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이리시맨④] <아이리시맨>과 마틴 스코시즈의 배우들
2019-11-20
글 : 임수연
역전의 노장들이 다시 뭉치다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주최한 화려한 동창회다.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코미디의 왕>(1983) 등에서 함께한 로버트 드니로, <좋은 친구들>(1991), <카지노>(1995) 등에서 중요한 신스틸러였던 조 페시,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 <비열한 거리>(1973) 등 초기작부터 함께한 하비 카이텔이 모여 과거 마틴 스코시즈가 만들었던 장르영화를 다시 만들었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할리우드의 전설이 됐던 알 파치노가 처음으로 마틴 스코시즈와 작업하고, 그외 뉴페이스들이 중요한 자리를 채운다.

<아이리시맨> 로버트 드니로

●로버트 드니로

최근작 <인턴>(2015)에서는 노장의 관록을 보여주는 인상 좋은 할아버지를 연기했지만, 젊은 시절 스크린 속 로버트 드니로는 대체로 기분 나쁜 남자였다. 그 이미지는 마틴 스코시즈와의 작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비열한 거리>에서는 여자를 좋아하고 폭력적이고 찌질한 건달이었고,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관심 있는 여자에게 포르노영화를 보여주고 그가 불쾌해하자 난동을 부리던 루저였으며, <분노의 주먹>의 몰락한 복서 라모타는 아내와 동생 조이(조 페시)가 불륜이라고 의심하며 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코미디의 왕>에서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다 납치극까지 벌였다.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열패감에 찌든 인간이 어떻게 사회문제가 되어가는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캐릭터 스터디로서 훌륭한 사료다. 수용자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는 인류학적으로도 가치 있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거울을 보며 폼잡거나 총을 난사하는 신을 동경하고 <코미디의 왕>을 루저가 단 하루만은 왕으로 군림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금 사회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노인이 된 로버트 드니로가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들에게 누구보다 냉정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트래비스는 머저리다. 택시를 모는 그 캐릭터는 요즘 미국과 무관하지 않다. 있어서는 안될 곳에 존재하고 있는 도널트 트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라며 트래비스 비클을 도널드 트럼프에 비교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로버트 드니로는 “트럼프는 날라리, 개, 돼지, 사기꾼, 협잡꾼, 멍청이이고 국가적 망신 그 자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해온 장본인이다. <아이리시맨>은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해온 남자들의 최후를 담은 듯한 프로젝트다. 2007년 로버트 드니로가 먼저 찰스 브랜트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의 영화화를 마틴 스코시즈에게 제안했고, 미국 근현대사를 함께한 청부살인업자 프랭크 시런을 직접 연기한다. 막강한 권력을 얻으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동료의 머리통에도 총을 갈기는 프랭크는 극 후반부에는 가족에게 버림받는다. 전성기 시절 찍은 갱스터영화들과 달리 제니퍼 로렌스의 아버지(<조이>), 잭 에프런의 할아버지(<오 마이 그랜파>) 역을 맡는 나이가 된 로버트 드니로는 다 큰 딸이 아버지를 경멸하는 말년까지 연기한다. 인간의 죽음은 순식간이지만,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현재에 홀로 삶을 버틴다는 건 과거의 영광만큼 지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리시맨>은 폭력적인 마초의 쓸쓸한 종말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이런 연기를 하기에 가장 완벽한 필모그래피를 가졌고, 배우가 근사하게 늙어가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인사이더> 알 파치노

●알 파치노

당연히 함께 작업한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아이리시맨>이 첫 만남이다. 알 파치노와 마틴 스코시즈 얘기다. 돌이켜보면 <대부> 시리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카페이스>(1983)와 <칼리토>(1993)는 브라이언 드 팔마, <형사 서피코>(1973)와 <뜨거운 오후>(1975)는 시드니 루멧, <히트>(1995), <인사이더>(1999)는 마이클 만의 영화였다. ‘마피아’ 세계를 자주 재현했다는 교집합에도 연이 닿지 않던 두 사람은 미국 경제 호황 시절의 유명 인사, ‘지미 호파’를 통해 연결됐다. 1940~50년대 미국에서 전미운수노조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그는 배심원 매수와 뇌물, 사기죄로 감옥까지 가게 된다. 모티브가 된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이 현실화되면 알 파치노가 연기했던 남자들의 씁쓸한 결말이 스친다. <스카페이스>에서 수십개의 총알이 몸뚱이에 박히는 장면을 비롯해 알 파치노는 갱스터영화에서 대체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알 파치노의 얼굴에서 어떤 연민을 느꼈다. 아마 알 파치노가 처음부터 마피아 보스에 어울리지는 않았던, 정서적 힘이 강한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했지만 영화계에서는 막 시작하는 단계였던 그를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 역에 캐스팅한 것은 코폴라 감독의 고집이었다(또한 조지 루카스의 부인 마샤 루카스 역시 “알 파치노로 해라. 눈빛으로 옷을 벗기는 재주가 있다”며 추천했다고 한다). 형제를 연기한 배우들 중 가장 갱스터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에게 말론 브랜도의 뒤를 이어 마피아의 새로운 대부가 되는 역을 맡기는 결단을 내렸다.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현장에서 알 파치노를 경계했던 제작사와 스탭들도 카페 총격 신 촬영 이후 그를 인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이리시맨> 조 페시

