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대생의 고백>
제작 서울영화사·신상옥 프로덕션 / 감독 신상옥 / 상영시간 122분 / 제작연도 1958년
1960년대 신필름이라는 전무후무한 영화 제국을 설립했던 신상옥(1926~2006)이 처음부터 영화계를 호령했던 것은 아니다. 감독 초기 그는 당시 신문기사의 문구를 빌리자면 주류 영화계에서 벗어난 “무명의 영화청년”에 가까웠다. 26살 때 데뷔작 <악야>(1952)를 시작으로, 세미다큐멘터리 <코리아>(1954), 시대극 <젊은 그들>(1955), <꿈>(1955), <무영탑>(1957)을 연출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고, 훗날의 신상옥다운 과감한 연출과 영화적 에너지가 돋보이는 <지옥화>(1958) 역시 당시 관객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여섯 작품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도모자라 채무에 허덕이던 그는 대중과 교감할 마지막 묘책을 찾아내는데, 바로 세련된 플롯과 감각적인 스타일을 장착한 서구의 멜로드라마 영화였다.
저작권 규약이 없던 시절의 번안영화로 시작
이렇게 신상옥의 번안 3부작이 탄생했다. 프랑스영화 <배신>(Abus de Confiance, 1937)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빌려온 <어느 여대생의 고백>이 흥행에 성공하자, 역시 프랑스영화 <갈등>(Conflit, 1938)을 원전으로 삼은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그리고 알렉상드르 뒤마의<동백꽃을 들고 있는 여인>을 영화화한 <춘희>(1959)까지 연달아 내놓았고, 흥행 역시 성공시켰다. 청년 감독 신상옥이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깨우친 1959년은 그의 창작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였던 것 같다. 같은 해 <동심초>(1959)에서는 청년과의 사랑을 고민하는 전쟁미망인을, <자매의 화원>(1959)에서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요정의 마담이 된 장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서구 멜로드라마의 토착화에 성공한다. 프랑스영화의 이야기를 빌려 한국의 상황으로 번안하는 것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한국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멜로드라마의 감성을 직조해낸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신상옥의 멜로드라마 5편이 연이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그의 영화적 동지라 할 배우 최은희와의 협업에서 비롯된 것임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멜로드라마가 한국영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1950년대 후반 신상옥의 영화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후 시대극 장르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문법을 숙련하며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가던 신상옥은 이처럼 멜로드라마를 선택하며 서구영화의 문법과 스타일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만든 첫 번째 멜로드라마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아 1958년 흥행 3위에 랭크되었다. 그해 최고 흥행작은 당시 상업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던 홍성기의 <별아 내 가슴에>(1958)였는데, 이 영화는 13만7천명의 관객을 모았던 것으로 기록된다. 지금으로 치면 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수치이지만, 영화가 처음 상영된 서울 개봉관 한 군데의 1~2주 관객수만 산정한 결과였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흥행뿐만 아니라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상의 각 부문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다. 크레딧 타이틀에 원작자 없이 각색(신상옥), 윤색(조남사)만 기록해 언론의 의심과 비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 기사들이 프랑스 작가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감독이 각색한 것이라고 적은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신상옥 역시 이 영화가 프랑스영화 <배신>의 이야기를 번안한 것임을 숨길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은 1987년에야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했다. 당시 영화계가 저작권과 관련한 엄밀한 조치를 취할 여유와 능력이 없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를 비공식적인 번안영화로 규정하는 쪽이 맞을 것 같다.
한국의 멜로드라마로 거듭나다
고아가 된 젊은 여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친구의 제안으로 재력가의 가짜 딸이 된다. 그녀는 법학 과정을 무사히 마친 후 변호사가 되어 불행한 청년의 변호를 맡는다. 프랑스 원작과 한국영화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인물 설정만 다르다. 주인공이 부자 작가의 딸 행세를 하려고 마음먹는 원작에 비해 <어느 여대생의 고백>에서는 그 대상이 국회의원이고, 또 원작에서 주인공이 젊은 남성의 변호를 맡는 것에 비해 한국영화에서는 같은 나이의 여성으로 바뀐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프랑스영화의 이야기 뼈대를 그대로 빌려왔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와 서울의 풍경이라는 살이 붙으며 근사한 멜로드라마로 완성되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의 경제적 지원으로 법대를 다니던 소영(최은희)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는다.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친구 희숙(김숙일)은 우연히 손에 넣은 일기가 국회의원 최림(김승호)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것임을 알고, 생활고를 겪는 소영에게 그의 가짜 딸이 될 것을 제안한다. 소영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일자리를 찾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숙집 주인 남자(최남현), 면접을 본 회사의 사장(주선태) 등 중년 남자들은 하숙비와 월급을 미끼로 소영을 성적으로 탐할 뿐이다. 결국 소영은, 현실은 소설보다 기구하니 공부하기 위해서 연극을 하는 것은 괜찮다는 희숙의 말대로 최림의 가짜 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신상옥은 전후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정교하게 묘사해낸다. 소영이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겠다고 말하자 희숙이 건너편 다방에서 기다리겠다며 길을 건너는 장면이다. 희숙은 달리는 자동차들을 피해 위태롭게 건넌 후 소영에게 손을 흔들고, 그녀 역시 미소를 보낸다. 그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름답고 당당하다. 소영은 자신을 추행하려는 회사 사장의 뺨을 때릴 만큼 당찬 여성으로 묘사되지만, 급기야 밤거리에서 매춘부로 취급받는 순간 무너지고 만다. 충격으로 차로에 들어선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자동차가 달리는 어지러운 거리는 이후 소영이 변호하게 되는 순희(황정순)의 장면에서도 반복된다. 남편을 찾아 서울에 온 순희가 서울역 앞에서 자동차와 전차를 피해 길을 건너는 모습은 그녀의 힘겨운 서울 생활을 예고한다.
결국 소영의 신분은 최림의 부인(유계선)에 의해 탄로나지만, 부인은 순희의 변론을 성공적으로 끝낸 그녀에게 딸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수난받은 여성 순희의 죄가 경감되는 것은 소영의 거짓말 역시 용서받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에서 영숙(최은희)과 성희(주증녀)가 끝까지 비밀을 간직했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부인과 소영, 두 여성이 비밀을 공유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전후 여성에 대한 신상옥의 시각은 확실히 당대 한국영화의 관념과는 달라 보인다. 법학을 전공하는 젊은 여성은 가짜 딸이 되어서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고,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의 친모 영숙은 길러준 엄마 성희에게 아들을 양보한다. 두 작품은 서구영화의 장르 화법을 대입하자면 서스펜스와 스릴러가 전면으로 나서야 마땅하지만, 신상옥은 전후 여성들의 고된 삶과 그녀들의 연대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