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2015)은 미래를 일찌감치 예견한 옴니버스영화다.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2014년 우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기획됐다.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는 궉준, 웡 페이팡, 구문걸, 주관위, 우카릉 등 5명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10년 뒤 홍콩을 상상해 스크린에 담기로 했다. “왜 10년 뒤로 설정했냐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미래라 누구나 상상할 수 있으니까. 우산혁명이 시작되기 전 홍콩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떠올리다가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가 주제를 따로 정해주지 않았는데도 다섯 감독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홍콩의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했다. 국가보안법(<엑스트라>(감독 궉준)), 도심 재건축(<겨울매미>(감독 웡페이팡)), 중국어 표준어 교육(<방언>(감독 구문걸)), 시위(<분신자살자>(감독 주관위)), 검열(<현지계란>(감독 우카릉)) 등이 그것이다. “우산혁명이 일어날지 몰랐지만 홍콩 사회에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던 시기이긴 했다. 저예산영화다보니 5편의 단편으로 제작을 진행했는데, 덕분에 5가지 시각으로 홍콩의 변화를 내다볼 수 있었다.”
때때로 현실은 상상을 앞지른다. 이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우산혁명이 그때 일어났다. 촬영이 한창이던 감독들은 현실에 맞게 시나리오를 수정해야 했다. “우산혁명을 지켜보면서 5편 모두 이미지를 원래 정했던 것보다 더 어둡게 그렸다. 시민들의 요구 조건인 직선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망과 좌절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우산혁명의 상황에 맞게 몇몇 장면이 수정되기도 하고, 홍콩 경찰이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최루탄을 사용하는 장면이 영화에 추가로 삽입되기도 했다. 장르도, 소재도 제각각이지만 5편 모두 홍콩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생생히 풍자한다. 이중에서 <엑스트라>는 2020년 홍콩 정부가 ‘국가보안법’ 입법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고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고, 친중파 정치인 권총 피습 사건을 조작하는 이야기다. “중국이 홍콩을 컨트롤하려는 그림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를 누아르 장르 문법에 따라 전개”해 꽤 강렬하다. <방언>은 택시 기사가 표준어를 구사할 줄 모르면 택시를 몰 수 없다는 끔찍한 상상에서 출발하는 블랙코미디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난 일에서 구상한 이야기로, 중국 반환 이후 아이들에게 광둥어보다 표준어를 더 많이 쓰게 하는 걸 지켜보면서 앞으로 광둥어가 홍콩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우산혁명이 그랬듯이 현실에선 모든 일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어난다. 언젠가 일어날 법한 가정에서 출발한 소재이지만 영화 속 가정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30주차에 접어든 홍콩 시위 또한 영화보다 더 말이 안되는 풍경이지않나. 영화를 본 많은 주변 사람들이 <10년>이라는 제목을 ‘올해’로 바꾸지 그랬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 (웃음) 영화가 다루는 문제들이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때만 해도 그들의 과감한 시도가 홍콩 사회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5년 12월17일 <10년>은 주룽 야우마테이에 위치한 극장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에서 개봉해 연달아 매진을 기록하더니, 상영관이 점점 늘어나 600만홍콩달러(약 9억원)를 벌어들였다.
많은 홍콩 영화인들이 그렇듯이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도 최근의 홍콩 시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시위가 아직 끝나지 않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 시위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10년>처럼 정치적 이슈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지 않고, 정치적 이슈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찍는다 해도 상영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현실 문제를 다룬 영화가 얼마나 더 제작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홍콩의 젊은 영화인들이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내놓을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