●조 페시

남자의 열등감과 광기를 표현하는 데 순위를 매긴다면 조 페시는 마땅히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 할 배우다. <분노의 주먹>에서 권투선수 형의 매니저로 헌신을 다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폭력과 폭언이었던 조이는, <좋은 친구들>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과거를 까발린 남자를 잔혹하게 응징하고 트렁크에 처넣은 사람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찔러대는 토미가 된다. <카지노>의 니키는 순간적으로 눈이 돌고 어떤 사람이든 가뿐히 찔러죽이는 조 페시 특유의 섬뜩함이 절정에 다다른 캐릭터다. 조 페시는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 키가 작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남자였다. <좋은 친구들>의 제작자들은 1943년생인 그가 토미를 연기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며 반대했지만 조 페시는 이 정신이상자 갱단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직결되는 실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나는 아주 힘든 인생을 살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매우매우 끔찍하고 끔찍한 싸움을 본 적 있다. 그래서 그 공포가 무엇인지 안다. 토미의 유명한 대사, ‘내가 어떻게 웃기다는 거야?’는 내가 현실의 ‘토미’에게서 들은 것이기도 하다.”(<엠파이어>) 그렇게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를 통해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고 있던 조 페시가 비슷한 시기 <나홀로 집에>의 도둑 콤비를 능청스럽게 연기했다는 점도 놀랍다. <러브 랜치>(2010) 이후 사실상 배우 생활을 은퇴한 그가 오랜만에 복귀한 <아이리시맨>은 조 페시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피해갔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모든 걸 완벽하게 조종하는 인물이다. 프랭크 시런과 지미 호파를 이어준다”고 러셀 버팔리노를 설명한 바있다. 실제로 <아이리시맨>의 러셀은 열등감보다 사건을 촉발하는 설계가 돋보이는 캐릭터다. 조 페시는 매체 인터뷰 등을 극도로 싫어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굵직한 작품도 거절할 만큼(몇년 전 그는 마이클 만의 <HBO>드라마 <머니 레이스>의 캐스팅도 거절했다. 작품은 좋지만 그냥 일을 하고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편집자) 노출을 꺼리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지 못한 얼굴이 남아 있어서, 왠지 안달이 나는 배우다.

<유스> 하비 카이텔

●하비 카이텔

혹자는 말한다. 마틴 스코시즈의 진짜 페르소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아닌 하비 카이텔이라고 말이다. 하비 카이텔, 로버트 드니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이어지는 마틴 스코시즈의 남자 계보도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마틴 스코시즈는 장편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를 시작으로 <엘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1974),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등을 그와 내리 함께했다. 마틴 스코시즈의 애정(?)이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에게 쏠리는 사이, 하비 카이텔은 젊고 자신만의 인장이 확고한 천재 감독의 태동에 함께하고 있었다. <저수지의 개들>(1992)의 미스터 화이트, <펄프 픽션>(1994)의 울프는 지금까지도 하비 카이텔의 대표 캐릭터가 됐다(공교롭게도 폴 슈레이더의 장편 데뷔작 <블루 칼라>(1978), 리들리 스콧의 장편 데뷔작 <결투자들>(1977)도 하비 카이텔이 출연했으니 유독 감독들의 데뷔작과 인연이 깊은 셈이다). 남다른 다작을 하며 실험적인 B급영화에도 기꺼이 출연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의 맥락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다시 마틴 스코시즈의 세계에 소환된 하비 카이텔은 스코시즈표 갱스터의 시작을 함께한 배우로서, 어느 시대 어디에나 존재한 얼굴로서 <아이리시맨>의 진입장벽을 낮춘다. <아이리시맨>이 감독의 세계에서 가진 의미를, 1949년부터 2000년을 아우르는 미국 역사를 다룬 점을 생각할 때 하비 카이텔은 이 광대함을 하나로 잡아주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 그가 ‘그리고 하비 카이텔’이란 크레딧으로 이 프로젝트에 등장했어야 하는 이유다.

<텔 잇 투 더 비즈> 안나 파킨

●새로운 얼굴들

마틴 스코시즈와 처음 인연을 맺은 배우들이 있다. 안나 파킨은 어린 시절부터 지미와 돈독한 우정을 쌓은 프랭크의 딸 페기를 연기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갱스터영화의 마초들이 맞는 최후의 쓸쓸함을 배가하는 존재는 ‘딸’이다. 성인이 된 페기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사는데, 안나 파킨의 원망가득한 얼굴은 구구절절한 대사 없이도 아버지 세대의 폭력에 대한 자녀 세대의 코멘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제시 플레먼스는 지미의 양아들 처키 오브라이언으로 분해 프랭크가 지미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 함께한다. 그는 한 번만 봐도 바로 각인되는 캐릭터 강한 마스크를 지녔다. ‘지미 호파 실종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긴장하며 기다리는 관객의 시선은 종종 차 앞좌석에 앉은 그에게 꽂히며 미묘한 텐션을 만든다.

<몬태나> 제시 플레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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