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위쳐> 정킷 현장에 가다
2020-03-12
글 : 김소미
판타지의 최종 진화를 기대하라

지난 12월 20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위쳐>가 공개됐다. 폴란드 작가 안제이 삽코프스키의 원작 소설과 동명의 인기 게임으로 이미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위쳐>는 시즌1을 공개하기도 전에 시즌2 소식을 발표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의 새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방대한 세계관을 미리 소개하기 위해 제작진이 아시아 영화기자들을 필리핀 마닐라 정킷에 초대했다. 정킷은 영화기자나 평론가가 영화사의 초대에 응해 작품을 미리 감상하고 배우들과 인터뷰 기회를 갖는 행사를 말한다. 돌연변이 ‘위쳐’ 종족인 주인공 리비아의 게롤트를 연기한 배우 헨리 카빌과 프로듀서 로런 슈미트 히스릭이 이틀간 바쁘게 프레스 컨퍼런스와 레드카펫, 인터뷰 일정을 소화했다. 그들과 동행한 마닐라 정킷 현장과 인터뷰를 전한다.

12월 12일 오전에 열린 <위쳐> 프레스 컨퍼런스에는 배우 헨리 카빌과 쇼러너 로런 슈미트 히스릭이 자리했다. 쇼러너는 여러 명의 감독과 작가, 프로듀서가 함께하는 TV시리즈물에서 메인 프로듀서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로런 슈미트 히스릭이 작가로도 참여해 작가 6명이 함께 집필한 <위쳐>는 1990년대부터 전세계 22개국에서 번역된 폴란드 작가 안제이 삽코프스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2007년 비디오게임이 출시돼 국내에서는 소설보다 게임의 유명세가 높지만, 소설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게임과 달리 드라마 <위쳐>는 원작 소설의 재현에 집중한 차이가 있다. 2017년 9월 착수한 넷플릭스 <위쳐> 제작진을 대표해 로런 슈미트 히스릭은 “그동안 존재했던 수식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시대적으로는 중세, 배경적으로는 유럽이라는 개념을 찾을 수 있지만 기존에 존재했던 세계사의 맥락에서 최대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위쳐>만의 새로운 대륙을 감상해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인간과 여러 다른 생명체가 하나의 대륙에 모여 사는 세계, 그중에서도 위쳐는 뛰어난 검술과 마법, 그리고 불로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게 된 돌연변이 인간이다. 차가운 은발에 노을빛으로 빛나는 두눈, 검은 갑옷을 입은 위쳐 게롤트 역의 헨리 카빌은 그 위협적인 면모로 인해 인간에게 배척되고 멸시받는 고독한 영웅을 연기했다. “<위쳐>의 세계는 암울하지만 그 속에 현실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반영돼 있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느꼈다”는 게 헨리 카빌이 <위쳐>에 단숨에 반한 이유다.

“최종 진화를 한 기분이다.” 컨퍼런스 직후 필리핀 마닐라의 복합 쇼핑몰인 아얄라몰에서 열린 대형 레드카펫 행사에서 헨리 카빌은 판타지 장르의 팬으로서 이번 작품에 배우로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참 전부터 원작 소설과 게임의 큰 팬이었던 헨리 카빌은, 넷플릭스의 제작 소식을 들은 직후 제작진에게 연락해 캐스팅 의사를 전했다. 이후에도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을 재촉하는 탓에 제작진이 기쁘고도 다소 난처했다는 비화가 이번 마닐라 정킷의 가장 즐거운 스몰토크였을 정도다. 이날 카빌은 뜨겁게 달아오른 팬 레드카펫 현장에 어떻게 끊임없이 불씨를 던질지를 잘 아는 스타였다. <맨 오브 스틸>(2013) 이후 DC의 슈퍼맨으로 자리잡은 헨리 카빌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저스티스 리그>(2017),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 등을 거쳐 신사적인 영국 배우의 이미지와 출중한 액션 능력으로 기억되는 배우다. 필리핀 현지 팬들은 물론, 영화 <반지의 제왕>,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견줄 만한 판타지 대작의 출현에 장르 팬들이 집결한 레드카펫은 3시간이 훌쩍 넘도록 인산인해를 이뤘다.

레드카펫 이후에는 <위쳐> 시사회가 열렸다. 소설의 전개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드라마 <위쳐>는 게롤트뿐 아니라 왕국의 공주인 시리(프레이아 앨런)와 마법사 예니퍼(아냐 칼로트라)의 이야기를 동시에 따라간다. 몰락한 왕국으로부터 탈출해 숲속으로 도망친 공주 시리는 비명을 지르면 매우 강력한 물리적 파장이 발생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고, 엘프의 피가 섞인 예니퍼는 꼽추로 태어나 편견 속에서 고통받다가 마법학교에서 자신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강인한 내면적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전면에 부각된 것은 이번 TV시리즈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 중 하나다. 각각 2주, 30년, 수백년에 걸친 서로 다른 세개의 타임라인이 동시에 펼쳐지며 세 사람이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연대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직접 확인한 <위쳐> 초반부에 가장 눈에 띈 것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종족과 짐승의 묘사였다. 에피소드 첫화 오프닝에서 늪에 사는 일종의 거대 거미인 ‘키키모어’가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린 공주가 흉측한 괴물로 변한 ‘스트리가’, 신트라 왕국의 공주에게 청혼하기 위해 나타난 ‘고슴도치 경’, 슬라브 민담에 나오는 괴물을 재현한 ‘바실리스크’, 기독교가 묘사하는 악마의 형상에 가까운 ‘토르퀘’ 등 시각적으로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상상력의 결과물을 에피소드별로 쉬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위쳐>의 독보적인 매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처럼 <위쳐> 속에서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인 것처럼 보인다. 이외의 모든 존재와 배경은 다분히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뒤덮여 있다. <위쳐>는 잠시 일상을 잊고 거대한 모험과 여정의 숙명에 기꺼이 손을 내맡길 수 있는 판타지 장르의 정통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헨리 카빌과 로런 슈미트 히스릭은 공통적으로 이 시리즈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겹겹의 베일을 벗겨내면 결국 신분과 종족, 능력이 상이한 세명의 인물인 게롤트, 시리, 예니퍼가 서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구원을 찾는다는 서사가 나타난다는 게 <위쳐>라는 모험의 목표점일지 모른다. 오감을 긴장시키는 위협적인 세계의 이면에는 결국 운명적 상대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자아의 탐색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어지는 헨리 카빌과의 인터뷰에 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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