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긴 세월을 함께한 남양주종합촬영소 소품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서울영화장식센터는 지난 6월에 이미 법적인 임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상태임에도 40만점이 훌쩍 넘는 소품들의 이전처를 찾지 못해 남양주종합촬영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영진위는 서울영화장식센터에 명도소송을 건 상태로 10월 16일까지 반드시 퇴거 조치를 취해야한다. 오래된 물건이 많아 포장이 중요한 데다 소품 창고 내 물건들을 모두 옮기는 데 드는 비용만 1억~1억 8천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서울영화장식센터는 5t 트럭 기준으로 약 200~300대가 필요해 이사에만 최소 한달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품 수용이 가능한 지자체나 개인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대체로 묵묵부답이거나 현장 답사를 왔다가 방대한 양을 보고 포기하는 상황이다. 김호길 대표와 함께 일하는 최영규 실장은 “황학동 골동품 경매 등을 통해 개인 매매를 하고, 나머지 물품은 전부 폐기 처리해야 할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영진위가 소품실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에 장광수 남양주종합촬영소 소장은 “심정적으로는 공감한다. 하지만 애초에 영진위가 개인 업체에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 계약을 맺은 것이라 업체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화적 공공재로 볼 수도 있겠지만 국가 재산이 아니라 서울영화장식센터의 재산이다. 10월 이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입장을 전했다.
"만약 폐기 처리하게 되면 그날 나는 출근을 못할 것 같다. 마음이 아파서 못 본다." 김호길 대표는 “이곳만 한 공간을 다시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큰 부지 면적과 높은 층고 덕분이고 기온도 서늘해서 보관에 적격이었다”고 말한다. 1963년 소품계에 입문해 남양주종합촬영소의 개관 멤버로 소품실을 지킨 김호길 대표가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 수는 200여편이 넘는다. 그는 연방영화사, 합동영화사, 태흥영화사 등과 협력하며 1960~90년대 활발히 활동했다. 영상지원관 소품실 입구에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2004)의 극장 앞에 걸렸던 그림 포스터를 세워둘 정도로 임권택 감독에 대한 애정이 깊다. “임권택 영화의 소품을 하고 나면 이후 몸값이 올랐다. 임 감독이 워낙 고증이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어 한번 하고 나면 제작사에서도 알아주더라.” 그는 옛날 현장에서 ‘소품!’이라는 외침에 달려가야 했던 시절을 기억하기도 했다.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요구에 어느새 사람들이 ‘김 선생’이라 칭했던 기억은 각별하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소품실에서 김호길 대표에게 배운 장석훈 대표가 태릉소품실을 차려 한국영화 소품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김호길 대표와 장광수 소장의 공통된 의견은 남양주 소품실에 보관된 소품을 “보존해야 할 유산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박물관, 기념관 등에 주요 소품이 보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남양주 소품창고의 소품에는 세월이 배어 있다. 돈 주고 구할 수 없는 영화의 좋은 밑천이 될 것이다. 부디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배창호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에 쓰인 은표주박, 이두용 감독의 <뽕>(1986)에서 사랑의 정표로 등장했던 은반지,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1995)에 쓰인 담배 파이프 등김호길 대표가 아끼는 물품들. 이처럼 최소 30년 이상된 영화 소품들이 이곳에 다수 보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