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간에 벌어졌던 ‘전류 전쟁’의 어떤 면에 매료됐나.
=특별히 ‘교류’(웨스팅하우스)와 ‘직류’(에디슨)의 경쟁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다. 에디슨을 고등학교 수업 때 배운 정도만큼 알았다. 웨스팅하우스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붙은 브랜드가 더욱 친숙했다. 관심이 있었던 건 그보다는 이 이야기가 던지는 주제였다. 사람과 기술의 관계는 무엇인가. 기술이 잘못된 이들의 손에 들어가 비도덕적으로 쓰이면 그건 누구 책임인가. <커런트 워>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면 무엇이 위대함과 명성의 생명력을 결정하는가. 그건 자존심(에디슨)과 겸손함(웨스팅하우스)의 전쟁이었다. 누가 역사에서 기억되는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 질문은 전작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2015)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 영화의 결말에서 그렉(토머스 만)은 레이첼(올리비아 쿡)이 죽은 뒤 그녀가 속을 파낸 책을 발견한다. 그녀가 남긴 것 덕분에 그녀의 이야기는 죽은 뒤에도 이어진다. 그건 기억과 유산에 관한 아이디어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는 한 사람은 생명력을 계속 이어간다. 그 영화는 내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해 만든 작품이지만 <커런트 워>는 그런 주제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감독으로서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으니,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커런트 워>의 소재가 되는 실화의 어떤 점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프리 프로덕션에서 많은 조사를 하고, 마이클 미트닉이 작업한 각본을 검토한 결과, 이 영화의 뼈대 역할을 한 것은 에디슨이 아내와 사별한 뒤 도덕적 기준을 어떻게 잃었냐는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어렵지만, 아내가 죽은 뒤 그는 중심을 잡을 동기를 잃었고, 그의 자존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에디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계속 도둑맞았고, 웨스팅하우스와 일을 해 세상을 바꿀 기회가 많았음에도 그는 역사에 기억될 단 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웨스팅하우스를 완전히 잊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교류 시스템이 그가 만든 것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긴다는 건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이들의 경쟁을 묘사할 때 가장 신경 쓴 건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던 그 시절의 에너지를 반영할 수 있는 영화를 그려내고 싶었다. 지속적인 생동감을 담아내길 원했다. 이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현대적인 영화다.
-에디슨은 발명밖에 모르고 승부욕이 강한 괴짜 같던데, 그를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그를 만화에 등장하는 1차원적인 악당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신처럼 행세할 수 있고, 자연을 통제하며, 소리와 빛 그리고 기억(영화)을 붙잡은 천재였다. 하지만 에디슨을 해석한 바로는 자연은 항상 그를 이기고, 그는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에 충분한 일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아내의 목소리를 상자(활동사진)에 담아 영화를 만들어 신에게 반항한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계속 도둑질당하는 것에 대해 편집증을 가진 인물이다. 말년에 가서야 자신의 발명품으로 ‘진짜’ 돈을 만진 완벽주의자이다. 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진짜였고, 그것은 동시에 그의 비극적인 단점이 되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어떤 면모가 에디슨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때 베네딕트는 이미 캐스팅되어 있었다. 베네딕트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에 나는 사마귀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아끼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인간미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우리 둘 다 에디슨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에디슨의 대척점에 있는 웨스팅하우스는 어떤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나.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을 존경하고 그와 동업하길 원한다. 마이클 섀넌과 나는 웨스팅하우스의 직원이 20세기 초에 조지 웨스팅하우스에 대해 쓴 책을 읽었다. 그것은 직원들로부터 ‘성 조지’라는 별명을 얻은 자신의 보스에 대한 러브레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비현실적이고, 신에게는 죄송하지만 지루할 것이니 말이다. 웨스팅하우스에게는 선한 면모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가 웨스팅하우스 에어 브레이크 회사 이름으로 만든 발명품을 직원들과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에디슨보다 더 많은 특허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겸손함 그리고 자신이 죽은 지 한달 뒤에 사망한 평생의 사랑 마거릿에 대한 헌신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당신은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 중에서 누구에 더 가깝나. (웃음)
=사람들 모두가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 대 겸손함. 그 두 가지가 치고받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그 둘 사이의 갈등을 자주 겪는다. 나의 궁극적인 영웅인 아버지처럼 도덕적이고 자상하고 이타적인 남자인 웨스팅하우스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섀넌, 니콜라스 홀트, 톰 홀랜드 등 좋은 배우들과 작업한 건 어땠나.
=우리 세대 최고의 배우인 이들과 작업하는 것은 영광이었다. 나의 상상력을 연장해주는 존재인 배우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작업방식은 미스터리하며, 나는 그들이 작업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을 1열에서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정정훈 촬영감독과의 작업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정훈은 내 형제나 다름없다. 매 작품을 그와 함께하고 싶고, 내가 죽을 때가 되면 그와 함께 작업하는 촬영장에서 눈감고 싶다. 그는 훌륭한 예술가이며 인간적으로는 더 훌륭하다. 스스로에게 믿음이 가지 않을 때 가장 깊은 속내를 그에게 드러낸다. 우리는 그저 최고의 업적을 이뤄내고 싶어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항상 같은 창작의 주파수를 공유한다. 그는 내 안으로부터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며, 나를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다. 또한 그는 내가 만난 이들 중 가장 웃긴 사람이다. 나는 그가 매신의 조명을 설계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 속 장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영화의 오프닝에서 에디슨이 전구밭에서 등장하는 장면을 꼽고 싶다. 촬영현장에서의 그가 가장 좋은 순간은 배우들 리허설이 끝난 뒤에 정훈이 렌즈를 고르고 구도를 설정하는 때이다. 그토록 간단한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갖 난장판 속에서 고요하게 우리 자신이 되는 느낌이다.
-지난 2년 동안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과정들은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나.
=예술가이자 인간으로서 시험대에 오르는 경험이었다. 마치 내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한동안 어두운 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곧 내가, 또는 슬프게도 남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더 질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좌절감을 느끼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우마 서먼이 출연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챔버스>의 파일럿을, 곧 공개될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은 아마존 작품 <더 헌트>의 장편영화 분량의 파일럿을 연출했다. 다음 작품은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내년에는 새 작품으로 촬영장에 돌아올 수 있으면 한다. 이왕이면 정훈과 함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