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전류’ 전쟁을 ‘현재’의 이야기로 풀어낸 <커런트 워>
2019-08-22
글 : 김성훈
자존심과 겸손함, 격돌하다

개봉까지 산 넘어 산이다. 8월 22일 CGV 단독 개봉하는 <커런트 워>는 전작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로 2015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신작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섀넌, 니콜라스 홀트, 톰 홀랜드가 캐스팅되면서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가위손’으로 악명 높은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편집한 버전이 2년 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가 혹평을 받았고, 이후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가 드러나면서 영화의 개봉은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 배우, 스탭들은 수차례 시간을 내서 재촬영과 재편집을 해 가까스로 완성했다. <씨네21>은 1880년대 미국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하우스간의 치열했던 전류 전쟁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살펴보았다. 영화를 연출한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 서면으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고, 현재 런던에서 에드거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찍고 있는 정정훈 촬영감독과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기술이 자연을 넘어섰다. 미국의 도시가 동에서 서로 뻗어나갔듯이 건물들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공장은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노동자들이 집과 공장(이나 시장)을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와 철도가 깔렸다. 경제와 과학이 덩달아 눈부셨던 19세기 미국은 ‘도금시대’(Gilded Age)라 불릴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급변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전작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로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이 연출한 신작 <커런트 워>는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인 1880년대 미국 한복판에 뛰어든 영화이다.

“세상은 등불을 사용했고, 기계는 손이나 발 그리고 증기로 움직였다. 웨스팅하우스는 철도 에어브레이크(파이프를 통해 모든 객차에 압축공기를 보내 한번에 제동할 수 있는 레이크 시스템.-편집자)를 발명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조명과 공업의 미래가 될 거라고 예상해 천연가스에 큰돈을 투자했다. 재력이 부족했던 에디슨은 차세대 에너지인 전기 연구에 몰두했다. 이들은 현대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경쟁의 출발선에 섰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뜨는 자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커런트 워>는 현대로 진입하는 출발선에 선 토머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섀넌), 두 남자의 불꽃 튀는 ‘전류 전쟁’을 펼쳐낸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이면

미국 뉴저지 멘로파크, 기차가 도착하자 한 무리의 부자들이 우르르 내린다. 등불 하나를 따라가다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수십개의 전구가 하나둘씩 켜지면서 어두컴컴한 밤이 환하게 빛난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에디슨은 마치 신인 양 “백지수표를 가지고 오셨죠?”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가 천연가스보다 훨씬 싸고, 몇 개월 안에 밤을 없앨 거”라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에디슨에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연락한다. 자신의 개인 비서인 사무엘 인설(톰 홀랜드)과 함께 백악관에 간 에디슨은 대통령에게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보여주며, 동석한 사업가 모건에게 “전류 발명에 50만달러를 투자해달라. 신문에 광고하지 않아도 떼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날 밤 에디슨을 태운 기차는 에디슨의 지시로 저녁 식사가 예정된 웨스팅하우스의 집 부근 역을 정차하지 않는다. 역에서 에디슨을 기다리던 웨스팅하우스는 자신을 지나치고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에디슨과의 저녁 약속을 퇴짜 맞은 웨스팅하우스는 교류전기(전기가 교차로 흘러 변압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 전류 사업에 뛰어든다.

에디슨의 직원이자 훗날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아 전류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테슬라(니콜라스 홀트)는 에디슨에게 “교류전기 방식이 전압도 높고, 먼 곳까지 전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전선도 덜 들어 효율적”이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에디슨은 자신이 고안한 직류전기(전기가 직선으로 흐르는 방식) 방식을 고집하는 동시에 웨스팅하우스의 교류전기 방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증명하기 위해 도살장에 끌려가기 직전의 소를 끌고와 전기충격 실험을 하고, 그것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 웨스팅하우스를 흠집낸다.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 <커런트 워>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의 만나지 않는 둘을 번갈아 보여주며 전개된다. 영화 속 두 인물은 그간 우리가 잘 몰랐던, 의외의 모습이 많아 흥미진진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에디슨은 우리가 교과서로 배운 미국 근현대사의 ‘발명왕 에디슨’의 이면을 풍성하게 펼쳐내 보인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을” 만큼 발명에 열정적이고, 발명한 모든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을 만큼 명예에 대한 욕심이 많은 데다가, 자신의 발명에 대한 보상으로 적합한 투자를 요구하고 받아올 만큼 돈과 협상에 밝으며, 역사의 단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만큼 승부욕이 강하고 집요하다(심지어 언론에 알리거나 고소를 통해 상대를 흠집내는 면모는 야비하기까지 하다). 오로지 발명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인간이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뒷전인데, 그러한 모습은 이후 에디슨이 추락하는 계기이자 인간적인 결함이라 할 만하다.

