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아마 올해 당신이 볼 그 어떤 작품보다 가장 많은 물음표가 붙고,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인 18살 소년이 성매매 알선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포주’가 됐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온갖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 N번방 사건 이후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인간수업>은 극 초반 지수(김동희)의 불우한 가정사를 공들여 묘사한다.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민희(정다빈)가 지수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는 왕철(최민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한다는 설정은 또 어떤가. 현실의 성매매 여성이 포주에게 기대면서 고착화되는 착취 문제를 생각했을 때, 도대체 이 캐릭터들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지 제작진의 진의를 묻고 싶어진다. 동시에 <인간수업>은 소재를 단순 흥밋거리로 소비했다거나 가해자 미화라는 키워드로 서둘러 정리하기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얘기를 담는다. 규리(박주현)가 남자 선배들을 성매매로 유인하자고 제안하는 신이라든지 자기 연민에 빠져 속죄를 거부하는 지질한 지수를 보는 카메라의 태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회차를 지나 충격적인 엔딩에 이르고 나면, 아마 제작진은 마지막회 후반 20분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을까라는 어렴풋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요컨대 <인간수업>은 “소재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너무 부족했다”는 비판이든 “한국판 <브레이킹 배드>”라는 옹호든 치열하게 이야기할수록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입소문을 타고 한국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올라 각양각색의 감상이 쏟아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인간수업>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기 하루 전, 시리즈를 제작한 윤신애 스튜디오 329 대표와 김진민 감독을 만나 묻고 들은 내용들을 정리해보았다. 9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제작과 연출의 변이 드라마가 야기한 혼란을 각자의 입장에서 정리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길 바란다. 이는 제작진의 코멘트를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시청자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유효할 것이다.
1. 넷플릭스, 기회의 땅
오래전부터 진한새 작가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있던 윤신애 스튜디오 329 대표는 <인간수업> 1부 대본 초고를 보자마자 “무조건 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는 절대 다룰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이 프로젝트는 곧장 넷플릭스로 향한다. “넷플릭스에 영문 버전 스크립트를 2부까지 보냈다. 넷플릭스쪽에서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지더라. ‘어떻게 이 드라마를 할 생각을 하게 된 거냐, 솔직히 한국에서 이런 대본을 받을 줄 몰랐다’면서. 그리고 왜 마약이 아닌 성매매를 소재로 다뤘냐는 질문도 했다. 미국에서는 마약이,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심각한 문제인 거다.” 그리고 윤신애 대표는 13년 전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함께했던 김진민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사람을 갈아 넣어 드라마를 만들던 시기, 연출자로서 내 모든 걸 쏟아부어서 만든 작품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제작 환경 핑계를 대며 대충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이렇게 나이를 먹다가 내 연출 인생이 끝나는 거 아닌가 싶던 찰나 <인간수업>을 만났다. 처음에는 ‘대표님 정말 이걸 할 거냐, 잘못 다루면 대표님은 회사 문 닫고 나는 연출 인생 끝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진민 감독을 끌어들인 것은 연출자로서 놓칠 수 없는 찬스라는 직감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드라마는 평생 기다려도 나에게 잘 오지 않을 작품이다. 믿을 만한 제작자에, 넷플릭스에서 한다니 뛰어든 거다.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윤신애 대표님이라면 선정적인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었다.” 윤신애 대표는 “넷플릭스와 함께할 때는 대본이 미리 나온다거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야기는 어렵고, 배우들은 전부 신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감독의 연출 역량이 고스란히 보여질 수 있다”며 김진민 감독의 말을 거들었다. 김진민 감독은 “10편이 넘는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다른 작품을 보고 비판하기도 하고 내뱉은 말도 많다. 그렇다면 충분한 시간과 돈을 준다면 뭘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내가 대답을 해야 했다”며 <인간수업>에 연출자로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2. 성매매 ‘이후’를 다룬 드라마
