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와 연쇄살인마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범죄수사드라마 <프로디걸 선>.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 새롭게 재정비한 <FOX>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이다. FOX 엔터테인먼트와 벌랜티 프로덕션, 워너브러더스 텔레비전이 공동 제작했으며 지난해 9월 <FOX>에서 2편의 파일럿이 방영된 이후 시즌 첫 번째로 22개 에피소드의 풀시즌 오더를 받았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지저스 역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톰 페인과 <닥터 두리틀> <패신저스> 등에서 열연한 마이클 신이 주연을 맡아 부자 관계로 등장한다. 연쇄살인마와 프로파일러의 대립은 너무도 익숙한 설정이지만, <프로디걸 선>은 여기에 가족사를 덧입혀 기존 수사물과의 차별화를 꾀한다. 또한 <프로디걸 선>은 가을 시즌 1849타깃 시청률 1위라는 쾌거를 이루며 고유의 장르적 매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충성도 높은 팬덤 또한 두텁게 존재함을 증명해냈다. 2월 7일 캐치온에서 첫 방송되며 2월 10일 캐치온 VOD 및 모바일 앱에서 동시 공개된다.
같은 듯 다른 부자의 공조수사
<프로디걸 선>의 공식 포스터는 극의 주요 서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과일 껍질처럼 벗겨낸 말콤(톰 페인)의 표피 사이로 속살처럼 드러난 마틴(마이클 신). 마트료시카처럼 겹쳐져 있는 두 인물의 시선은 같은 장소에 안착한다. 말콤은 아버지 마틴의 살인마로서의 본성이 자신에게도 발현될까 두려워 사력을 다해 그로부터 도망쳐왔다. 그러나 피의 운명은 가혹하리만치 질겨서, 그를 자석처럼 끌어와 다시 한번 마틴 앞에 세운다. 둘 앞에 펼쳐진 살인사건은 마틴에게 피가 끓는 흥미로, 말콤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가온다.
말콤은 FBI의 프로파일러다. 때로 의욕이 너무 앞서 자신과 동료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하는데 그 빈도가 잦아지자 FBI는 그를 권고 퇴사시킨다. 여기에는 그가 “외과의”라는 별칭의 유명 연쇄살인마의 아들이며 과거사로 인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또한 참작되었다. 이후 그는 뉴욕경찰(NYPD)의 자문 요원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맡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버지의 카피캣임을 깨달은 말콤은 자문을 얻기 위해 마틴을 찾아간다. 10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함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프로디걸 선>은 여러 수사드라마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과학수사물계의 대부인 <CSI> 시리즈로 시작해 ‘레드존’이란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멘탈리스트>, 단시간에 수많은 단서를 조합해 범죄를 재현하는 <셜록>, 범죄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사건을 풀어가는 <마인드 헌터> 등 굵직한 작품들의 흥행 요소들을 영리하게 차용한다. 특히 연쇄살인마와 프로파일러의 대척 관계라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셜록> 이후 일종의 클리셰처럼 자리 잡은 터라 새롭진 않다. 그렇다면 <프로디걸 선>은 앞선 작품들의 동어반복일까. 이런 우려를 감지한 듯 <프로디걸 선>은 ‘가족’이란 패를 꺼내든다. 드라마는 범죄와 수사 양극단에 위치한 두 인물을 부자 관계로 엮으며 수사물이라는 레드오션에서 자기 영역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영역의 중심에 말콤을 세운다.
사건의 중심에 선 프로파일러
말콤은 수사드라마 속 인물치고 밀도가 높다. 이유인즉 그가 다양한 시공간과 사건들의 교차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마틴을 밀고한 장본인이다. 그가 아버지의 ‘취미방’에서 시체가 담긴 박스를 발견한 것이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다. 아버지는 체포되었으나 해당 시체는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부모는 그가 헛것을 봤다 말하지만 그는 반복해서 박스 앞으로 불려가는 악몽을 꾼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말콤이 아버지의 본성을 확인한 동시에 그 본성이 자신에게도 존재할까 두려워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은 그의 무의식을 지배하며 그가 여타 프로파일러 캐릭터들과 다른 궤적을 그리게 한다. 매 순간 냉정함을 유지하는 기존의 프로파일러들과 달리 말콤은 감정적이며, 사건을 과격하게 해결한다. 사건 장소에서 의견을 달리한 보안관을 폭행해 FBI에서 해고당하고, 폭탄에 묶인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 손을 자르는 식이다. 잘린 손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병원으로 달리는 말콤의 눈은 섬 할 만큼 반짝인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해 기뻐서가 아니라 혹시 피를 보고 흥분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혹시’라는 의구심은 말콤 스스로 그러했듯이, 시청자의 내면에 자리 잡은 채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게 만든다. 살인마의 피가 흐르는 수사관의 숙명인 셈이다.
또한 그는 낮에는 현재의 사건을, 밤에는 과거의 사건을 탐구하며 시공간을 확장하는 인물이다. 낮에는 NYPD의 프로파일러로서 사건을 해결하고, 밤에는 꿈속에서 과거 실종된 시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아버지와의 반복된 만남은 마들렌처럼 그의 과거 기억을 조금씩 불러일으킨다. 어둠 속의 조각들이 짜맞춰지면서 그는 사건의 외부자로 물러나 있던 어머니가 누구보다 깊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 그에 얽힌 인물과 사연 등 말콤은 개별자로 존재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실로 꿰어가며 극을 이끌어간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따라가기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말콤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부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이 적다. 특히 마틴의 경우, 사건 발생-조언-해결이라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 너무 얕게 소비된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말콤 역시 짜임새가 헐거운 인물이다. 셜록처럼 예리하게 단서를 찾지만 그만큼의 논리가 부족하다. 드라마 구조상 시청자는 말콤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논리가 약할 경우 충분히 납득하며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말콤은 단순한 프로파일러가 아니다. 그는 매회 아버지의 자문을 통해 현재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과거 사건을 추리할 단서를 얻는다. 말콤은 시공간을 초월해 자기 존재와 사건을 탐구하는 탐험가이자, 그 미지의 영역으로 시청자를 이끄는 인도자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살인마의 행적을 뒤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말콤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지, 아니면 거리를 둘지 시청자는 알 수가 없다. 그가 자기 심연의 퍼즐을 완성한 뒤엔 어떻게 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마지막까지 의심하고 궁금해하며 그를 따라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