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문학과지성사 스펙트럼 시리즈 2차>
2020-06-16
글 : 진영인 (번역가)
<첫사랑> 사뮈엘 베케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 <모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 <꿈의 노벨레>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 <모래 사나이> E. T. A. 호프만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 <실비/오렐리아> 제라르 드 네르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오래전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오게 된 문학과지성사의 고전 시리즈 스펙트럼이 2차분을 선보였다. 포켓북처럼 작고 가벼우나 밀도가 높은 시리즈다. 우선 더운 날씨에 어울릴 E. T. A. 호프만의 오싹한 단편집 <모래 사나이>가 있다. 단편 <모래 사나이>에는 잠을 안 자는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려 눈알을 빼앗아가는 모래 사나이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모래 사나이의 정체에 집착하고, 눈을 절대 깜빡이지 않는 아름답고 기묘한 여성과 조우하여 점점 광기 속으로 빠져든다. 비슷하게, <적막한 집>은 어느 사람 없는 집 창문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을 목격하고 작은 거울을 사서 그 여인을 몰래 관찰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연금술, 자동인형, 정신착란, 몽유병 등 과거 서구의 정신의학적 탐구와 관련된 소재들이 예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으로도 알려진 책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의사 프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가 각자 현실과 꿈에서 대담한 성적 모험을 겪으며 성애와 죽음을 탐구하는 이야기다. 프리돌린은 늦은 밤 사망한 환자를 맡은 후, 밤거리를 헤매다 귀족들이 가면을 쓰고 날것의 쾌락을 추구하는 은밀한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의 체험은 알베르티네의 은밀한 꿈과 대칭을 이루며 의미가 더 풍부해진다. 보다 건조하게 의식의 저 아래를 탐구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와 사뮈엘 베케트의 <첫사랑>도 있다. 베른하르트의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자기만의 의식 속에 죄수처럼 갇힌 인간들에 대한 짤막한 비유 같다. 극장을 혐오하면서도 극장에 갈까 말까를 강박적으로 고민하던 한 사내는 자기처럼 고독하고 미쳐가는 남자를 만난다. 그들에게 극장이란, 이 세상과도 같다. 베케트의 단편들은 세상에서 차례로 추방당하는 경험을 중얼거리는 것 같다.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실비/오렐리아>는 달콤한 몽상 혹은 환상에 빠져 있다 현실로 돌아오는 쓰디쓴 경험을 감각적으로 전한다.

사랑에 대하여

“여하튼 사랑, 그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첫사랑>, 48쪽)

“그녀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제법 잘 전개되었던 자신의 체험들은 점점 더 우스개 장난 같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꿈의 노벨레>,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