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9 미개봉 신작②] <위도우즈> <오버로드> <웰컴 투 마웬> <보이 이레이즈드> <배드 타임즈: 엘 로얄에서 생긴 일>
2019-12-12
글 : 김현수

<위도우즈> Widows

제작연도 2018년 / 감독 스티브 매퀸 / 출연 비올라 데이비스, 미셸 로드리게즈, 엘리자베스 데비키, 콜린 패럴, 리암 니슨 / 상영 플랫폼 IPTV, 블루레이

<노예 12년>(2013)으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첫 번째 흑인 감독이 된 스티브 매퀸의 신작 <위도우즈>는 하이스트 무비다. 감독과 장르가 매칭이 안된다고?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범죄영화는 아니다. 범죄자 남편을 잃은 4명의 아내들이 생존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티브 매퀸 감독이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이야기로, 원작 격인 동명의 80년대 영국 드라마가 있다. 매퀸 감독은 어릴 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드라마의 정서를 좀더 영화적으로 부각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위도우즈>가 주목하는 것은 ‘위기의 과부들’이다. 순탄하지 못했던 범죄자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거라고는 과부 딱지와 생활고가 전부인 여자들은 낙담할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상적인 삶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범죄자 빚쟁이들이 달려들자 아내들은 남편들의 생애와 전과를 재활용한 범죄극을 모의하게 된다. 이 영화는 범죄 모의 과정에서의 장르적 쾌감을 여성들이 (남성을 대신해)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둔 영화는 아니다. 우두머리였던 해리(리암 니슨)의 아내 베로니카(비올라 데이비스)는 백인 범죄자 남편을 둔 흑인 아내로서 평생 상처를 품고 살아야 하며, 폭력적인 남편과 딸을 상품 취급하는 엄마 곁에서 몸매 좋은 바보 취급 받으며 살았던 앨리스(엘리자베스 데비키)는 돈 많은 남자들의 타깃이 되어야 하고, 도박빚을 해결하려 도둑질하다가 죽어버린 남편으로 인해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린다(미셸 로드리게즈)는 살 길이 막막하다. 현실적으로 생활고를 겪게 된 아내들이 선택하는 대안이 결국 남편들의 과오를 잇는다는 설정은 흥미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들의 범죄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며 불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들이 지정한 범행 타깃과 이들이 겪게 되는 범행 과정 이면에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경제적 폐단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물론 장르적으로 깊이 따져 물으면 범행과 도주 과정에서의 몇몇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이 여성들의 성공 경험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다.

<오버로드> Overlord

제작연도 2018년 / 감독 줄리어스 에이버리 / 출연 와이어트 러셀, 마틸드 올리비에, 존 마가로, 제이콥 앤더슨, 조반 아데포 / 상영 플랫폼 IPTV, 블루레이

할 거 다해본 좀비영화 장르에서 새로운 충격을 이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공포나 판타지 장르를 벗어나 코미디, 멜로드라마 영역에까지 침투한 지 오래다. 또한 21세기의 영화 속 좀비는 근대적 마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헛된 욕망이 만들어낸 과학적 비극의 산물이자 소수의 차별집단으로 자주 묘사된다. 물론 <오버로드>가 다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자행했던 생체실험의 실패 사례로 탄생한 좀비라는 설정도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시도다. 이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흑인 배우가 주도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공포영화 내지 하위 장르로서의 좀비영화라는 점이다. 다른 소재이지만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2017)이나 <어스>(2019)가 장르적으로 주목받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흑인 배우가 주연의 위치에 있다는 점인데, 그동안 공포영화 장르에서의 흑인 배우의 위치를 생각해본 관객이라면 <오버로드>가 꽤나 반가울 것 같다. 영화는 노르망디상륙작전을 성공시킬 목적으로 사전에 비밀리에 침투한 병사들이 인근 마을에서 자행되던 독일군의 생체실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좀비로 변하다가 버려지는 마을 사람들과 연합군 병사들의 시체 더미를 뚫고 의협심 강한 신참 병사 에드워드(조반 아데포)가 작전의 성공보다 인명을 구하는 데 앞장서면서 사건이 점점 꼬여나간다. 낯선 감독과 배우의 이름 때문에 영화의 인지도가 떨어진 편인데, 제작자가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라 영화 제작 당시에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라는 루머도 있었다고 한다.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원이 주인공인 전쟁영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피해 낙하산 부대원들이 작전을 펼치는 첫 시퀀스는 최근에 본 전쟁영화 중 최고의 박진감을 선사한다. 아쉬운 점? 좀비와의 클라이맥스 액션 신이 제목의 무게에 비해 조금 짧다는 점이다. 국내 출시된 4K UHD 블루레이로 감상하면 뛰어난 해상도로 좀비와의 접전을 즐길 수 있다.

