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82년생 김지영①] 개봉 전부터 극과 극의 반응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과 어떻게 같고도 다른 길을 갔을까
2019-10-30
글 : 장영엽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기의 고단함에 관하여

1.58 대 9.42. 10월 23일 기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게시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성별 만족도 지수다. 10점 만점에 남성 관객은 최하점에 가까운 점수를, 여성 관객은 최고점에 가까운 점수를 줄 만큼 영화를 둘러싼 남녀 관객의 반응이 극과 극이다. 영화 예매 사이트 CGV가 공개한 <82년생 김지영> 개봉 당일 누적 관람객 비율 또한 남성 관객 18%, 여성 관객 82%로 성별 격차가 컸다.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하거나, 관람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중간은 없고 양극단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개봉 풍경은 비수기 극장가에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대한민국의 현실. 하이퍼 리얼리즘”(네티즌 evan****),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네티즌 wldu****)라고 호평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눈감고 귀막은 그들만의 리그”(네티즌 tedg****), “하나부터 열까지 징징대면서 남자 탓하는 영화”(네티즌 gggz****)라고 혹평한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이 작품에 쏟아지는 대부분의 혹평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단함’을 맹렬하게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힘들지 않았고, 차별받지 않았고, 소외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네티즌의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짓누르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지극히 온건한데도 악성 댓글이 따라붙는다

<82년생 김지영>은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여아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지던 1982년에 태어난 여성 김지영씨가 35살이 되기까지의 인생을 연대기순으로 서술한 원작소설은 유년기와 학창 시절, 취업과 결혼, 출산, 육아 등 여성이 생애주기에서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들을 두루 경유한다. 김지영씨의 삶은 흔하디 흔한 그의 이름처럼 다른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나, 한 여성이 35년간 경험해온 것들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성차별의 그림자를 폭로할 수 있다는 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보여줬다. 이 작품은 당대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반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2017년에는 일명 ‘김지영법’이라 불리는 ‘남녀 임금 차별 방지법’,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이 발의(김수민 국민의당 의원)되었고, 2018년에는 국내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된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 작품은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페미니즘 이슈의 상징적 아이콘이 됐다.

한편 여성에 대한 차별, 배제, 폭력에 대항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공격도 거세졌다. 아이린, 수영 등 여자 아이돌이 단지 이 책을 읽고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댓글의 희생양이 됐고, 인터넷상에서는 ‘79년생 정대현’ , <92년생 김지훈> 등 <82년생 김지영>을 풍자한 남성 서사 패러디물이 등장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남성을 역차별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고단하고 차별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제작 소식이 알려진 뒤 제작진을 향한 일부 네티즌의 공격적인 제스처 또한 소설의 경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배우 정유미가 김지영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배우의 SNS 계정은 온갖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되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며 영화의 제작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더 자세한 논란의 타임라인은 50쪽 참조). 여기까지만 듣고 있으면 영화가 대단히 편향된 방식으로 남녀 캐릭터에 차별을 두어 묘사하고 있는 건가 싶지만, <82년생 김지영>은 지극히 온건한 필치로 한 여성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풍경을 그려낸 영화다.

