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커런트 워> 정정훈 촬영감독, "배우들이 프레임을 의식하지 않기 바랐다"
2019-08-22
글 : 김성훈

충무로에서 정정훈은 배우들에게 멍석을 잘 깔아주는 촬영감독으로 유명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섀넌, 톰 홀랜드, 니콜라스 홀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이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번 영화는 그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현재 런던에서 에드거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찍고 있는 정정훈 촬영감독과 전화를 통해 <커런트 워>의 촬영에 관한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다.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의 작업은 전작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2015), 파일럿 TV시리즈 <시티즌>(2016) 첫 번째 에피소드 이후 세 번째인데.

=그도 나도 할리우드에서 감독, 촬영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많이 쌓였다. 그와 다시는 안 볼 거라고 말할 만큼 치열하게 작업해왔다. (웃음) 특히 선댄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를 찍을 때 알폰소가 나를 많이 믿어주었고, 그 덕분에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커런트 워>를 결정하는 데 큰 고민을 하지 않았겠다.

=전작 <그것>(2017)이 끝날 때쯤 그에게서 연락이 와 차기작으로 에디슨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 촬영이 끝난 뒤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누가 연기할 건지 모른 채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아내 말고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나서 논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커런트 워>를 준비하러 런던으로 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재미있었다. 특히 눈보라가 세차게 치는 가운데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가 에디슨과 마주 보는 장면이 강렬했다. 코끼리는 전기충격 때문에 죽는데, 그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영화에 포함되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보니 우리가 알던 ‘발명왕 에디슨’과 달랐다.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업가이자 미학가로서의 모습이 신선했다. 에디슨뿐만 아니라 에디슨이 웨스팅하우스와 벌인 전류 전쟁, 급변하는 19세기의 풍경까지 세세하게 그려내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촬영 전 알폰소 고메즈 레존 감독과 촬영 관련해 어떤 논의를 나눴나.

=런던에 도착해 그의 작업실에 가보니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활동한 시대의 이미지들이 벽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에디슨이 발명한 활동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폰소가 이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자고 했다.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보통 시대물은 촬영이나 조명이 비슷비슷하지 않나. 드라마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굳이 그때 그 시대를 그대로 드러내는 룩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19세기 미국을 기준으로 ‘현재’의 이야기니까 과거를 크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광각렌즈를 많이 활용하고, 패닝을 많이 시도하는 등 현재 이야기처럼 찍으려고 한 것도 그래서다.

-당시를 재현하기 위해 얀 롤프스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긴밀한 논의와 호흡이 필요했을 것 같다.

=세트 촬영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영국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다. 얀 롤프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당시 시대 고증을 철저하게 했다. 기차 신은 실제 기차를 대여해 런던 외곽에 위치한 리브즈든 스튜디오에서 리모델링해 찍었다. 버펄로 법정 신은 런던 프리메이슨 박물관에서 찍었고, 시카고 만국박람회 시퀀스는 런던의 알렉산드라 궁전의 외부와 브라이큰 파빌리온의 내부에서 촬영해 시각특수효과(VFX)를 합성했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해서 조명을 많이 세팅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빛을 설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선택한 카메라와 주로 사용한 렌즈는 무엇인가.

=나도 그렇지만 알폰소는 항상 필름으로 찍고 싶어 한다. 필름으로 찍는 것도 좋지만 최신 기술로 이야기를 담는 것 또한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그를 설득했다. 알폰소는 “와일드한 광각렌즈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오래된 복고 렌즈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문했다. 카메라는 알렉사 XT 플러스로 찍되, 테스트를 여러 차례 거친 결과 렌즈는 파나비전 G시리즈를 사용하기로 했다. G 시리즈가 콘트라스트가 있고, 룩이 샤프하며, 피사체와의 초점거리가 짧아 배우 근접촬영이 용이했다. 또 핸드헬드 숏이 많은데 카메라 무게가 가벼워 적합했다. 사실 마음에 드는 렌즈가 더 있었지만 조명을 많이 쓸 수 없어 최종적으로 G 시리즈를 골랐다.

-영화를 보니 어두운 부분도 세심하게 잘 표현됐던데 빛을 어떻게 설계했나.

=조명을 최대한 단순하게 쓰자고 생각했는데 빛 양이 부족한 옛날 영화처럼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싶진 않았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두운 장면이지만 그것을 잘 살리기 위해 조명팀이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어두운 영화를 많이 찍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웃음)

-영화에는 인물들간의 대화 신이 많다. 관객을 집중시키는 게 관건이었을 것같다.

=대화가 끊기지 않고 흐르게 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 와이드한 앵글을 지양하고, 어떤 장면에선 알폰소가 좋아하는 광각렌즈도 투입했다. TV시리즈처럼 숏과 리버스숏만 배치되어 있으면 얼마나 지루한가. 이야기 특성상 부감숏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드라마에 방해가 되는 않는 선에서 카메라를 많이 움직였다.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를 각각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이클 섀넌과의 작업은 어땠나.

=에디슨은 그의 비즈니스적인 면모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인물은 아니다. 그의 고민, 고뇌, 상처 등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실은 에디슨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호의가 잘못 전달된 거다. 쉽게 비유하면 에디슨은 감독 같은 존재고, 웨스팅하우스는 발명가들을 지원하는 제작자 같은 존재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무척 재미있었다. 경험 많고 실력 있는 그들이 프레임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여지를 많이 주었다. 그렇게 하라고 카메라 무브먼트가 있는 거니까.

-현재 촬영하고 있는 에드거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는 얼마나 진행됐나.

=80% 정도 촬영했다. 런던에서만 찍고 있다. 이 영화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에드거 라이트가 이제까지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은 <매트릭스> 시리즈, <스파이더맨2>(2004), <정글북>(2016) 등을 찍은 빌 포프인데 이번 영화로 나와 새로 작업을 하게 됐다. 걱정이 많이 되지만 영화는 잘 나오고 있다. 아름답고 이상한 실험을 많이 하는 희한한 공포영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필름과 디지털을 섞어 찍고 있다. 필름이 70%, 디지털이 30% 정도 된다.

-필름 작업이 얼마 만인가. 오랜만에 필름으로 찍어보니 어떤가.

=한국에선 <부당거래>(2010)가, 할리우드에선 <스토커>(2013)가 마지막 필름 작업이었다. 이상하게도 현재 유럽, 특히 영국은 필름 작업이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현상소도 다시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필름으로 찍을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다.

-개봉을 앞둔 <좀비랜드: 더블 탭>(감독 루빈 플라이셔)도 촬영했는데.

=전편이 좀비물을 가장한 가족영화였는데 전편에 대한 팬심으로 참여했다. 배우도 스탭도 웃고 떠드느라 제대로 못 찍을 만큼 현장이 즐거웠다.

-차기작은 뭔가.

=현재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몇편을 고려하고 있다. 지금 찍고 있는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가 규모가 큰 작업이라 그런지 다음 작품은 작은 영화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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