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뉴 액션 트렌드①]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19-08-07
글 : 송경원
스크린이 멈추지 않는 한 액션은 계속된다
<존 윅>

개연성 설명할 시간에 총 한발 더 쏘고 간다. 2014년 <존 윅>이 첫선을 보였을 때 이 정도로 인기를 모을 거라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존 윅>은 세 번째 속편으로 돌아와 탄탄한 시리즈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 <매트릭스>에 이어 키아누 리브스에게 2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선사한 <존 윅>은 21세기에 접어들며 입지가 점차 좁아져가던 액션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영화다.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존 윅>은 규모가 작지만 익숙한 킬러 액션 정도로 인식됐다. ‘최강의 킬러가 주변을 작살내는 이야기’라는 간단명료한 설정으로 직진하는 흔하디흔한 팝콘무비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스턴트맨 출신인 공동감독, 데이비드 리치와 채드 스타헬스키가 자신들의 장기를 살려 오직 액션에 집중해서 만든 이 영화는 한동안 변방으로 밀려가던 액션영화의 위상을 다시금 할리우드 한 가운데로 불러오는 데 성공했다.

<매트릭스>

<존 윅>, 순도 100% 액션영화의 귀환

<존 윅>이라는 분기점 이후 데이비드 리치와 채드 스타헬스키는 할리우드 곳곳에 액션영화의 씨앗을 심고 있다. 데이비드 리치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조감독을 맡아 특유의 맨몸 격투를 블록버스터에 맞게 이식했고 <아토믹 블론드>(2017), <데드풀2>(2018)를 흥행시켰으며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메가폰을 잡았다. 채드 스타헬스키 역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존 윅: 리로드>(2017), <존 윅3: 파라벨룸>의 연출을 맡아 <존 윅> 시리즈를 명실상부 ‘액션 맛집’으로 키워냈다.

설정, 개연성 따윌 설명할 시간에 총 한발 더 쏘는 걸로 요약되는 <존 윅>의 목표는 단순명료하다. 사실적이라고 느낄 만한 액션 그 자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짜는 것이다. 대신 액션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최대한 비사실, 비현실적인 것으로 채워 관객에게 허락을 요구한다. 이것은 액션‘영화’이고 가상의 상황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비슷한 예로 맨몸 액션의 극단을 추구하며 보는 액션 그 자체를 관람하는 쾌감을 안긴 <본> 시리즈나 <테이큰> 시리즈는 21세기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제시한다. 액션에만 집중한 영화. 액션만큼은 확실하게 끝내주는 영화. 말하긴 쉽지만 그걸 실제로 구현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존 윅>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요인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액션을 먼저 정하고 스토리를 짠 전략, 다른 하나는 ‘존 윅’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에 세운 방식이다.

스토리와 액션의 관계는 생선 뼈와 살점의 관계와 닮았다. 우리가 즐기는 건 생선의 살점이지만 뼈대가 없으면 살점이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액션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탄탄한 전개와 개연성, 입체적인 캐릭터 등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막상 액션이 시작되면 이런 서사적인 요소들은 사실 방해물에 가깝다. 설명이 많을수록 잔가시가 많은 영화가 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가시를 뽑아내느라 서사의 속도를 늦추다보면 액션의 들뜬 열기가 식기도 하고 지나치게 설명이 많다는 불편을 겪기도 한다. 여기서 <존 윅>의 서사 전략이 빛을 발한다. 액션을 먼저 정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선후의 문제인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액션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액션이 먼저이고 이야기가 이를 받쳐주기 위해 뒤따라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개연성이란 장면들을 이어주는 접착제에 가까운 역할이다. 사실 이런 방식은 거의 대부분의 액션영화라면 비슷한데, 문제는 이럴 경우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신경을 쓰다보면 액션이 죽고, 액션에 집중하다보면 이야기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난제를 돌파하는 게 바로 캐릭터다.

액션영화의 심장은 캐릭터에 있다. ‘저 캐릭터라면 저럴 수 있어’라고 하는 납득과 동의가 이뤄지면 그다음부터는 영화가 제시하는 게임의 룰을 납득하고 따라가기 마련이다. 80, 90년대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를 대표하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나 <리쎌 웨폰> 시리즈의 릭스 형사(멜 깁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캐릭터는 공고해지고 액션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존 윅은 이 점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영화다. 아니, 원점으로 되돌아간 영화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존 윅’을 설명하는 방식은 대체로 사람들의 리액션이다. “존 윅이 누군지 모른단 말이야?” 존 윅을 이미 아는 사람들의 리액션을 통해 관객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암살자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설명은 거기까지고 이후 영화는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아니 만화보다 만화 같은 액션들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시그니처 액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 변주될수록 캐릭터는 더욱 선명해져간다. 액션영화가 시리즈를 통해 하나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다이하드>