원작 소설이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일생을 연대기순으로 서술한 것과 달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교차하며 지영(정유미)의 시간을 다채롭게 엮어낸다. 현재의 시점에서 지영은 임신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딸을 키우는 ‘육아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딸을 돌보다, 가사일을 하다가 문득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지영의 표정은 한없이 공허해 보인다. “그냥 가끔 옛날 생각이 많이 나고, 해질 무렵이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긴” 하지만 사는 데 별다른 지장은 없다고 생각하던 지영은 사실 괜찮지 않다. 그는 종종 가족이나 친구 등 ‘알고 지내던 여자’들의 모습으로 빙의한다. 유일하게 지영의 증상을 알고 있는 남편 대현(공유)은 지영이 혹여나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사실을 털어놓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한다. 설 연휴, 시댁에 내려간 지영은 고된 가사 노동 끝에 시누이가 먹을 음식까지 내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다른 가족들이 지영이 깎아놓은 과일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동안, 지영은 부엌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별안간 침착해진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목소리로 시어머니(김미경)에게 말을 건넨다. “사부인도 명절에 딸 보니 반가우시죠?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학습하며 어느덧 자신감을 잃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소설에서 다소 무미건조하게 묘사되었던 빙의의 순간은 정유미라는 배우의 유려한 연기와 극적 장치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동시에 영화는 자주 지영의 과거로 돌아가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힘주어 내지 못하게 된 원인을 살펴본다. “여자들은 그저 조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할머니, “가만있다가 시집이나 가라”는 아버지, “애는 옆에 엄마가 딱 있어야 한다”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회사 상사,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육아맘’ 지영에게 “상팔자”라고 말을 보태는 익명의 행인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여성의 역할에 한계를 두고 여성의 노동력과 잠재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세간의 시선이 한 여성을 어떻게 서서히 위축시키는지 영화는 보여준다. 그 결과 현재 시점에서의 지영은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지적했던 바처럼 ‘자기혐오’를 내재화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세계지도를 보며 가보고 싶은 나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 엄마를 구박하는 할머니에게 “효도는 내가 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던 주체적인 소녀는 어느새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 재빨리 타인의 기분부터 살피는 여자 어른이 되어 있다.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는 지영뿐만 아니라 지영의 세계를 둘러싼 다양한 여성들의 사연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오남매 중 가장 공부를 잘했지만 남자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선생님이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부터 커리어를 위해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을 포기한 지영의 상사 김 팀장(박성연), 보안요원이 설치한 화장실 몰카에 분노하고, 몰카의 존재를 알면서도 돌려본 남자 동료들에게 또 한번 분노하는 지영의 회사 동료 혜수(이봉련),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려고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모르겠다는 고학력 육아맘의 사연 등 이 영화엔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주변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이들의 사연은 현실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을 유발하면서도 한국 상업영화를 통해 묘사된다는 점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간의 한국 상업영화가 여성의 일상을 다룬 장면들을 얼마나 쉽게 서사의 주변부로 밀어버렸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서사의 중심부로 진입한 다종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사연은 한편으로 양질의 연기를 하는 여자배우들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장을 열어준다. 영화의 후반부, 모녀간의 대화 장면으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장본인인 베테랑 배우 김미경과 박성연, 이봉련, 공민정(지영의 언니 은영 역), 김미경(시어머니 역의 동명 배우) 등 여자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며, 스토커 남학생으로부터 고등학생 지영을 구해주는 행인으로 짧게 등장하는 염혜란조차 깊은 인상을 남기고 퇴장한다. <어떤 개인 날>(2009), <더 웹툰: 예고살인>(2013), <살아남은 아이>(2018) 등에 출연한 배우 출신 감독 김도영의 연출력과 안목을 짐작할 수 있는 선택이다.

개봉 전부터 여성 관객의 우려를 자아냈던 대현의 모습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공유가 연기하는 지영의 남편 대현은 지영을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사려깊지는 못한 인물이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상실감과 공허감에 빠진 지영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나, 정작 자신의 육아휴직을 반대하는 어머니를 막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짧게나마 자신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지영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정한 듯 무심한 남편의 모습을 과하지 않은 필치로 연기하는 공유의 태도는 이 영화의 원톱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82년생 김지영>은 동명 소설과 운명을 달리한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의 삶에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열어주는지에 있다. 지영의 상담을 맡은 남자 정신과 의사를 통해 출구 없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며 경보음을 울리는 소설과 달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주변 인물들과의 연대를 통해 좀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딸에게 얌전히 있지 말고 ‘막’ 나대라는 엄마, 삶이 피곤해지더라도 차별적 발언에 끊임없이 말을 보태는 언니, 남자 동기들보다 승진은 더디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말하는 여자 동료의 모습은 지영의 삶에 은근한 긍정의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자각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여성에게 말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소한 연대의 제스처가 때로는 예기치 못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마침내 자신을 향한 세상의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김지영의 모습은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이 작품은 현실보다 수월하게 관통할 수 있는 출구를 여성들에게 내어준다. 대중 상업영화의 필치로 재단된 영화의 말끔함이 가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는 석연치 않은 찜찜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현실을 잊고 여성 스스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서사를 선보이는 한국 상업영화의 출현은 여전히 드물고도 반가운 현상이다.

최신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