<인간수업>의 주인공인 18살 소년 지수(김동희)는 조건만남 알선 브로커다. 설정만으로도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에 드라마측은 마케팅 과정에서 이 내용을 전혀 노출하지 않았을 정도다. “성매매 자체가 아닌, 성매매 그 이후의 문제를 조명하는 드라마”(김진민), “성매매나 폭력적인 부분이 <인간수업>의 포인트가 아니”(윤신애)라는 기획 의도를 설득하기 위해 윤신애 대표는 스탭 구성부터 고민해야 했다. “이 이야기에 처음 접근했던 난 여성이지만, 현장은 다르다. 카메라앵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며 의도적으로 여성인 엄혜정 촬영감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쪽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라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기술적 기준을 맞출 때 많은 도움을 준 분이기도 하다. 편집실에도 오래 계셨다. 그외에도 우리가 혹여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이 프로젝트를 맡고 있지 않은 회사 내 다른 여직원들에게 대본을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았다.” 김진민 감독 역시 “남자가 갖고 있는 여성 혹은 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시선을 필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촬영감독의 고민이 작품에 많이 녹아 있을 것”이라며 그의 역할을 강조했다. 엄혜정 촬영감독은 김진민 감독에게 가출청소년의 성매매 사례가 나와 있는 책자를 건네기도 했다. 김진민 감독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여성학 등 학계에 나와 있는 논문들도 열심히 찾아봤다. 원래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읽은 진한새 작가의 대본 역시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피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3. 중년감독보다는 젊은 배우의 해석이 맞다
<인간수업>은 2018년 말부터 진행됐던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신인배우들로 주연진을 꾸렸다. 오지수 역의 김동희는 드라마 <SKY 캐슬>과 <이태원 클라쓰> 사이 <인간수업>을 촬영했고, 박주현은 사실상 이 드라마로 신고식을 치르게 됐다. “기존의 배우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김진민 감독은 “신인들은 대중에게 박혀 있는 어떤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 드라마에 더 적합하다. 내가 ‘얘네 데리고 일 한번 크게 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며 웃었다. 아마 올해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킬 캐릭터가 될 오지수는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느냐가 작품의 톤 자체를 바꾸어놓을 수 있었다. 윤신애 대표는 “진한새 작가가 뉴질랜드에 있던 고등학교 시절 아주 평범해 보이던 친구가 담배를 불법으로 파는 모습을 목격한 데서 <인간수업>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그런 극적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캐스팅을 고민했다”고 전했고, 김진민 감독은 “(김동희 배우가) 오디션장에 와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모습을 잘 이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웹드라마 <에이틴>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많이 좋아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직접 보니 스타성도 있어 보였다. 그냥 놔둬도 누군가가 데려가서 잘될 것 같은 배우인데 내가 먼저 한 거다. (웃음)” 김진민 감독은 배우들의 창의적인 연기도 극찬했다. “배우들이 내가 시키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직접 대본을 보고 해석한 대로 연기했다. 나는 그걸 관찰한 거다. 나이가 있는 작가와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연출보다는 10대에 더 가까운 배우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싶었다.”
4. 범죄에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
부모 없이 가난하게 사는 지수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성매매 알선 일을 시작한다. 가해자에 대한 서사 부여는 청소년 범죄의 원인을 특정할 위험이 있는데, 부유한 집에서 자라는 규리(박주현)가 등장하면서 이 가설은 기각된다. 후반의 전개를 보고 있다 보면 그의 불우한 형편이 범죄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수의 본성을 교묘하게 가려주던) 주눅 들고 지질한 모습을 탄생시킨 게 아닐까라는 새로운 가설에 도달하게 된다. 김진민 감독은 “범죄에 핑계를 대면 안된다. 이 세상에는 제정신을 갖고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주인공들이 사회를 냉소적으로 보고 비웃는 식으로 그려내면 이들에게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그런 냉소적인 정서를 잡아내는 건 이제 그만 연출하고 싶었다”며 대본이 범죄와 부모의 문제를 분리시키는 점이 좋았다고 언급했다. “이들의 죄를 사회문제로 치환할 수 있는 시대도 한참 지나지 않았나. 이들이 파멸하는 게 사회문제라기보다 본인의 선택과 책임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8살이면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있어 책임을 져야 한다.”
