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 한 덩치가 믿을 만한 구석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는 모습이 시원시원하면서도 아슬아슬하다. <퍼펙트맨>에서 조진웅이 연기한 영기는 철없어 보이기도 하고, 단순무식해 보이기도 하는 건달이다. 앞뒤 재지 않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그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장수(설경구)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언론배급시사가 열렸던 지난 9월 16일, 영화 상영이 끝나자마자 만난 조진웅은 “내가 가진 에너지와 (설)경구 형이 가진 에너지가 조화를 이뤄 되게 감동적이었다”고 영화를 처음 본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어땠나.
=우리가 만들 때 예상한 지점으로 무사히 간 것 같아 다행이다. 영화에서 온갖 체념이 뒤섞인 장수의 표정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니 ‘어!’ 할 만큼 좋았다.
-용수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야기가 어땠나.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감독님을 직접 만나보니 거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말 속에 진솔함이 있었다. 그에게서 들은 영기와 장수, 두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상대역인 장수 역할을 누구에게 제안했을까 궁금해한 것도 그래서다. 영기보다 나이가 많아야 할 것 같고, 내가 보기엔 경구 형밖에 적임자가 없었다. 경구 형이 시나리오를 읽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뛰었다. 그만큼 좋았다.
-영기는 자유분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성격인데.
=나라면 영기처럼 살 수 없을 것 같다. 누가 건드리면 ‘아, 괜찮습니다’ 하고 넘어가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기는 예스면 예스고, 노면 노다. 눈치를 안 본다. 원 없이 일방통행하는 캐릭터인데 연기를 빙자해 그런 삶을 살아보니 속이 시원했다.
-영기는 전신마비인 장수의 손발이 되어 서사를 끌고 가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게 관건이었다. 돈이 필요한 영기와 그런 그에게 일을 부탁하려는 장수가 각각 처한 상황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두 남자가 만나면서 서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한다. 그 점에서 영화는 영기와 장수의 성장드라마다. 촬영 전 감독님과 나눈 의견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전형적인 성장 서사로 풀어나가지 말자는 거였다. 가령 1막에서 영기와 장수가 만나, 2막에서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워지고, 4막에 가서 장수와 갈등을 일으킨 뒤, 5막에서 화해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안 된다고 보았다. 그보다는 인물들이 감정을 교감하면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이어야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포마드 바른 투블록커트를 하고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모습이 영기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 헤어스타일을 하고 의상을 입으니 힘이 절로 나더라. (웃음) 의상 피팅하는 날 의상팀이 준비한 옷을 처음 입었는데 와, 정말…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웃음)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입어?’ 싶어 주눅이 잠깐 들었는데 그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주는 에너지가 또 있었다.
-설경구와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인데 어땠나.
=경구 형이 내 롤모델이다. 함께 작업해서 너무 행복했다. 대학 시절 군 휴가 나왔을 때 대학로 학전에서 경구 형이 1인다역을 해 유명한 연극 <지하철 1호선>을 본 적 있다. 혼자서 다 하는 걸 지켜보면서 ‘저 사람 누구지?’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연이 끝난 뒤 경구 형한테 가서 악수를 청했었다. 그 뒤 배우로 데뷔했는데 이상하게도 경구 형을 같은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다. 이번 영화는 촬영 시작한 뒤 ‘하나, 둘, 셋’ 세고 끝난 작업이다.
-그만큼 작업이 만족스러워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얘긴가.
=한 2년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 하면서 한번도 크리스마스에 쉰 적 없는데 이번 영화는 작정하고 크리스마스에 신나게 놀았다.
-차기작이자 배우 정진영의 첫 장편 연출작인 <사라진 시간>에도 출연했는데 어떤 작업이었나.
=정진영 선배 같은 영화다. 알다가도 몰라. 희한하다. (정)진영 선배가 ‘이제 할 수 있게 됐다’고 그렇게 행복해하는 눈을 보니 출연을 거절할 수 없었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싶었다.
-현장에서 연출을 하는 정진영을 보면서 연출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나.
=그런 기대감도 컸다. 연극하던 시절 선배가 “연출 한번 해봐라”고 제안한 적 있었다. 연출을 하면 작품 전체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어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아직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