90년대 아날로그 액션으로의 회귀, 그리고 진화

<존 윅>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예전에 잊고 지냈던 액션영화의 매력과 본질로 되돌아간, 클래식한 영화에 가깝다. <존 윅>이 되돌아간 뿌리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핵심이었던 액션영화의 영광이다. 스턴트맨 출신인 두 감독의 취향이라고 봐도 좋겠다. 과거 액션영화들에서 고전적인 요소와 핵심을 차용해오되 스타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존 윅>의 시리즈화는 시대에 따라 돌고 도는 유행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매트릭스>를 통해 아날로그 액션의 종막을 고했던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으로 다시 액션영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결국 액션영화의 핵심은 캐릭터, 다시 말해 액션배우들을 통해 성립된다는 걸 또 한번 증명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이하드> 시리즈, <리쎌 웨폰> 시리즈 등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80년대 말, 90년 초를 지나 아날로그 액션에 기반한 영화들은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으로 CG의 비약적인 발전을 들 수 있다. 주로 형사물에 뿌리를 두고 있는 90년대 액션영화들은 폭발과 스턴트 액션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완전히 새로운 혁신을 끌고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매트릭스>였다. 원화평 감독의 무술지도를 바탕으로 이전까지는 그저 신비의 대상이었던 동양무술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액션의 중심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 <매트릭스>를 기점으로 폭발과 스턴트 액션이 차지했던 볼거리는 CG를 활용한 비현실적인 액션으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액션 블록버스터의 해가 지고 SF, 코믹스 기반의 블록버스터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블록버스터’라는 규모를 중심에 놓고 보면 액션영화는 서서히 비주류 장르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영화들도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작지만 아이디어와 컨셉으로 승부하는 영화쪽으로 쏠려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액션’에 방점을 찍고 보면 액션영화는 늘 일정 이상의 지분을 유지하며 할리우드의 주요 장르 중 하나로 인식되어왔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액션배우들이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무술액션배우의 대표주자인 척 노리스,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의 자리는 웨슬리 스나입스를 거쳐 제이슨 스타뎀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병뚜껑 챌린지로 존재감을 증명한 제이슨 스타뎀은 현재 무술배우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할리우드 스타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무술영화는 흔히 B급영화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CG가 블록버스터의 메인이 된 시점에 역설적으로 메인 스트림으로 들어올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필리핀 무술 칼리와 절권도를 기반으로 했던 <본> 시리즈의 액션, 이스라엘 특수무술 크라브 마가를 활용한 <테이큰> 시리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하나 맨몸으로 들이박으며 육체미를 자랑하는 배우에도 나름의 계보가 있는데 브루스 윌리스, 멜 깁슨,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이어받아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배우 드웨인 존슨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슨 스타뎀과 드웨인 존슨 콤비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신작 <분노의 질주: 홉스&쇼>는 80, 9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전통을 계승한 적자라고 할 수 있다.

<리쎌 웨폰>

액션은 장르가 아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왜 다시 아날로그 액션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선 CG로 대표되는 디지털 액션에 대한 피로감을 한 가지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이건 귀환이라기보다는 진화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할리우드를 기준으로 액션영화는 비록 메인 스트림에서는 다소 밀려났지만 늘 있어왔고 그저 시대에 따라 스타일에 맞는 옷을 갈아입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액션은 스릴러나 서스펜스와 마찬가지로 장르가 아니라 일종의 효과다”라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말처럼 액션영화는 엄밀히 말해 정형화된 형식을 갖춘 장르가 아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액션이 들어가지 않는 영화는 있을 수 없는 만큼 범주를 넓히면 액션영화가 아닌 것이 없다. 이를테면 액션은 지정된 틀이 아니라 방향에 가깝다. 호러영화가 공포를, 스릴러영화가 긴장을 지향하는 것처럼 액션영화는 동작과 볼거리에 의한 쾌감을 목표로 한다. 거기에 어떤 스타일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무한정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블랙시네마와 결합하면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이 되고, 80년대 형사물과 결합하여 블록버스터영화로 인식되었다. 그 와중에 꾸준히 일관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술, 그러니까 육체를 기반으로 한 액션이다. 우리가 의미를 좁혀 ‘액션영화’라고 인식하는 영화들은 첫째 액션이 중심이자 목표인 영화, 둘째 그걸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는 영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가 굳이 스핀오프여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비드 리치 감독, 제이슨 스타뎀, 드웨인 존슨 주연이란 라인업이 갖춰진 시점에서 이 영화는 전통 액션영화의 귀환이라 불러 마땅하다. 형사물과 버디무비를 서사의 뼈대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쌓아온 홉스와 쇼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면 남는 자리는 전부 액션의 몫이다. 어떤 액션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집중하는 순수 액션영화. 쉴 틈 없는 액션의 물량공세야말로 액션영화의 본질이다. 여기서 핵심은 스토리가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지가 아니다. 어떤 액션을 어떤 호흡과 순서로, 지루함 없이 제공할 수 있을지에 혼신의 힘을 쏟을 따름이다. <분노의 질주: 홉스&쇼>는 현재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더없이 좋은 사례다. 시대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장르와 결합을 거듭해온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매트릭스> 이후 받아들인 것은 동양무술의 신비와 쾌감이었다. 이후 CG와 디지털에 밀려 한동안 작은 프로젝트에 머물던 것이 역설적으로 CG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다시 기회를 얻었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로 단순히 되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유하자면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는 아이다. 차용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차용해 언제든지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날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동양무술에 대한 동경과 아날로그 액션에 대한 갈증에 대한 화답이다. 다만 그 핵심에는 어디까지나 스타, 그리고 캐릭터가 자리한다.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 스타시스템을 고스란히 구현한 장르가 바로 액션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 액션에 의한 영화(액션‘영화’)를 선보일 때가 있고 액션을 위한 영화(‘액션’영화)가 되기도 한다. 유행이 돌고 돌아 바야흐로 다시금 ‘액션을 위한’ 영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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