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좀비라는 외부의 적이 무척 거세고 빠른 데 반해 인물의 내면은 심플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준우(유아인)는 좀비가 창궐하는 아파트에 고립되자 우선 인스타그램을 열어 ‘#ALONE’부터 남기는 게이머다. 랜선 만남에 익숙한 그가 현실의 재난을 어떻게 돌파할지 염려스럽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적당히 영민하고 또 적당히 미숙한 보통 청년이 온갖 잡기를 쥐어짜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은 그래서 짠내와 웃음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성향에 기반해 장르적 재미를 쌓아가는 <#살아있다>에서, 배우 유아인은 늘 그래왔듯 독보적인 개성을 뽐낸다.
-그동안 출연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혼자 연기하는 구간이 많은 작품이다.
=살아 있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블루스크린, 벽, 하늘, 컴퓨터와 합을 맞추긴했다. (웃음) 막상 해보니 배우들과 섬세히 액션-리액션을 맞춰나가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달까. 소리, 풍경에 대한 내 몸의 반응에 집중하고, 장르적 특성 안에서 연기에 어떤 효과적인 프레임을 씌울 것인가를 고민했다. 혼자서 영화를 진행시켜야 하는 초반에는 흔히 이야기하는 화면 장악력 같은 것을 생성해야 하는 미션도 있었다. 어느 정도여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살아있다>라는 영화가 필요로 하는 배우의 롤에 맞게 움직일 수 있을까를 조율한 현장이었다.
-준우는 지금껏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인물들 중 가장 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좀비떼라는 외부의 적이 거세긴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이나 인물의 내면은 제법 안정된 편이다. 십수년 동안 연기한 그 어떤 배역보다 편안하고, 친근하고, 그냥 옆집 청년 같은 인물이 될 것 같다. 이 친구를 연기하던 시기에 엄청 바이브가 좋았다. ‘나 너무 즐거워, 행복해’ 이러는 타입이 아닌데 내가 배우인 게 신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기분이 상승세를 탔다. 준우는 그만큼 나를 편안하게 해준 캐릭터다. ‘실제 유아인’ 혹은 ‘유아인화’ 된 인물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그리 편한 느낌만은 아닌 것 같더라. 내 주제 파악을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와는 별개로 내 이미지를 바라보는 해석과 반응들에 대해 그동안 이해도가 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한 인간으로서 편안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면 사람들도 나를 친근하게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되레 더 멀고, 종잡을 수 없고, 기복이 있는 인간처럼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살아있다>를 작업하고 주변의 반응을 들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다.
-또래에 비해 주연작도 많고 늘 이런저런 형태의 청춘을 대변했다. 그런데 실제 배우가 속한 세대만의 새로운 속성이랄까, 인스타그램, 드론, 온라인 방송을 하는 게이머 등 디지털에 친숙한 청년의 특성을 제대로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얘기 꼭 써달라. (웃음) 실은 요즘 청춘이라는 말이 너무 힘겹다. 과거의 인터뷰에선 내가 나서서 청춘을 표상하고픈 사명감을 말한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엔 배우의 일이 무엇인지 지나치게 무겁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배우의 얼굴이라는 게 시대의 기록물이자 한 세대의 표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 의지는 아니다. 반항적인 이미지와 달리 사실 나는 그동안 굉장히 순종적으로 내게 요구되는 이미지에 부합하거나 그 이상을 성취하려고 스스로를 내몰았다. 그러다보니 좀 지치는 느낌이 들더라. 솔직히 말해 이제 마구 젊은이도 아니니까, 하하. <#살아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다종다양한 청춘의 군상들 속에서도 너무 진지하지않게 찰랑찰랑거리며 살아가는 어떤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다.
-준우의 특기가 드론 날리기인데, 이번에 새로 배웠나.
=워낙 기계를 좋아해서 신형이 나오면 사서 다 해봐야 하는 타입이고 드론도 소장 중이다.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가, 바짝 깎은 노란 머리에 약간 힙스러운 옷을 입고(웃음) 고글을 낀 채 베란다 밖으로 드론을 날리는 준우의 뒷모습이다. 절로 ‘아, 재밌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로서 좀 새롭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영화의 한 장면으로서도 색다르게 다가갈 것 같다.
-재난영화의 주요 코드인 가족 신파가 빠진 영화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극한까지 몰렸다가 나중엔 ‘둘’이 되면서 구원의 가능성이 열린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지독한 소외감 혹은 고독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른 인간의 존재를 깨닫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 아닌가 싶다. 표면적으로는 생존 혹은 탈출일 테지만 타자에 대한 자각, 인지, 그것에 대한 받아들임이 곧 구원이 된다. 결국 준우를 힘들게 하는 건 바깥의 좀비보다 자기자신의 고독, 절망, 외로움 같은 것이다. 게이머인 준우는 원래 랜선 너머 존재들과 주로 소통해왔고, 그러다 기기를 매개로 유빈(박신혜)을 만난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말도 있잖나.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괴물로 만드는모든 것들의 반대편에 희망도 있다는, 양가성에 대해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산뜻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작품에 임하는 배우 입장에선 철학적인 측면도 제법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