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대만 뉴웨이브를 추억하는 90년대생 신인 감독들 , 윤단비·신동민·김소형의 대화 ②
2020-09-17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본 기사는 대만 뉴웨이브를 추억하는 90년대생 신인 감독들 , 윤단비·신동민·김소형의 대화 ①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지금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이 꿈꿀 수 있는 제작 가능성

-허우샤오시엔은 심종문 소설의 영향을 받아 ‘인물에게 일정 거리를 지키면서 관조하는 태도’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했다. 거리를 둔 채 고정된 카메라가 반드시 더 뛰어난 사실성을 담보한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려 했다. 멀리 떨어진 고정된 카메라, 롱테이크 등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스타일이 세 감독에겐 어떤 영감을 주었나.

김소형 <우리의 낮과 밤>을 준비할 때 <연연풍진>을 많이 돌려봤다. 시골에 같이 있던 남녀가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 노동의 풍경을 배치한 방식에서 감명받았다. 넓게 펼쳐진 작업 공간의 풍경을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리듬, 냄새, 그 안에 녹아든 오랜 시간 등이 자연스레 스며나온다.

윤단비 허우샤오시엔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여백이나 인서트의 활용이었다.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와 맞닿은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보여주는 부유하는 이미지랄까. 인물들이 떠나고 난 뒤의 잔상들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인서트를 배치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남매의 여름밤>을 만들 때 사람이 존재했다가 사라진 뒤의 모습을 고민했다. 허우샤오시엔과 비교하면 에드워드 양은 <하나 그리고 둘>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 과감하고 스타일리시한 시도들을 밀어붙였던 것 같다. 유리창에 반사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신동민 카메라를 고정시켜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객관성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확정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열어두는 의미도 크다. 차이밍량 영화를 보다보면 그가 마치 실험실의 쥐를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리는데 내게는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지켜본다는 느낌이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를 찍을 때 내게는 어머니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지속 시간이 긴 숏을 택했다. 어머니 역할에 2인1역을 기용한 이유도, 나도 모르게 배우의 연기를 통해 어머니를 납작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편협해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언급한 대만 뉴웨이브의 특징들을 어떤 영화적 미덕이라 통칭할 수 있다면, 혹시 최근 다른 한국영화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감지한 적 있나.

김소형 곧바로 <벌새>가 떠오른다. <벌새>를 보면서 <하나 그리고 둘>을 생각했다. 저마다 다른 입장과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큰 사회적 사고를 겪고 나서 취하는 태도나 반응을 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벌새>가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미술이 무척 아름다웠다.

윤단비 이강현 감독의 <얼굴들>은 더 주목받았어야 했다. 인물들을 차분히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해 영화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곳곳에서 피워올린다.

신동민 김남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12 하고 24>. 뮤지션 신세하의 사적인 영역을 담아냈다.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이면서도 투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가 지닌 실험적 태도와 세련된 감각에 거의 압도당하다시피했다. 매 장면을 몸으로, 감각으로 느끼게 되는 영화라 끝나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영화를 밀어붙여서 만든 용기가 존경스럽다.

-독립영화 만들기란 물리적, 경제적 제약에 특히 취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 뉴웨이브에 대한 선호는 지금 한국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그나마 꿈꿀 수 있는 제작 가능성의 측면을 상기하는 부분도 있다. 내용과 형식 모두 일단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신동민 ‘왜 한국 감독들에게 대만 뉴웨이브가 영향을 끼치나?’ 하는 질문을 실용적 관점에서 살피자면 방금 기자님이 이야기한 부분이 사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 같다. 재현 혹은 모방 가능한 정도의 현실성, 한국 사회와의 공통점 등을 무시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역사도 우리와 많이 닮아 있고, 도시 개발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을 자극하는 공간들도 비슷하다. <애정만세>가 대표적인데, 대만 뉴웨이브 영화 중 도시를 다룬 영화에서는 유독 빈집이 많이 나온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지만 대만영화를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들이 스크린 속에 있다고 느꼈고, 그것이 영감을 주기도했다.

윤단비 오래전 광주극장에서 차이밍량 감독을 만난 적 있다. 그때 차이밍량 감독이 중국에서는 이제 더이상 단관 극장을 보기 힘들다며 감상에 잠겼었는데, 확실히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김소형 맞다.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나를 둘러싼 공간들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대만영화를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 같은데…’하는 느낌을 받았다.

