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디펜더스> <엄브렐러 아카데미> 등 그동안 넷플릭스와 제작자이자 작가로서 꾸준히 협업해왔다.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이번에 네 번째다. 아무래도 가장 소중한 건, 제작진에게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함께 작업해보면 역량과 가치 중심의 회사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비전이라고 통칭하는 것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며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에 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협조적이었다. <위쳐> 프로덕션이 출발한 지 이제 27개월째인데, 그동안 내내 온전한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사업이 아니라 개별 작품에 관해 접근하는 회사다.
-원작 소설의 팬들이 이번 TV시리즈를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차별점은 어떤 것들일까.
=북미의 경우 원작 소설의 유명세와 인기가 상당한 편인데, 기존 독자들이 TV시리즈를 본다면 주요 대사들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구현하려 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작가가 묘사해둔 세계를 정확히 반영하려 노력했다. 마법사 예니퍼에 관해선 책에서 흩어져 있는 것들을 새롭게 조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녀가 강력한 마법사가 되기까지 어떤 성장환경에서 자라났는지,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지, 아레투자 마법학교에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등등을 플래시백에 가깝게 정리해서 캐릭터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매우 신화적이고 미신적인 요소들이 다분한 세계가 펼쳐진다. 시각적인 구현에 있어서 주력한 부분이 있나.
=<위쳐>는 게롤트가 괴물 사냥꾼이라는 설정에 맞춰 에피소드 초반부터 대뜸 괴물이 등장한다. 사실 그동안 나온 판타지영화나 드라마를 잘 살펴보면, 괴물의 등장을 하이라이트 부분에 숨기는 경향이 있다. CG 작업이나 여러 방면에서 공들여야 하는 장면이고, 관객이 놀랄 만큼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위쳐>를 작업하면서 제작진 모두가 그로테스크한 괴물 표현에 욕심이 있었고 가능한 한 자주, 그리고 다양한 생명체를 보여주고자 했다.
-게임과 영상 콘텐츠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다. 영화 같은 게임, 게임 같은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액션신을 필두로 <위쳐>의 특정 신을 디자인하면서 관객이 마치 그 상황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노린 장면도 있나.
=게임의 경우 당신이 직접 캐릭터가 되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TV시리즈를 볼 땐 한 걸음 떨어져서 줄거리를 예측하면서 모든 여정을 지켜봐야 하니까 오히려 작가의 위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위쳐> 게임을 보고 놀란 점은, 게임의 세계가 예상보다 훨씬 아름답게 구현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종류의 판타지 장르는 으레 어둡고 어지럽고 불결할 것이라는 편견을 깬 선택이었다. 전쟁터에서 괴물과 싸울 때도 장르적인 재미가 있겠지만, 조용한 아침에 가족들의 품에서 깨어날 때의 아름다움도 이 장르만의 매력이라는 사실을 게임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개인 SNS 계정의 프로필에 “엄마, 검을 든 여자들을 사랑함”이라는 문구가 있어 인상적이었다.
=1980년대에 남성 작가에 의해 처음 쓰인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한 여성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건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주변에서 보아온 살아남은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많은 남자들이 죽었고, 여성들이 가정과 가족과 일터의 중심이 됐다. 그들의 생활력과 독립성이 작가에게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특히 왕국 공주였던 시리의 초능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무언가를 계속해서 지속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떤 경우든 다시 딛고 일어서서 모험을 계속하는 용기가 시리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