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에서 10·26 대통령 암살사건 발생 40일 전의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
2020-03-12
글 : 송경원
암살에 대한 거대한 상상

1월 22일 개봉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사건 발생 40일 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7)을 통해 권력과 욕망을 정면에서 해부했던 우민호 감독이 이번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변곡점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간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누아르, 스릴러, 드라마 등 여러 장르를 능숙하게 변주하는 가운데 절제된 표현으로 관객을 빨아들이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배우들의 연기가 이 영화를 세련되고 위험한 누아르로 완성시켰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논쟁의 여지도 충분하다. 여기 좋은 의미에서 질문을 유발하는 문제작, 대한민국 현대사를 경유하여 인간의 욕망을 해부하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해석의 결을 한층 깊게 해줄 우민호 감독의 인터뷰도 더했다.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우리의 화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실화가 아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책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군사정권과 함께 설립된 한국 최초의 첩보기관이자 권력의 중심에서 독재정권의 방패막이가 됐던 초법적 집단 중앙정보부의 속살을 파헤친다. 김충식 기자가 1990년부터 2년 2개월간 <동아일보>에 연재한 방대한 분량의 취재기 중 우민호 감독은 단 40일간의 기록을 선택했다. 영화는 대한민국 역사의 향방을 갈랐던 운명의 그날, 1979년 10월 26일을 기점으로 박정희 대통령 피살이 있기까지 4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간다. 역사는 질문한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왜 코리아게이트를 터트렸는가. 정권의 비리를 폭로한 김형욱은 1979년 파리에서 어떻게 실종되었는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왜 박정희를 쏠 수밖에 없었는가.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의 질문에 답을 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픽션이라는 선을 명확히 긋고, 상상이 허락하는 범주 안에서, 역사 한가운데 내던져진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다.

실화와 거리를 두다

이것은 실화가 아니어도 충분히 성립하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어야 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실화와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도입부 자막을 통해 “이것이 재구성한 이야기”이며 “상상력을 가미한 픽션”임을 명백히 선언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이름도 모두 바꾸었다. 현재 중앙정보부장은 김재규가 아니라 김규평(이병헌)이고, 배신을 하고 해외에서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형욱이 아니라 박용각(곽도원)이다. 박정희는 그저 박 대통령(이성민)으로 불리고, 차지철을 모티브로 한 다혈질의 경호실장은 곽상천(이희준)이라서 꽉꽉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디테일한 설정도 다수 바뀌었다. 육군사관학교 선후배인 김재규와 김형욱과 달리 김규평과 박용각은 동년배의 친구로 그려진다. 우민호 감독은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뼈대로 남겨둔 채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박용각은 김규평이 내몰릴지도 모를 미래이고, 김규평은 박용각이 지나온 과거다. 데칼코마니처럼 배치된 두명의 중앙정보부장이 처한 상황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

영화가 던지는 궁금증은 간결하다. 한때 한배를 탔던 군사 쿠데타의 동지들이 어떤 이유로 서로를 배신했고 견고했던 권력은 어떻게 하루아침에 무너졌는가. 10월 26일 박정희 암살은 역사적 ‘사건’으로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그 일에 연루된 인물들의 심리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의 분기점에서 거창한 의미나 명분을 찾는 대신 인물들의 흔들리는 순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발굴한다. 이 영화가 굳이 픽션을 내세우고 가명을 쓰면서까지 실화와 거리를 벌리고자 하는 건 어쩌면 역사란 이름 앞에 습관적으로 붙인 인과율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일 것이다.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인물들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고 냉담한 시선으로 조롱의 보고서를 썼다면,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은 집착, 배신, 증오, 회의 등 공감할 법한 감정의 눈높이로 별것 없는 수컷들의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군사독재정권의 꼭대기에 위치한 그들의 행동원리는 영화 속주한 미국 대사의 표현처럼 마피아나 갱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민호 감독이 그들의 심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더듬어가기 위해 누아르의 틀을 빌린 건 자연스런 선택인 셈이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김규평이 박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으로부터 문을 연다. 김규평은 왜 박 대통령을 살해했을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시점은 그날로부터 40일 전 미국 워싱턴 프레이저 청문회장이다.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의 부패와 비리를 고발하자 김규평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간다. 혁명의 동지였던 김규평의 설득에 박용각은 직접 작성한 ‘혁명의 배신자’란 타이틀의 원고를 넘겨주면서 경고한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이외 개인비밀정보대를 두고 있으며 별도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규평은 이를 쉽사리 믿지 않지만 점차 자신을 멀리하고 경호실장을 가까이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불안의 그림자는 점차 짙어간다.