5. 나중에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농담들
7회, 지수가 대열(임기홍)에게 신체가 절단당할 뻔하는 끔찍한 일을 당한 후 그는 자신이 어떻게 성매매 알선을 하는지 노하우를 전수한다. 자칫 범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에도 이 신은 용감하게 블랙코미디로 연출됐다. 김진민 감독은 “앞서 굉장히 센 장면이 나와 긴장이 고조돼 있고, 이 뒤로는 끝까지 파멸을 향해 내달린다. 텐션을 너무 떨어뜨려서도 안되고, 리듬은 좀 살아야 하다 보니 일종의 코미디 톤으로 나왔다. 예전에 조폭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당시 이들이 농담을 가볍게 했는데 나중에 농담이 아니었다라는 걸 깨닫고 소름 끼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 걸 한번 담아보고 싶었다”며 <인간수업>에서 가장 돌출된 파트에 코멘트를 남겼다.
6. 폭력의 선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수업>에는 다양한 폭력이, 일부 장면은 결코 만만치 않은 수위로 재현된다. 김진민 감독은 “왕철(최민수)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고, 지수는 처음부터 여성을 보는 시선 자체가 아주 폭력적인 인물이다. 과도한 폭력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극중 인물들이 받은 충격의 여파가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 그 선을 생각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가령 왕철이 행사하는 폭력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게 아니지 않나. 만약에 저런 놈을 처벌한다면 어느 정도로 폭력을 행사해야 하나, 내 감정에게 직접 물어봤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실제 화면에 담긴 폭력은 늘 덜한 쪽을 선택했다. 시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이제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대중이 판단할 문제지만.”
7. 지수와 규리의 로맨스가 불발되는 이유
드라마 초반 지수가 규리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풋풋한 로맨스처럼 묘사되는 신들이 있다. 김진민 감독은 “우리는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앞서 나왔던 일부 장면들은 두 사람이 잘못된 길, 즉 성매매 알선을 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일”이라고 초반 연출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두 주인공 사이에 섹스에 대한 언급은 있는데 결국 섹스가 불발되는 것에 대해 “두 사람이 아름다운 청춘으로 미화되고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졌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지수가 규리를 의식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사실 풋풋하기보다 찌질하게 보인다. 규리가 버리고 간 과자 껍질을 소중히 모은다는 설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 김진민 감독은 “지수가 규리를 무의식적으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동시에 되게 변태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지수는 정말 나쁜 놈 아닌가. 그런 이유로 더더욱 지수를 영웅시하면 안됐다. 그가 실제로 아주 찌질하고 용기가 없다는 면을 이런 식으로 군데군데 계속 묘사해야 했다. 평소에는 모범생이고 착실한데 범죄를 저지른다는 설정만 있으면 그냥 <아메리칸 사이코>가 되는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8.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어른들
<인간수업>의 어른들은 주인공들의 파멸을 막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퇴역 군인이었다가 노숙자가 되고, 지수의 눈에 띄어 일종의 행동대장 역을 수행하는 왕철과 계왕고등학교 선생님 진우(박혁권), 그리고 학교 전담 경찰 해경(김여진) 모두 그렇다. 김진민 감독은 “왕철이 민희(정다빈)의 일을 방관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하라고 하는 태도가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어른인 척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 사회에서 어떤 어른들이 가진 태도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그를 죽인 것은 징벌의 의미였다”며 리얼리즘보다는 상징에 무게를 둔 캐릭터를 설명했다. 교육과 공권력을 대표하는 진우와 해경 역시 선의를 가진 어른들이 청소년의 비극을 막는다는 교훈적인 전개를 끌어내지 못한다. 김진민 감독은 “왕철이 죽음으로써 징벌을 받는 것은 판타지이고, 현실은 진우나 해경 같은 인물들이 대변한다. 진한새 작가가 어른 캐릭터가 가져가야 할 선을 끝까지 고민한 듯하다”고 말했다.
9. 시즌2 제작 여부는?
결말 이후 주인공들의 생사나 시즌2 제작 여부에 대해서는 윤신애 대표와 김진민 감독 모두 “넷플릭스에 달렸다”며 말을 아꼈다. 그보다 윤신애 대표는 “드라마를 보고 우리 현실을 제대로 한번 직시하고 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정말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시즌1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더 무게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