<웰컴 투 마웬> Welcome to Marwen

제작연도 2018년 /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 출연 스티브 카렐, 메릿 웨버, 레슬리 만, 저넬 모네이, 에이사 곤살레스 / 상영 플랫폼 IPTV, 넷플릭스, 블루레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기술이 곧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이다. 그의 신작 <웰컴 투 마웬>은 그가 평생을 좇고 있는 ‘감동 실화’와 ‘시각특수효과’(VFX)가 만난 또 하나의 사례다. <폴라 익스프레스>(2004), <베오울프>(2007), <크리스마스 캐롤>(2009)을 통해 CG 캐릭터의 치명적 단점인 언캐니 밸리(인간과 똑같이 생긴 다른 존재를 볼 때 느끼는 어색함과 불쾌감)를 극복하려 한 저메키스 감독의 최근의 성과를 극장에서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웰컴 투 마웬>의 기술적 성취는 좀더 다뤄져야 한다. 하이힐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혐오범죄에 노출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호건캠프(스티브 카렐)는 피겨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다. 그는 폭력배들에게 린치를 당한 후 마당에 꾸며놓은 가상의 인형 마을 ‘마웬’에 갇혀 산다. 영화는 호건캠프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실사 이야기와 마웬에서 벌어지는 호건캠프의 상상 속 CG 이야기가 뒤섞인 일종의 성장담이자 트라우마 극복기다. 출연배우들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인형 CG 캐릭터가 함께 연기하는데 이들은 종종 한 프레임에 겹쳐 등장해 연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에 대해 소개하자면, 제작 과정에서 게임엔진인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워크플로를 새롭게 도입해 만들었고 케빈 베일리 VFX 슈퍼바이저는 효율성을 증가시켜 시간과 비용 감소를 이뤄낸 기술적 성과로 2019년 ‘비저너리 공로 부문 니콜라 테슬라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러닝타임 중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가상의 인형 마을인 마웬에서 일어나는 장면인데 실제 배우와 똑같은 형상의 캐릭터들이 이질감 없이 연기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데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과 특별한 조명 기술이 사용됐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영역의 일을 게임엔진의 힘을 빌린 것. 결과는 성공적이다. 트라우마를 지닌 채 피겨에 푹 빠져 사는 주인공 호건캠프를 연기한 배우가 스티브 카렐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가 출연하고 각본에도 참여한 주드 애파토우 감독의 <40살까지 못 해본 남자>(2005)의 주인공 앤디와도 연결되는 배역이기 때문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성적 지향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취향에 관한 묘사, 즉 여성 인형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는 평가가 갈릴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보자.

