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메이드 인 홍콩> 프루트 챈 감독, “홍콩영화계는 겨울잠을 자고 있다”
2020-03-12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프루트 챈 감독은 서독제 기간 내내 홍콩 시위를 보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11월 24일 홍콩 지방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한 뒤 열리는 첫 시위였던 까닭에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22여년 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그는 <메이드 인 홍콩>(1997)을 시작으로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1998), <리틀 청>(1999) 등 반환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다. 서독제에서 상영된 <메이드 인 홍콩>은 그의 반환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차우(이찬삼)와 그의 친구들의 방황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통해 반환 직전의 홍콩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날 무엇을 했나.

=불꽃놀이(반환 기념 축제)를 찍었다. 인민해방군이 홍콩 국경을 넘어오는 풍경을 찍었다. 그때 찍은 장면들이 이 영화에 삽입됐다.

-인민 해방군이 홍콩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시대가 바뀌었구나. 중국으로의 반환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변화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누구는 할리우드로, 또 누구는 중국 본토로 건너갔지만 당신은 홍콩에 남았는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웃음) 홍콩이 자유롭고, 내 고향이며, 이곳에서 영화를 찍는 게 더 좋았다. 지금은 더 그렇지만, 홍콩 감독들은 독립영화만 찍으면 먹고살기 힘들다. 생존을 위해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광고, 상업영화, 드라마 등 다른 매체도 찍어야 했다.

-당시 <메이드 인 홍콩>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뭔가.

=반환은 홍콩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전환점이다. 그럼에도 당시 감독들 사이에서 반환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찍으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여학생이 한낮 도심에서 투신자살한 소식을 다룬 기사를 보았다. 그녀가 죽기 직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에게 편지를 보내고, 부모와 친구에게 유서를 각각 남겼다고 한다. 영화 속 차우가 이 유서를 가지고 오면서 악몽을 꾸기 시작하는 설정에서 이야기를 출발시켰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의미라면 불과 8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유덕화가 설립한 포커스 필름스가 투자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스타 배우가 참여하면 제작을 진행하는 데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찍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유덕화가 의견을 많이 낼까봐 촬영이 끝난 뒤 완성본을 보여주었다. 유덕화가 마음에 들어해 투자를 받게 됐다.

-이 영화의 인기는 진짜 홍콩의 젊은 세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국양제는 중국과 홍콩 두 국가가 서로 양보하면 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반환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많은 변화가 오겠구나 싶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당시 홍콩 청년들만 몰랐다.

-한때 홍콩과 중국을 오가며 작업한 적 있지 않나. 그러한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중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홍콩 문화는 중국의 그것과 많이 달라 특정 소재를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제약도 많았다.

-홍콩 시위를 지켜보면서 1997년 반환 직전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나.

=지금 청년들이 우리 때보다 더 적극적이고 용감하다.

-홍콩 감독들이 이러한 풍경을 지켜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을 것 같다.

=영감을 많이 받지만 이런 소재로 영화로 만들면 상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홍콩영화계는 현재 겨울잠을 자고 있는 상태다.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른다. 투자자들도 조심스럽다. 상업영화는 검열을 통과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독립영화는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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