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트로피를 향한 영화인들의 관심은 1년 내내 계속된다. 이듬해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 결과를 전문가, 에디터, 유저들의 투표로 예측하는 사이트 ‘골드더비’(GoldDerby)의 랭킹도 변화무쌍하다. 지난 주말, 골드더비는 <기생충>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북미 개봉 직후 쏟아진 찬사와 함께 관객몰이 중인 <기생충>의 위세가 검증되고 있는 양상. <기생충>이 포함된 골드더비의 2020년 아카데미 감독상 예상 랭킹을 살펴보자.
1위 / 마틴 스콜세지 / <아이리시맨>
예측 1위의 왕좌를 차지한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 그의 오랜 파트너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카이텔이 <아이리시맨>에서 간만에 뭉쳤다. 게다가 지금까지 스콜세지의 영화에 출연한 바 없었단 사실이 놀라운 명배우 알 파치노의 합류까지. 출연진만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획 초반에는 투자에 난항을 겪었다고. 넷플릭스의 도움으로 완성된 거장의 역작 <아이리시맨>이 공개되자 전문가들의 별이 쏟아졌다.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I Heard You Paint Houses, 국내 출간 제목은 <아이리시맨>)를 읽은 드 니로가 직접 스콜세지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영화는 시작됐다. 양로원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의 1950·60·70년대의 시간대를 오가는 회상이 <아이리시맨>의 뼈대를 이룬다. 노동자 출신의 프랭크가 살인청부업자로 거듭나게 되는 장중한 서사는 200분가량 이어진다. 그간 갱스터 무비의 대부로 활약해온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묵직한 마스터피스.
2위 / 쿠엔틴 타란티노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비튼 제목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1969년의 할리우드를 향한 러브레터를 보내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개봉 전부터 팬들의 관심은 여러 군데로 쏠렸다. 10편의 영화를 만들고 은퇴할 것을 밝힌 감독의 9번째 영화이면서,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데서 오는 우려와, 북미 개봉 이후 불거진 브루스 리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공개된 영화는 이른바 ‘성숙한 타란티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왕년의 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매니저 겸 스턴트 대역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앞날을 고민하고, 옆집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 부부가 이사를 온다. 저무는 스타에 관한 초상과 샤론 테이트를 기리는 결말로 나아가는 대목은 가히 타란티노의 가장 따뜻한(!) 영화라 할만하다.
3위 / 봉준호 / <기생충>
지난 5월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기염을 토한 <기생충>은 '골드더비'의 감독상 예측 8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북미 개봉 이후 순위는 빠르게 치솟아 3위까지 올랐다. 작품상과 각본상 레이스에서도 각각 4위, 3위에 랭크. 한국 영화사의 유의미한 걸작 <살인의 추억>, <마더> 등으로 봉준호 감독은 이미 해외 영화팬들도 주목하는 거장 감독이다. 그의 신작 <기생충>이 계급에 관한 가장 음울한 블랙코미디를 시사하면서, 전 세계가 앓고 있는 공통된 화두가 객석을 관통했다. 할리우드에 안착한 <기생충> 신드롬은 '제시카 송'에 쏟아진 의외의 열광을 불렀고, 지난 25일 <타임>은 ‘올해 최고의 영화 10선'에 <기생충>을 꼽기도 했다. 골드더비 측은 “2019년 아카데미에서 유력 후보였던 멕시코 영화 <로마>가 결국 수상에 이르지 못했으나, <기생충>은 넷플릭스의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도 지켜볼만하다”고 전망했다.
4위 / 샘 멘데스 / <1917>
<아메리칸 뷰티>라는 놀라운 데뷔작 이후, <007 스카이폴> <레볼루셔너리 로드> 등으로 입지를 다져온 감독 샘 멘데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그의 신작 <1917>이 얼마 전 해외에서 공개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젊은 병사가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받는 이야기를 담았다. 북미 최초 시사회 이후 쏟아진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다. “기념비적인 전쟁영화”, “영화역사상 가장 뛰어난 롱테이크”,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합친 듯한 경이로운 영화” 등의 평이 나오고 있다. 샘 멘데스 감독과 몇 편의 작업을 함께 해온 명장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 역시 <1917>로 유력한 촬영상 후보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5위 / 노아 바움백 / <결혼 이야기>
<프란시스 하>, <위 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연출했던 노아 바움백 감독의 신작 <결혼 이야기>가 각종 영화제에 공개돼 화제를 모은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결혼 이야기>는 결혼을 향해 가는 이야기가 아닌 결혼의 해체에 관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이혼을 결심한 두 남녀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 자수성가한 연극 감독 찰리와 연극배우 니콜은 서로의 장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느 부부들이 겪는 위기처럼, 둘의 관계는 무관심과 싫증 사이를 오가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닌 <결혼 이야기>인 이유는 아마도 관계를 끊어내는 법적 절차의 지난한 과정까지 모두 결혼의 범주에 포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하 순위권]
6위 / 그레타 거윅 / <리틀 우먼>
7위 / 타이카 와이티티 / <조조 래빗>
8위 / 페드로 알모도바르 / <페인 앤 글로리>
9위 / 토드 필립스 / <조커>
10위 / 마리엘 헬러 / <어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