이것은 아무도 믿지 않는 절대 권력자 아래 2인자들, 아니 2인자를 욕망하는 이들의 지리멸렬한 암투에 관한 이야기다. 감독의 전작 <마약왕>이 장면마다 멈추고 인물의 심연 속으로 자맥질하고자 했던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훨씬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구성이 눈에 띈다. 쓸모를 다하고 버림받은 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밀려난 한때의 2인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며 2인자 자리를 치고 올라오는 경호실장 그리고 막바지에 달한 정권의 운명을 직감하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려는 현 2인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경쟁을 벌인다. 이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필요한 위치에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알아서 흘러간다. 한마디로, 이들 뒤에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깔지 않더라도 내적인 구성만으로 충분히 설득이 되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은 이들을 좁은 세계에 격리시킨 채 그들의 발버둥을 가만히 지켜본다. 도피 중인 박용각을 제외하면 <남산의 부장들>의 무대는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로 제한되는데,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의 세계가 실상 좁고 보잘것없음을 장르적인 장치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한정된 무대 위에서 수컷들은 무리의 우두머리로부터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한 맹목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배우의 얼굴을 통해 보이는 것들

워싱턴에서 만난 김규평과 박용각은 서로에게 “너 왜 혁명했냐?”고 묻지만 그들은 이제 서로 누가 혁명을 하자고 먼저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부정권이 주문처럼 되뇌는 혁명의 대의, 충성과 신뢰 같은 가치들은 권력에서 밀려날수록 허망한 민낯을 드러낸다. 이들은 틈만 나면 ‘혁명의 대의’를 입에 올리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역시 혁명의 실체 따윈 관심이 없다. 영화는 그것을 그저 그들이 부여잡은 낭만과 변명 정도로 위치 시킨 후 막다른 골목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칠 뿐이다. 실상 이들을 움직이는 대명제는 힘의 논리와 불신이다. 박 대통령은 명령하지 않는다. 그저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넌지시 먹이를 던져줄 뿐이다. 남산의 부장들과 수많은 실장들이 그 달콤한 한마디에 알아서 기었다. 그것이 그들의 혁명이고 대의였음을 영화는 김규평의 행적을 통해 드러낸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구태여 설명하는 대신 그저 보여준다는 거다. 극적으로는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다수 열어두었지만 형식적으로는 절제된 양식을 선보이는 이 영화는 매 상황 거리를 둔 채 심리를 조율한다. 음악은 제한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사용되고 인물들의 전사(前史)를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분위기로 맥락을 유추할 수 있도록 장면의 호흡을 열어둔다. 박 대통령과 김규평이 지나온 쿠데타의 과정은 그저 두 사람이 가만히 마주보며 나누는 시선과 한 호흡 쉬어가는 박자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장면을 디테일로 꽉 채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우민호 감독은 이번엔 반대로 힘을 빼고 여백을 중시한다. 인물에, 정확히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감독이 마련한 여백의 무대를 꽉 채우는 건 이성민, 이병헌, 곽도원, 이희준 네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남산의 부장들>이 감정을 조각하는 방식은 단순명료하다. 절대 권력자를 향한 김규평의 애틋한 마음은 궁정동 한구석 벽을 사이에 두고 비를 쫄딱 맞은 채 도청을 할 때 애처롭게 그려지고, 궁정동 연회장에서 경호실장에게 모욕을 받은 김규평의 분함은 꽉 다문 턱 근육의 움직임으로 모두 설명된다. 이 영화가 재구성하는 것은 광기 어린 역사의 풍경이 아니라 때리면 아프고 내몰리면 불안해지는 연약한 사람의 마음이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누아르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장르의 클리셰를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인물의 흔들림, 그러니까 미세한 균열을 포착하고 뒤흔들기 때문일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궁정동에서의 긴박감 넘치는 암살 장면보다 차라리 마주 보는 두 인물의 옆얼굴을 잡아내는 수평숏들이다. 김규평과 박용각이 마주볼 때, 김규평과 박 대통령이 마주 볼 때 영화는 숏/역숏 대신 두 사람의 얼굴을 좌우대칭이 되는 거울처럼 한숏에 잡아낸다. 본질적으로 한 우물에서 태어났고 형태가 닮은 듯하지만 이제는 전혀 달라진, 결코 맞닿을 수 없는 두 존재는 실화와 영화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남산의 부장들>은 여러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이 영화에 대해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 실화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방식에 대해 비판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영화의 정치적 태도를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우민호 감독이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시대가 아닌 사람이고, 역사의 거인이 아니라 불안에 무너지는 초라한 남자들이다. 그 비할 데 없는 낙차가 끝내 우리를 매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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