<보이 이레이즈드> Boy Erased

제작연도 2018년 / 감독 조엘 에저턴 / 출연 루카스 헤지스, 니콜 키드먼, 러셀 크로, 조엘 에저턴, 자비에 돌란, 트로이 시반 / 상영 플랫폼 IPTV, 넷플릭스, 블루레이

미국에는 1970년대부터 ‘전환치료’라는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교육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동성애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격리 교육을 통해 ‘정상인’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목적을 지닌 곳이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인권침해와 폭력이 벌어지는 곳일 수밖에 없다. <보이 이레이즈드>는 부모에 의해 이곳에 들어가 폭력과 죽음을 목격하고 나온 한 남자의 동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더 기프트>(2015)로 안정적인 스릴러영화 연출을 선보였던 배우 조엘 에저턴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올해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호명됐던 작품인데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자신이 동성의 남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부모 앞에서 고백한 소년 자레드(루카스 헤지스)는 목사인 아버지(러셀 크로)의 손에 이끌려 전환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영화는 전환치료 프로그램 시설에 들어가는 자레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버지의 선택도 존중하는 엄마(니콜 키드먼)는 처음에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들을 지켜보다가 이 프로그램의 인권유린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적극 개입해 아들이 아니라 부모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동성애자 자녀를 둔 가족이 겪는 아픔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레드의 심경 변화에 집중한다는 점이 <보이 이레이즈드>의 미덕이다. 자레드 역의 루카스 헤지스의 연기는 부모 역의 러셀 크로와 니콜 키드먼, 그리고 기관의 동료들을 연기하는 자비에 돌란이나 가수이자 배우인 트로이 시반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더욱 빛난다. 전환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으며 아이들을 코너로 몰아붙여 압박하는 사이크스 강사(조엘 에저턴)는 2010년에 실제로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며 동성애자임을 밝히기도 한 인물이다. 전환치료라는 허울 뒤에 숨은 어른들의 비겁한 모습이 영화에 잘 담겨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실존 인물들의 밝은 모습과 배우들이 분장한 모습이 너무 흡사해 깜짝 놀라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배드 타임즈: 엘 로얄에서 생긴 일> Bad Times at the El Royale

제작연도 2018년 / 감독 드루 고다드 / 출연 신시아 에리보, 제프 브리지스, 다코타 존슨, 크리스 헴스워스 / 상영 플랫폼 IPTV, 블루레이

<배드 타임즈: 엘 로얄에서 생긴 일>은 <클로버필드>(2008)의 작가이자 연출 데뷔작 <캐빈 인 더 우즈>(2012)로 호러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던 드루 고다드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이번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나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펼쳐지는 스타일리시한 폭력 묘사를 생각하면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번 영화는 숲속 오두막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실은 미지의 세력에 의한 끔찍한 조작의 일부라는 설정의 <캐빈 인 더 우즈>와 구조가 유사한 설정을 다룬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의 경계에 세워진 ‘엘 로얄’이라는 호텔에 신원 미상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말 못할 ‘범죄 혐의’를 지녔다. 그런데 이 호텔이 심상치 않다. 으리으리한 외관과 과거의 명성에 비해 지금은 손님도 없고 객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문 닫기 직전의 낡은 모텔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호텔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등장인물이 추가될 때마다 계속되는 국면 전환, 여러 인물의 사연이 플래시백으로 끼어드는 액자구성,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의 아귀다툼은 비선형적 방식의 밀실 스릴러가 지닌 특징이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많은 평론가들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와의 유사성을 지적한 이유다. 하지만 타란티노 스타일과 지향점이 확연히 다른 지점은 거대한 빅브러더의 존재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비평 면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라도 꼭 추천하고 싶은데 <엠파이어>는 “감독의 야심에는 조금 못 미친 클래식한 <펄프 픽션>”이란 평을 내놓은 반면, <버라이어티>는 “형편없는 타란티노 모조품”이란 혹평을 남겼다. ‘엘 로얄’ 호텔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범죄 양상은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장르적으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지녔다. 평가가 갈리는 지점은 크리스 헴스워스가 토르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맡은 역할 때문이리라. 스포일러 때문에 그에 대해서 아무런 묘사를 할 수 없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함께 현재 할리우드영화가 사회 반영을 위해 고민하는 어떤 트라우마의 형상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엘 로얄 호텔의 문을 열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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