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퍼펙트맨> 설경구 - 퍼펙트 액터
2019-09-24
글 : 송경원

“종교 같은 신앙심이 들었다.” <퍼펙트맨>의 용수 감독이 설경구 배우를 두고 한 말이다. 너스레 섞인 칭찬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의 말이 과장 없는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경구는 <퍼펙트맨>에서 전신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까칠한 변호사 장수 역을 맡았다. 게다가 <퍼펙트맨>은 첫인상과 달리 두 남자가 이인삼각으로 뛰는 버디무비라기보다 영기 역의 조진웅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며 이끌어가는 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분량과 상관없이 영화에 안정감을 주고 무게를 더하는 건 대부분 설경구의 공이다. 조진웅과의 기가 막힌 호흡은 물론 사소한 장면 하나에도 진심을 더하는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퍼펙트맨>은 오랜만에 돌아온 휴먼 코미디다. <살인자의 기억법> <우상> <생일> 등 한동안 묵직한 드라마를 이어나가다 다소 가벼운 작품을 골랐다.

=전작들보다 가볍긴 하지만 선택할 땐 코미디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영화는 드라마로 출발했다가 누아르로 가기도 하는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는 건 양쪽을 부지런히 오가며 활약한 조진웅 배우의 힘이다. 부산 사투리에서 오는 재미와 맛이 살아 있다. 처음 시나리오가 왔을 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고사했다. 시간이 지난 뒤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했다. 조진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전신마비라는 설정 때문에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제약이 많았을 텐데.

=장수라는 캐릭터는 쓸 수 있는 한계가 뚜렷하다. 주변에서 좌식연기와 동공연기라고 말해주시더라. 본래 연기는 얼굴이 아니라 온몸으로 한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20, 30%만 가지고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초반엔 확실히 버거웠다. 그러다 영기 역을 맡은 조진웅과 맞닥뜨리면서 뒤로 갈수록 편해졌다. 극중 장수가 자신을 편하게 대하는 영기의 태도 덕분에 스스로도 몸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춤추듯 연기하는 조진웅의 유연한 에너지에 빠져들었다.

-2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로펌 대표 장수 역을 맡았다. 승률 100%의 능력 있는 변호사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는 외로운 인물이다.

=이 영화는 영기에 대한 영화이고 장수는 영기에 대한 리액션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캐릭터다. 내가 리액션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건 <우상> 때였다. 가해자 부모의 말을 계속 들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에 대한 고뇌가 있었다. 그때보다 겉으로 봤을 때 훨씬 외향적이고 반응도 직접적이라 나도 즐기면서 작업했다. 장수는 갇혀 있는 인물이다. 몸이 불편하기 전부터 자신이 만든 틀과 주변의 기대 등에 갇혀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인물이 장수를 만나 변화를 겪고 용서하는 법을 알게 되며 퍼펙트한 죽음, 아니 삶을 향해 나아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노래 가사처럼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걸 받아들이고 오늘에 매진하는 게 퍼펙트한 삶이 아닐까 싶다.

-원래는 목도 돌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는데 약간의 수정을 거쳐 목 정도는 움직일 수 있게 바뀌었다고 들었다.

=목도 움직이지 못하면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감독을 설득했다. (웃음) 예전에는 리얼함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연기는 만들어내면 안 된다는 믿음이랄까. 시나리오상에 ‘앙상하게 말라가는 장수의 모습’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살을 빼고 앙상한 모습을 육체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걸 다 빼달라고 했다. 건강하게 죽고 싶었다. (웃음) 힘들어하는 것보다 꼿꼿하고 의연하고 멋있게 가는 게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게 아닐까 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 이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는 영화고, 때론 만화 같아도 좋겠다는 생각. 영화에 따라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변형, 한마디로 폼을 잡는 게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변성현 감독의 차기작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도 함께했다.

=변성현 감독은 자기 것이 정확히 있는 사람이다. 그 스타일을 좋아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때 함께한 스탭들이 대부분 다시 참여해 좋은 작업을 했다. 지금은 신안 일대의 섬을 돌며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촬영 중이다. 정약전 선생이 쓴 <자산어보>에 얽힌 이야기인데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사극과 달리 속에서 진하게 올라오는 눈물한 방울이 있는 영화다. 이런 표현은 나도 처음 써보는 건데,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만큼 아름다운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찍고 있다.

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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