윤단비 과거의 공간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 세대는 옛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는 것 같다.

신동민 장윤미 감독의 <콘크리트의 불안>이 떠오른다.

윤단비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도 있고.

이 노스텔지어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만 뉴웨이브 영화가 담아낸 시대를 겪고 기억하는 세대가 그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과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공감을 느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대중문화적으로는 유튜브에 기억 조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노스탤지어란 과연 무엇일까.

윤단비 사적이면 사적일수록 더 보편성을 가진다는 말로 접근하고 싶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그 예다. 아시아권 영화도 아니고 구체적인 요소에서 나와 정확한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닌데도 나를 대입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예가 좀 이상하지만, 반대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서는 사적인 틈새를 두기 어렵다. 역사와 서사가 너무 거창하고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신동민 이어서 드는 생각인데, 에드워드 양 영화는 결국 모든 영화가 사랑이라는 테마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관객 각자가 자기 서사를 투영하는 것 같다. 에드워드 양 영화를 보면 모두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해 다른 사람을 만나는 등 사랑 앞에 공허하게 헤맨다. 인물들도 모르고 감독도 해답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가 직접 보고 겪지 않았어도,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마치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은 체험이 가능한 이유는 결국 영화가 근원적인 결핍이나 부재를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김소형 <하나 그리고 둘>에서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겹치는 교차편집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시대나 문화, 인물의 연령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마음은 늘 거듭해서 반복된다. 삶이 어두운 와중에 여름의 풍경은 찬란하게 빛나고…. 삶의 불확실성, 사랑, 불안에 대한 탐구로서 근본적인 고민이 같기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대만 뉴웨이브는 산업적으로는 검열의 완화, 중앙전영공사의 지원, 1940년대생 유학파가 귀국하는 등 시대적 조류와 맞물려 탄생했다. 안타까운건 자국 내에서 그 영화적 생명력이 장기간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객,산업과의 접점에 대해서 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앞으로 영화 작업의 방향성도 들려준다면.

윤단비 김보라 감독님이 차기작으로 SF영화를 준비한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직업 영화인으로서의 고민은 중요하다. 대만 뉴웨이브의 영향은 한국독립영화 감독들의 데뷔작에서 두드러지는 흐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다음 스텝은 각자 또 달라질 것이다.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 선배감독들의 행보에서 배우고 있다. 중요한 건 작업의 지속인 것 같다. OTT의 대두로 영화만의 미학을 어떤 방식으로든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위기감도 든다.

신동민 나는 혼자 찍는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윤단비 감독처럼 OTT 시장에 대한 고민은 아예 할 상황이 안되고. 현실적으로 영화를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일을 하면서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한다. 다행히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내게 가능한 작업방식과 그 내용물(실제 어머니가 출연하는)이 시너지가 나서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김소형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사랑하면서 오래 영화를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플랫폼을 통해 보기를 바라는지 고민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 중이다. 극장을 너무 사랑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요즘처럼 극장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제 창작자도 숏폼이나 OTT 플랫폼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씨네21: 연기도 계속 할 예정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한준희 감독의 <D.P 개의 날>에 아주 아주 작은 역으로 출연하게 될 것 같다.

윤단비 나는 개인적으로 미래의 영화관 나들이가 마치 오페라 극장에 가는 것 같은 아주 특별하고 희소한 경험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크고, 코로나19로 그 시기가 예기치 못하게 훨씬 앞당겨진 것 같아서 어떻게든 극장을 지키고 싶다.

신동민 언젠가 극장은 사라지고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마치 극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대리체험하게 되지 않을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서울 장기상영회에서 관객과 함께 내 영화를 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거나 울면서 시간을 공유하는 행위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언젠간 사라질 것 같다.

윤단비 VR 대체설은 너무 급진적인데? 극장 경험을 그렇게 아름답게 추억하는 동시에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확신하다니…. 너무하다. (일동 웃음)

김소형 지금 내가 자신있게 보탤 수 있는 말은 <남매의 여름밤>을 빨리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이야기뿐인 것 같다. 이 시기가 빨리 끝났으면, 그리고 극장에서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을 볼 수 있었으면….

윤단비 지금 가면 마치 대관한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을 볼 수 있다. 어느 극장을 가든…. (일동 씁쓸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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