에어브레이크, 상업용 원자로 등 이룬 업적에 비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웨스팅하우스는 겸손하고 끈기 있는 사업가로 묘사된다. 경쟁자보다 빨리 선점하고, 대량생산해야 하는 고도성장 시대에서 그는 주5일제 근무제를 도입하고, 함께 기술을 개발한 파트너를 꼼꼼하게 챙긴다. 에디슨의 직류전기에 비해 전압이 높아 위험하지만, 거리가 먼 곳까지 일정한 전압을 유지할 수 있고, 직류전기에 비해 비용이 60% 이상 저렴한 교류전기 사업을 밀어붙이는 사업 감각도 갖췄다. 마이클 섀넌은 이 겸손한 사업가를 뚝심 있게 그려내는데, 그건 에디슨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역사가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에디슨이 직류전기를, 균형 있는 사업 감각을 갖춘 웨스팅하우스가 교류전기를 선택한 건 자존심이 강하고(에디슨), 겸손한(웨스팅하우스) 둘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아 상징적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current)의 이야기

줄거리나 인물 묘사만 보면 이 영화는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 두 라이벌의 경쟁을 팽팽하게 그려내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겠다. 액션(행동)보다 대화 신이 많고, 앞에서 짧게 언급한 대로 두 남자가 마주치는 시퀀스가 두세 장면에 불과한데도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이클 섀넌의 노련한 연기 덕분에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생생한 대결기’라고 해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에서 길게 할애하지 않지만 니콜라스 홀트가 맡은 테슬라(그 전기 자동차 이름이 니콜라 테슬라에서 따왔다)가 에디슨에게 교류전기 방식을 제안했다가 퇴짜 맞고,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는 일화 또한 흥미롭다. 또, ‘스파이더 맨’ 톰 홀랜드는 에디슨의 개인 비서인 사무엘 인설을 연기하는데, 에디슨과 사무엘 인설이 작은 일까지 세세하게 상의하는 모습이 부자(父子) 같다. 이처럼 이 영화는 배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섀넌, 니콜라스 홀트, 톰 홀랜드 네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그럼에도 <커런트 워>는 누가 선인지 악인지, 옳은지 그른지 따지거나 가려내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전작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에서, 주인공 그렉과 얼이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친구(올리비아 쿡)와 우정을 쌓는 과정을 때로는 유쾌하게, 또 때로는 애잔하게 그려내 인물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그려냈듯이,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은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가정에서, 사업에서 약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발명에 매달리는 바람에 가정에 소홀하던 에디슨은 소중한 가족이 떠나자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축음기를 틀며 무척 상심해한다. 뒤늦게 후회해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자신의 균형을 잡아주던 존재의 상실감은 크나크다. 웨스팅하우스 또한 교류전기는 위험하다는 에디슨의 언론 공세, 고소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오랜 파트너가 교류전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자 휘청거린다. 파트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심, 그것으로 인해 흔들리는 사업에 대한 걱정, 고난을 돌파해야 하는 고민 등 온갖 감정이 마이크 섀넌의 주름에 깊숙이 박힌다. 의도한 경쟁이든 아니든, 상대를 라이벌로 생각했든 안했든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인간적인 결함과 상처 그리고 고뇌가 드러나는데 그게 이 영화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자존심(에디슨)과 겸손함(웨스팅하우스)의 치열한 싸움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무슨 뜻인가, 역사에 기록된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존심과 겸손함 가운데 어느 쪽인가. 그것이 <커런트 워>가 단순한 과거의 전류(current) 전쟁 이야기가 아닌 현대(current) 이야기에 해당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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