주인공 에밀리(사빈 마무)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픽션의 힘을 빌리지는 않는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친절히 알려주듯 아이에게 힘든 속내를 드러내는 엄마는 없을 것이므로, 바르다는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상을 사용해 에밀리의 심정을 말한다. 그런데 에밀리의 입장에서 말하기 위해 사용한 다큐멘터리 영상들의 면모가 재밌다. 그 영상들은 대부분 익명의 얼굴들이고 단일한 의미로 수렴되거나 단일한 감정을 지향하며 배열된 것이 아니다. 비슷한 형상과 행동의 유사성으로 이루어진, 그러니까 바르다의 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된 이미지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미지들이 일렬로 배열되었을 때 어느 때보다 전이되는 감정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화면에 스미는 쓸쓸함과 고독한 정서가 너무 강해서 마치 <방랑자>의 다른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르다는 현실의 인물들에게서 자신이 감각한 상태와 느낀 감정의 밀도를 그대로 화면에 투영하는 동시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익명의 사람과 사물들에게 투영시키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예컨대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도 삽입된 장면들을 보자면, 여자가 성경책을 올려놓은 채 해변에 누워 있는 장면과 “비범한 고독”이 느껴지는 여자가 보이는 빨래방 장면 사이에는 이런 장면들이 이어진다. 해변의 흙을 만지는 할머니-손을 굴리며 장난치는 아이-일을 끝내고 절뚝거리며 식당 뒤편으로 사라지는 점원-흠집이 난 마네킹의 다리-회상 속 남편과 성관계를 갖는 에밀리의 몸이 차례로 배열된다. 배열된 이미지들엔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거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는 장면들, 즉각적으로 고독함이 밀려오는 장면들이 섞여 있어 생경한 감각이 그대로 보전된다. 동시에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과 함께 하나의 리듬으로 흘러가며 고독함의 포화상태를 이룬다. 그러니까 바르다는 현실에서 채집한 이미지들 위로 섬세한 선율의 음악을 흘려보내며 촘촘한 이야기가 구현해낼 수 있는 정서보다 더욱 밀도 높은 고독의 정서를 조율해낸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바르다가 현실에서 채집한 이미지들이 안기는 고독함이 <방랑자>에서 보는 이의 몸까지 아프게 만들던 모나(상드린 보네르)의 해진 부츠에 새겨진 고독함과 다른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에서 바르다의 예민한 감각에 의해 즉각적으로 발견된 이미지와, 엄격한 형식 안에서 허구의 인물과 사물들이 육체로 버텨내며 구현한 이미지가 다른 위상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바르다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안에도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거창한 질문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영화 안에서 어떤 이미지와 감정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그 운동 안에 단단히 버티고 있어 프레임 안의 상들이 관객 개개인과 밀착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꼭 찾아야한다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호기심과 공감과 사랑으로 길어올린 영감은 위계 없이 배열되는 이미지들의 운동으로 구현되었고, 그 운동들 사이에서 나는 (어쩌면 당신도) 어떤 해방감마저 느꼈다.
작별을 고한 ‘생토뱅 쉬르메르’의 해변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우리는 바르다의 기억과도 함께 살게 된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에서 바르다가 조그만 카메라로 자신의 흰 머리카락과 주름진 손을 비출 때, JR이 바르다의 눈과 발을 찍을 때, 우리는 <낭트의 자코>(1991)의 자크 드미를 기억해내지 않을 수가 없고, 바르다가 자신에 관해 찍은 다큐멘터리에서 <창조물들>(1966)의 필름으로 지은 오두막과 <누아르무티에섬의 과부들>(2006)을 소개할 때, 그곳이 바르다와 그녀의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섬이었는지 모를 수가 없다. 다게르 거리의 집과 더불어 그녀의 터전이자 뿌리가 되었던 누아르무티에섬의 해변은, 바르다의 괴이한 영화 <창조물들>에서조차 내밀한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고요히 빛나고, 쓸쓸해 보여 애틋했다.
그리고 바르다가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 ‘생토뱅 쉬르메르’의 해변. 그곳은 그녀가 아끼던 이웃집 아이 율리시스와 오래전 세상을 떠난 친구 기 부르댕이 사진을 찍었던 해변이고, 바르다가 JR과 함께 기 부르댕의 사진을 벙커에 붙여 기억을 다시 새긴 곳이기도 하며, 우리에게는 바르다의 이미지를 통해 친숙해진 대상들에 관한 기억이 남은 곳이다. 그러니까 이 해변은 바르다의 기억과 우리의 기억이 여러 겹의 프레임을 통과하며 겹쳐지는 장소다. 이에 더해 바르다는 떠나면서까지 하나의 프레임을 포개며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덧대놓았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나왔던 장면을 다시 사용하되, 말하는 내용은 달리 하면서, 이 영화의 해변을 보면 저 영화의 해변을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서. <율리시스>(1982)에서 어른이 된 율리시스는 어린 시절에 찍었던 사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진짜 삶에서 ‘율리시스’ 사진은 그야말로 이미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와 공유한 기억으로서, 바르다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장소에 결부된 이미지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