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②]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감독, “엔딩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2020-03-12
글 : 이주현
작품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 후보 오른 <작은 아씨들>의 그레타 거윅 감독 인터뷰
<작은 아씨들> 현장에서의 그레타 거윅(맨 왼쪽) 감독.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의 공동 각본가이자 배우로 활동해온 그레타 거윅은 자전적 영화 <레이디 버드>(2017)로 감독으로서의 재능까지 뽐낸다. 꿈을 좇아 돌진하는 소녀들, 고집불통이지만 사랑스러운 여성들을 창조하고 연기해온 그레타 거윅은 두 번째 영화로 <작은 아씨들>을 선보인다. <작은 아씨들>에도 어김없이 야망과 현실 사이, 가난과 성공 사이에서 열심히 뜀박질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19세기 소설 <작은 아씨들>을 그저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소녀의 성장기이자 가족드라마로 생각하기 쉽지만, 소설은 결혼 이외의 출구를 찾고 싶은 여성 작가 조의 온건한 투쟁기이기도 하다. 그레타 거윅의 손을 거쳐 각색된 이야기는 더욱 세련된 화법으로 자매애와 사랑, 결혼과 성공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말을 서두에 던지고 시작한다. 작가로서 야망을 펼쳐 보이는 둘째 조(시얼샤 로넌), 배우가 되고 싶지만 사랑과 결혼을 택하는 첫째 메그(에마 왓슨), 가족 중 가장 선한 마음을 지녔지만 몸이 약한 베스(엘리자 스캔런), 어리다고 무시당하기도 싫고 화가로서도 성공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그레타 거윅은 이 모든 캐릭터에 애정을 담아 “소설의 주인공이 여자면 결혼을 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설교를 반박한다. <작은 아씨들>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의상상, 음악상까지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은 아씨들>을 향한 칭찬은 대개 모던한 각색과 배우들의 생기 넘치는 연기와 잘 조율된 프로덕션이다. 지난 1월 30일, 미국에 있는 그레타 거윅과 전화로 <작은 아씨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 지명을 축하한다. 감독상 후보에 들지 못한 건 몹시 아쉽다.

=고맙다.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정말 자랑스럽고 모두에게 감사하다. 감독상 얘기를 했지만, 솔직히 지금의 결과에도 정말 행복하다. (웃음)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 중 당신이 어릴 적 가장 좋아한 인물은 누구인가.

=언제나 조! 변함없이 조였다. 어쩌면 조 마치라는 놀라운 캐릭터를 만났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는 내게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나의 소녀는 조 마치다.

-영화를 보면서 조와 에이미가 실은 굉장히 닮은 캐릭터라 느꼈다.

=조와 에이미는 꿈과 야망을 가진 소녀들이고, 그런 점에서 두 캐릭터는 닮았다.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소녀들과도 닮았다. 조와 에이미는 동전의 양면 같은 캐릭터라 생각하는데, 플로렌스 퓨가 에이미 역으로 합류하면서 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에이미가 가진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에이미가 피상적인 캐릭터가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각색 과정에서 공들인 점은 무엇인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릴 적 이 소설을 무척 사랑했다. 소설의 이야기가 나의 일부라 느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소설을 다시 읽고는 충격을 받았다. <작은 아씨들>이 이렇게나 모던한 소설인지, 이렇게나 동시대적인 이슈를 다루는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이 늘 고민하던 문제를 소설 역시 다루고 있다. 저작과 저작권의 문제라든지, 여성과 예술과 돈에 대한 생각들. 할 수만 있다면 그 주제를 영화에 그대로 반영하고 싶었고, ‘포스트모던 <작은 아씨들>’로 재창조하고 싶었다.

-얘기한 것처럼 19세기 여성의 고민과 21세기 여성의 고민이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게 신기하다.

=맞다. 19세기의 그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다. 그런 이유로 그때의 언어를 지금의 언어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부담을 덜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결말을 놓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길 바랐나.

=엔딩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고, 그 과정을 즐겼다. 우선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생애가 실제로 어땠는지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려 했다. 루이자가 자신을 투영해 창조한 캐릭터인 조와 그의 생애는 달랐기 때문인데, 조는 결혼을 하고 글쓰기를 멈추지만 루이자는 글쓰기를 계속했고 저작권을 지키려 노력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사실 어릴 땐 루이자 메이 올컷의 삶을 잘 몰랐다. 그저 책으로 <작은 아씨들>을 즐겼고, 그건 픽션이고 캐릭터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부분들을 마주했다. 루이자가 창조한 캐릭터와 그녀의 실제 삶을 비교하고 조사하면서, 여러 면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조 마치를 보면서 당신이 이전에 창조한 캐릭터와 작품들을 떠올렸다. 조와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선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과 엄마가 대화하는 장면이 떠올랐고, 영화 초반 조가 뉴욕의 거리를 뛰어가는 장면에선 <프란시스 하>에서 프란시스가 뉴욕의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흥미를 느끼는 주제가 비슷한 것 같다. 여성의 이야기, 어디론가 향하는 여성의 이야기,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엄마나 친구와의 관계처럼 여성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만나면 언제나 깊이 빠진다.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고. 달리고 춤추는 여성들. 루이자 메이 올컷 역시 달리고 글쓰는 여성이었다. 달리기가 단순히 달리기 이상을 의미한다 생각했고, 그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작은 아씨들>에는 달리기 장면뿐 아니라 춤추는 장면도 여러 번 등장한다. 조와 로리가 처음 만나는 파티 장면도 마치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연출됐다.

=댄싱 장면을 연출할 때 행복했다. 뮤지컬 장면을 연출하는 게 꿈이기도 했고, 이번 영화에선 음악이 없는 뮤지컬을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즐겁게 촬영했다.

-시얼샤 로넌과는 <레이디 버드>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레이디버드> 때도 그랬지만 <작은 아씨들>에서도 시얼샤 로넌은 눈부신 연기를 선보인다.

=시얼샤와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생긴 믿음이 있다. 시얼샤가 조마치를 얼마나 훌륭히 연기할지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연기를 스크린으로 보는 건 내게도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로리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도 <레이디 버드>에서 함께했는데, 같이 작업하면 기분 좋고 사랑스런 배우다. 메그 역의 에마 왓슨 같은 스타 배우의 합류도 특별했고, 신인인 플로렌스 퓨와 엘리자 스캔런 모두 재능 많은 배우들이었다. 놀라운 조합이었고, 이 모두와 함께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그리고 오 마이 갓! 메릴 스트립은 최고였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웃음)

-<작은 아씨들>을 보게 될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영화는 어떤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세계, 꿈과 사랑과 야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15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그 책에서 지금의 나와 관계된 이야기를 발견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이야기다. 한국의 소녀들도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자기를 알리면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하고 춤췄으면 좋겠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책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사진 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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